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고의 문자들

개념의 형상

by 미정의 서
문학이 중요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은 오직 실천과 글쓰기가 정확히 일치하는 경우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포괄적 지식을 자처하는 까다로운 책보다, 공동체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더 적합한 형식들, 예컨대 전단, 팸플릿, 잡지 기사, 포스터 등과 같은 형식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그와 같은 신속한 언어만이 순간 포착 능력을 보여준다.

발터 벤야민, 「일방통행로」


두 서고를 읽어가는 즐거움은 상이한 언어 형식들이 빚어내는 극단의 공명에 있다. 한 서고가 극도로 추상된 사유의 목록을 그래픽적으로 단순화하고 있다면, 반대편에서는 아폴리네르의 아름다운 상형시와 유사한 분위기의 문자 향연이 펼쳐진다. 이들 쓰기의 형식은 문자적 재료와도 상관성을 지닌다.

놀이의 서고에서는 문자들이 눕기도 하고 직립해 서기도 하고 때로는 직조되기도 하며 다양한 형태의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 서고의 주조적 문자가 한자인 것과 그것의 상형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형-음-의 트리니티에 매료된 아폴리네르가 알파벳으로 지어낸 상형시들에 공명하듯 그토록 자유로운 문자를 말할 수 없이 억압되고 권위적으로 오용했던 세대에 차정인은 정면으로 응수한다. 단 하나의 글자로 시도해 보는 변형의 놀이가 우리가 알고 있던 문자의 사회적 구속을 파기하며 새로운 의미의 층위를 발굴하도록 매개하는 것이다.

그녀가 실험하고 있는 쓰기의 확장은 어쩌면 다른 극단의 압축된 사유의 서고를 필사하며 스스로와 다투었던 시간의 반영일지 모른다. 김영기의 서고 사이로 비집고 나온 메모의 한 귀퉁이를 끌어당기면 거기엔 낱말들의 지도와 그래픽적 도식이 어떤 암호들처럼 비밀스럽게 새겨져 있다. 빛바랜 종이를 손에 쥐고 독자는 기록된 알파벳 기호들의 연관을 유추해야 한다. 차정인의 영혼과 몸에 새긴 필사의 기억도 그러한 읽기 과정을 지나온 것이었다.


Graphics | 언어는 형체를 취한다


루돌프 아른하임의 시지각에 관한 게쉬탈트 접근법은 김영기의 초기 그래픽 언어가 구사하는 주요 도구였다. 자신이 생산해 내는 모든 메시지를 명징한 시각 언어로 표현하려 했던 그에게 언어는 다른 어떤 재료보다 더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소재였다. 그리고 상이한 형태들을 개념의 언어로 분석해 낸 아른하임의 시도는 즉각적으로 작가의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고교 적 시인을 꿈꾸었던 그에게 언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은 자연스러운 동기였고, 그렇게 시각적인 것을 언어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그의 시대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목적과 기능에 따른 형태 언어의 시대에 작가는 비코 Giambattista Vico의 안내를 따라 시적 언어에 몰두했고, 자신이 창조한 시각 언어가 한 편의 시가 되기를 바랐다. 지시적 언어와 시적 언어는 표현과 해석에 있어서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예컨대 시어를 다듬어가며 이루어지는 개념의 정교한 추상은 역설적으로 다양한 이미지 연상에 길을 내어주는데, 그 같은 시적 연상 과정이 김영기의 그래픽 작업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동시에 그의 그래픽은 벤야민이 추구했던 순간의 포착과 그에 따른 신속함도 간과하지 않는다. 물론 그 속도는 치밀한 사유 과정에서 얻은 오랜 훈련의 결과임에 틀림없다. 기나긴 시간을 서고의 텍스트 속에 묻혀 있던 그가 문학의 범주를 넘어 이 시대에 “더 적합한 형식들”의 한 유형인 그래픽을 표현의 매체로 선택한 것도 비주얼 리터러시에 관한 작가적 안목에 연유한 것이다.

