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장 프랑수아 밀레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하는 히브리인들은 스스로의 기억을 조작했다. 이집트에는 분명 오이나 수박, 생선이 차고 넘쳤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 풍요에 그들이 쉬 접근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히브리인 노예였고 가족 모두가 배부를 만큼의 '신선한' 식료품을 구하기 위해선 고단한 노동을 쉼 없이 이어가야 했다. 과거의 실상을 망각한 채 아주 잠깐 혹은 간헐적으로 경험했던 혀의 감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흔적을 대단히 미화하며 신선했던 만나의 첫인상을 애써 지웠다.
히브리인 1_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기억은 사후적이라 지나간 경험을 회상할 때 얼마간 미화나 왜곡은 불가피하다. 사건의 비극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네거티브한 말이 집단의 기억을 그렇게 몰고 간 것이다. 바람을 타고 와 미친 듯이 쌓여간 메추라기 떼의 이미지는 그렇게 조작된 기억의 무덤을 비유하는 것만 같다. 이야기의 화자 또한 그 같은 망상의 장소를 "탐욕의 무덤"이라 명명했다. 냄새와 맛만은 아무것도 남지 않은 터 위에 희망적으로 기억의 건물을 지어갈 것이라던 프루스트적 기대와는 반대 방향으로 이집트의 흔적들을 그러모은 것이 패착이었다. 탐욕스럽게 쌓아가던 메추라기의 무덤에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히브리인 2_이 사이에 낀 고기 조각에서 썩은 냄새가 올라온다. 매일매일 신선하게 내리던 만나에서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고약함이다. 역겹다.
그제야 기억의 실상과 현재적으로 인출된 것 사이의 괴리를 알아차린 것이다. 씹어야 알 것 같던 고기 맛이 자신의 피고름으로 쥐어짜 낸 것이었다니. (내 위장은 너무도 예민해서 이야기만으로도 그 역함을 맛본다.)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힘든 고기 조각은 허다하게 많았으나 누구도 배부르게 하지 못했다. 거대한 사체의 무덤은 피라미드의 모상인 셈이다. 풍요와 영원의 별칭은 혹독한 노동과 죽음이었고, 만나는 그 같은 이율배반적 기억으로부터 히브리인을 구원해 내는 징표였다.
온 진영을 사르는 재앙이 지나가는 중에도 밤 사이 그날의 만나가 내린다. 진노 한가운데 내린 긍휼을 본다.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만나를 다시 거두니 메추라기의 무덤과 같이 쌓을 일이 없다. 쌓지 않으니 부패할 것도 없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자가 누릴 복이다.
반복되는 공급, 익숙한 맛이지만 어제의 것이 아니기에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존재에 관한 계약 갱신을 되새긴다.
투명한 진액 방울이 과자처럼 구워지니 그 변환 또한 신비롭다. 달고 오묘한 그 맛은 살과 피에 유익할 뿐 아니라 영혼에 기쁨을 더한다.
배부름이 이 사이에 낀 메추라기의 상한 맛이라면 만나의 담백함으로 생의 감각을 풍요롭게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