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2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악을 경험하게 하시는 이유는, 이 세상이 그렇게 악의 평범성으로 위장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선하지만 그 선을 드러낼 ‘사람’이 많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은 악을 ‘완전하게’ 이기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지신 십자가로서 그 표본을 보이셨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그 십자가를 요구하신다. 쉽지 않은 일이다.
거리를 걷고 운전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뉴스 기사를 읽다가 또 일하면서, 가장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는 수없이 많은 악과 마주친다. 솔직히 말해 그 상황이 내가 악을 대면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상황에 맞닥뜨릴 때면 화가 나지만 정확하게 무엇이 나를 화나게 하는지 찬찬히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문득 떠오른 질문을 내뱉어 본다. “왜 이런 악을 보게 하십니까?”
주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선한 것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이 세상을 “악에서 구해야” 한다. 가르침은 삶의 도처에 악의 실체가 작동하고 있고 세상을 그 악에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회복시키시는 일에 동참할 것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우리로 악과 대면하게 하심으로써, 오로지 자신의 복과 평안을 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공의와 사랑을 이 땅에 심고 가꾸고 수확하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의 본체를 날마다 보게 하시는 것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 악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예비적으로 보여주기도 하신다.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제자들을 힘들게 했던 교수는 세상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 욕심으로 똘똘 뭉친 건물주 역시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저질렀던 악행에 대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물론 그들에게 닥친 이 중간 평가가 회개의 삶을 살 계기가 될지 아니면 오히려 그 머리 위에 분노의 숯불을 더욱 타오르게 할지, 그것은 내가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그 심판의 과정에서 되돌이켜 더 이상 이웃을 괴롭히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기를 바랄 뿐.
세상의 악은 제거되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 안주해 편안하게 사는 것은 사도들이 경계하는 바 “마귀를 대적하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삶의 지향성과도 분명 상치된다. 다만 이 싸움을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기셨고, 예수께서 다져 둔 선한 세상의 터전 위에 선한 씨앗을 심고 자라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일 것이다. 악을 대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주님은 그 악을 정면으로 대면하셔서 싸우셨다. 땀이 피가 되기까지, 온몸의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악을 이기셨다.
그분은 오늘도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