선형성이 언어적 메시지를 주도한다면 상이한 공간과 시간의 층을 순간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이미지 속성이다. 그리고 이 이질적 도구들을 결합시키는 그의 그래픽에서 언어적인 것과 시각적인 것은 상이한 감각들의 유사성을 획득한다. 곧 청각적이고 시각적인 것의 연관이 하나의 그래픽 언어로 완성되는 것이다. 언어와 문자에 관한 역사적 성찰은 이 감각의 양가 속성을 언제나 저울질해 왔다. 한편에서는 아름다운 상형 시구로 언어적인 것의 시각화를 실험하는가 하면 언어의 의미를 배제하고 그 극단의 물성만을 재현하고자 했던 음성시가 전위 문학의 한 축을 구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알파벳의 상형성에 관한 이 흥미로운 시도들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스스로가 극단적인 것들의 병치를 무의식적으로 실천해 왔고 동시에 그것은 지극히 문화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감각이기도 하다. 서고의 선반은 온통 알파벳 철자들로 가득 하나 그의 쓰기는 기호적인 것의 논리를 넘어 형상과 소리와 의미의 연관을 지속적으로 생성하며 언어와 이미지의 공명에 관한 문화적 기억을 상기시킨다. 그 기억의 단편들을 사진 찍듯 기록하여 재현한 서고 벽면은 사유와 표현에 관한 작가의 개인적 일화를 역사적 사건으로 경험하게 하는 안내서와 같다. 또한 거대한 그래픽 지도는 서고 속 단어들의 파편을 유사성으로 읽는 시각적 단서이기도 하다.

IMG_1774.jpg 김영기, <미메시스의 서고, 에크리튀르>, Graphics, SeMA창고, 2019


에피소드 01 1988년은 우리 디자인사에 있어서 주요한 변곡점을 이룬 해다. 국제 행사인 서울 올림픽을 이 해에 개최하였고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의 디자인 전략이 수립되고 실천되었다. 도시 경관 조성은 물론 국제적 규모의 경기장 건설, 마스코트 선정과 올림픽대회 입장권 도안에서 기념주화 도안, 문화 포스터까지, 다양한 수준의 디자인 논의가 관의 주도 하에 이루어졌다. 이 전환의 시기에 작가 역시 경관, 그래픽 디자이너로 참여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고 직접 포스터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포스터 『뎡뎌듕셩』과 관련된 숨겨진 에피소드는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면 당시 디자인의 주조적 양식과 사회적 기능에 저항하는 균열의 모멘텀이었다. 근대 예술의 전반적 흐름이 그러했거니와 디자인의 정착 과정은 더더욱 타율적일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경험에서 오틀 아이허 Otl Aicher의 기하학적 픽토그램과 그리드 시스템을 모방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 여겼던 인식에 작가는 대담한 표현으로 반기를 들었다. 모더니즘의 기계적 형상을 버리고 기운생동의 붓터치로 그래픽에 자연스러운 문화 감각을 덧입힌 것이다. 하지만 젊은 디자이너의 호기는 동시대 작가들에게 외면당했고 모범적으로 평가된 작업들과 톤을 맞춰 다시 제작할 것을 요구받았으나 거부했다. 스스로의 그래픽 언어가 지닌 문화적, 시대적 당위를 설명하고 위원들을 설득하여 최종적으로 원안대로 작품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가장 문화적인 포스터로 기억되고 회자되었다. 포스터에 더하여 픽토그램 역시 붓의 표현성을 극대화하자는 의견을 개진했으나 수용되지 못했고 오히려 다수 디자이너가 제작, 선택한 도안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며 국가 간 소송으로 비화될 뻔한 일화도 기록으로 전한다. 변화의 기회를 놓친 아쉬움은 다음 해 바르셀로나에서 현실화되었다. 과감하게 그리드 패턴을 버리고 자유로운 곡선의 픽토그램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끌었던 그 해를 작가는 누구보다 아프게 기억한다.


