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의 손

불고기 한쌈

by 미정의 서

어릴 적부터 쌈요리를 좋아했다. 엄마의 별미이기도 했지만, 이것저것 한 줌에 담아 입안 가득 채우면 그 자체로 풍요로운 식탁이었다. 코로나는 그런 음식 취향도 멀리하게 만들었다. 쌈은 손이 직접 닿는 음식이니 외식으로는 꿈도 못 꿀 메뉴였다. 저녁은 한동안 피했던 쌈요리를 마음껏 드시라며 불고기와 함께 차려 준다. 대형 양상추를 한 잎 한 잎 깔아 쟁반으로 삼고 그 위에 불고기를 얹어 상차림 자체로 쌈이 되었다.

보기에는 근사한데 젓가락을 어떻게 써야 할지 난감해하니 친절하게 먹는 순서도 정해 준다. 갓 담근 김장 김치 맛보듯 양상추 한 자락을 손으로 뜯어 불고기를 곁들이라고 한다. 메인은 고기가 아니라 쌈이었다. 싸서 먹는 행위에 변화를 주니 익숙한 불고기 맛도 이전과는 다른 듯하다. 톡톡 끊는 손 맛과 아삭 거리는 식감이 잎상추와는 확연히 다르다. 양상추를 씻어 가위로 네모 반듯하게 자르고 탈수기를 돌려 물기를 제거한 후 토마토와 과일 등을 얹어 내놓던 내 방식이 그간 비효율적이라 여긴 모양이다. 이토록 손쉽게 양상추를 먹는 방식에 대단히 뿌듯해한다. 하기야 네다섯 번의 과정을 거친 내 샐러드보다 남편의 한쌈이 시각적으로나 맛으로 전혀 모자라지 않다. 충분히 창의적이라 칭찬하며 입 안 가득 사그락 거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동안 오랜 지인의 요리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녀의 집에 들어서면 그녀의 이름이 가장 먼저 피어오른다. 여인의 이름에는 꽃향기가 깃들어 있다. 봄이면 릴리 향이 바람을 타고 바깥 정원에서 스며들고, 여름엔 테라스 앞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에 흥겹다. 신혼살림을 시작했던 안산으로 되돌아가기 전, 우리 부부의 저녁은 자주 그녀의 식탁이 맡아 주었다. 반듯하게 자른 하얀 두부가 고소한 된장국 마지막에 가지런히 담길 때면 늘 듣던 이 짧은 문장이 아직도 귓가를 맴돈다. "박 선생, 음식은 정성이야." 누군가에게는 중년 여인의 흔한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 소리에 섞인 그 나지막한 음성이 내게는 가족과 이웃에 대한 그녀의 진실한 마음이고 태도다.

향기 좋은 그녀의 요리에는 두부가 자주 등장했다. 두부 반모는 가난했던 신혼을 기억하며 오늘에 감사할 수 있는 작은 모티프였다. 생활비를 아끼려 두부 반모를 며칠씩 나눠 조리하던 이야기를 꺼낼 때면 거실 한쪽 벽에 걸린 소소한 초충도가 실경으로 변할 것만 같은 생동감이 말소리에서 느껴진다. 그런 절실함이 잊혀가던 어느 날, 고된 일과에 떠밀려 대충 차려 놓은 남편과 아들의 저녁 식탁에도 두부가 올랐다. 더 이상 두부의 양을 걱정할 일 없으나 두부의 모양은 들쑥날쑥하고 국에는 향기가 아닌 짜증이 배어 있었다. 풍요하나 빈곤한 식탁이었다. 그때 그녀는 결심했다. '두부 한모를 썰어도 제대로 정성을 다해 썰어야지.' 밥을 짓던 글을 짓던 재료 손질에 꾀가 날 때면 나는 그녀의 독백을 따라 말한다.


연하디 연한 두부의 속살에 날카로운 칼 끝이 닿는 순간, 내 손은 구도자의 손이 된다. 손쉽게 뜯을 수 있는 양상추를 굳이 도구를 사용해 정성스레 모양을 짓는 것도 그녀의 가르침 때문이다. 남편이 이 뜻을 알 리 없다. 앞으로 남은 나흘을 격려하기 위해 별다른 소리 않고 평소의 샐러드를 다듬듯 양상추 잎을 손으로 곱게 뜯어낸다. 그 위에 갖가지 양념의 불고기를 살짝 얹는다. 무미의 크래커 위에 달콤 짭조름한 재료들을 얹어 한 입에 먹는 카나페처럼 거대한 한쌈을 조각조각 나눠 입 안으로 들이면서 향기로운 이웃과의 저녁을 가만히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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