말 쓰레기

그림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

by 미정의 서

주워 담기에 민망한 말들이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밟아라. 죽여라."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언어다. 그 부정적 파장에 세상의 심장은 시퍼렇게 멍이 든다. 삶을 사르는 불과 같은 혀를 강조하던 저들 스스로 언어의 법을 무너뜨린다. 매일 쏟아지는 거짓말과 폭언에 말의 쓰레기가 쌓여가고 악취가 난다. 차라리 말 못 하는 자로 태어났더라면 저들에게는 축복이었으리라. 차라리 듣지 못하는 자로 태어났더라면 내게는 축복이었으리라.


"그들은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다." (계시록 3:9)


빌라델피아 교회의 사자에게 전하는 천사의 말이 어느 때보다 또렷이 들린다. 어쩌면 천사는 <앙겔루스 노부스>의 형상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새로운 천사'를 텍스트로 처음 알았다. 발터 벤야민의 아홉 번째 역사철학 테제는 파울 클레의 앙겔루스를 눈으로 보듯 그려낸다. “천사의 부릅뜬 두 눈은 쉼 없이 쌓여 가는 역사의 잔해들을 응시하고 펼친 날개는 세차게 불어오는 폭풍에 떠밀려 간다.” 그의 입은 열렸으나 그 음성을 들을 수 없다. 그런 천사가 내게는 한없이 무력하기만 했다. 폭풍에 맞서 “머물고 싶어 하고 죽은 것들을 불러일으키려 하고 산산이 부서진 것들을 모아 다시 결합하려는” 천사의 의지가 꺾이듯, 쏟아지는 조롱과 저주의 말 더미 앞에서 나 또한 무너진다.


옛 유대 왕 히스기야도 그랬다.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앗시리아 랍사게는 대단한 말의 능력을 지녔다. 그 말은 유창하고 신의 명성을 들어 권위까지 덧입었다. 산헤립의 군대가 그 말에 힘을 더하니 그 시절 유대나 우리 시대의 풍경이 별반 다르지 않다. 전파를 타고 흐르는 무법하고 유해한 말은 거대한 마병을 배경 삼고 전경으로 튀어나오던 랍사게의 말이기도 한 것이다. 오만하고 파괴적인 그 언어에 맞서 히스기야와 유대인들이 지닌 무기는 오로지 침묵이었다. 자칭 그리스도인들이 내뱉은 말 쓰레기가 하늘에까지 치솟는 시절, 한없이 무력한 나의 입도 천사의 그것처럼 벌렸으나 신음조차 낼 수 없다.


어김없이 날아든 난폭한 혀의 불화살에 덴 나는, 깊은 열상에 심신이 들끓는다. 덕분에 그리스도의 스티그마를 새삼 곱씹는다. 그에게 가한 폭력과 낙인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았던가. 자칭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가한 무자비한 공격이 지금 이곳에서 재현된다. 그 나라의 경계에 서있는 사람들, 차라리 그 백성으로 분류되지 않는 자들이야말로 그 스티그마에 관한 증인이지 않을까. 무법하고 오만한 말들에 맹목적 ‘아멘’이 반향 하면 할수록 그리스도가 입은 상흔은 짙어진다. 그가 찔리고 상함으로 약속받은 나라는 그리스도의 첫 말씀과 달리 내 곁에 가깝지가 않다. “다 이루었다”던 마지막 말씀이 있고 이천 년이 지나도록 그 나라는 멀기만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만나, 기억의 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