도안의 시대에서 현재적 기술 환경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시대적 전환의 계기마다 서고의 텍스트와 씨름하며 영감의 원천을 길어냈다. 그리고 그 텍스트라는 직조의 과정을 ‘결’이라는 언어로 풀어간다. 역설적이게도 문화적으로는 ‘한결’을 강조하면서 스스로는 언제나 ‘엇결’의 길을 걸었다. 그의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사유의 결은 항상 상이하고 이질적인 것들의 묘합妙合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기묘한 직조의 정수를 개념의 지도가 잘 드러내 준다. 지도는 계열이 다른 낱말들로 구성된다. 단어의 출처는 서고이며, 서고의 책 등이나 행간에서 떨어져 나온 텍스트의 조각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며 새로운 사유와 표현의 길을 열어준다. 서고는 더 이상 지나간 텍스트들이 뉘인 무덤이 아니라 단어의 파편들이 그를 불러내는 아담의 정원이 된다.


Atlas of Concept | 연관의 형상화


서고 곳곳에는 방대한 양의 읽기와 사유를 시각적으로 정리해 둔 메모가 숨겨져 있다. 지금도 그는 그런 시각적 기록들을 꾸준히 생산한다. 물론 과거의 펜이 디지털 쓰기로 대체되었지만 쓰기의 일상은 예전 그대로다. 벤야민이 남긴 작가의 기법 제7 명제를 무의식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착상도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글쓰기를 그만두지 말 것!


그리고 그 습관적 기록은 흩어진 단어들로 맥락을 맞추던 비더마이어 시대의 놀이처럼 무관한 것들의 연관으로 주목을 끈다. 예컨대 낱장의 종이들을 면밀히 검토해 가면서 지면에서 떨어져 나온 기호들이 새로이 공명해내는 개념들을 진열해 보는 것, 그것이 이 놀이의 규칙인 것이다. 곧 그가 발굴한 개념의 연관을 작가의 쓰기 공간 안에서 경험할 뿐 아니라 그려진 그 지도를 다시 읽고 쓰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기록된 것들의 발굴을 위한 예비적 도구가 필요할 수 있다.

우선 단어의 변형에 익숙해져야 한다. “언어는 각자의 환상에 따라 제각각 다른 형상을 발견하게 되는 구름 덩이”라 장 파울 Jean Paul이 말하지 않았던가. 작가의 사유 공간 속에 흩어져 있는 단어들이 다양한 층위로 중첩되고 변형되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독자도 그 불규칙한 리듬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게 된다. 그러면 다시, 각각의 형상들 사이에서 유사성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유사성은 논리적 유비보다는 직관적으로 떠올리는 어떤 연관에 가깝다. 연대기적 서고 배열 사이에 끼어든 작가의 필서 곧 언어로 된 그 이미지들이 마치 개별적 단어들의 성좌적 연관을 드러내 보이듯 독자 역시 그것을 미메시스적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게 작가의 서고는 미메시스의 서고가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단어들의 성좌가 안내하는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우연하고 반복적인 흐름의 중단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중단된 그곳에서 지시하는 낯선 문자의 미로를 적극적으로 탐색할 채비를 갖춰야 한다. 작가의 서고가 어떤 미지의 세계에 관한 아틀라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흩어진 사유 지도는 확정된 장소를 지시하지 않는다. 부단히 중단되고 그리하여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한다. 때로는 극단의 길에 세우기도 하는데 막다른 그 지점에서 비약은 필수적이다. 일반 논리학 강의실에 앉아 언어와 사유의 명료함을 치밀하게 훈련하던 청년은 작업실로 되돌아와 반드시 논리 언어 밖으로 나가 그것을 뒤집어보는 시각 언어에 몰두하곤 했다. 논리와 직관을 넘나들며 탐구하던 쓰기의 습관은 이후로도 지속되었고 이 시각적 사유에 관한 작가의 정리는 자연스럽게 불연속적인 단어의 성좌로 독자를 이끈다.


Ⅰ 시각 언어로 말해야 한다.

Ⅱ 시각 언어는 언어적 개념의 시각적 번역이다.

Ⅲ 시각 언어는 침묵으로 말해야 한다.

Ⅳ 시각 언어는 간결해야 한다.

Ⅴ 시각 언어는 구조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Ⅵ 그래픽 커뮤니케이션은 감각적이어야 한다.

Ⅶ 프린팅으로 문자와 이미지 모두 보편적 언어의 세계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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