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여자

보름달 촉촉 샌드위치

by 미정의 서

첫날의 첫 주제는 <安:편안할 안>이다. 아침엔 속 편하게 죽을 내었고, 점심엔 양상추며 치즈, 토마토를 채운 샌드위치에 내가 좋아하는 반숙을 얹었으니 터트려 촉촉하게 드시라 한다. 한가위니 이름에도 노란 보름달을 넣어 계란과 운을 맞추었다. 주말이면 손쉽게 해 먹는 샌드위치에 계란의 변주와 수식어 몇 자 더하였을 뿐인데 근처 카페 골목 브런치 메뉴를 받은 듯하다.

安이라는 글자에는 이런 의미가 있다. 집 안에 편안히 앉은 여인. 아이러니하게도 여인이라는 이름은 한시도 편안할 일이 없었다. 더욱이 이런 명절이면 그 고됨이 배가된다. 아침부터 가족들 밥상 차리고 몇 날 며칠을 손님 치르느라 여자들의 손이 분주한데, 거기에 돌아가신 조상님들까지 입을 더하는 집에서는 곡소리가 절로 났다. 요즘은 명절 노동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가족도 많아졌다 하지만 글자에 앉은 여인처럼 마음 편하게 차려 주는 밥상을 즐길 수 있는 날이야 고작 며칠일 테다. 기적 같은 안식을 선물 받고서 그렇지 못했던 다른 날들을 애써 떠올리는 나도 참 고약하다.

남편의 집에 와보니 명절이면 전부치는 일이 큰 일이었다. 용산의 낡고 좁은 아파트 부엌에 신문 몇 장을 펼쳐 놓고 온종일 전을 부쳐야 했다. 바닥에 앉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밀가루, 달걀 등과 씨름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은 기름 냄새로 가득하다. 명절이 끝나면 식은 전은 늘 쓰레기통에 버려지는데, 십수 년이 지나도록 그 일을 반복한다. 코로나가 음식 쓰레기 줄이는데 일조한다 싶어 어떤 면에선 고맙기도 하다.

육전, 동태전, 깻잎전, 버섯전 옷 입히던 계란물이 기름과 밀가루에 뒤섞이지 않고 본래의 형과 맛을 내며 한가하게 올려다보는 보름달처럼 식탁 위에 오르니 한때이나마 편안하게 명절을 지내는 내 입장 같다. 갓 내린 커피 향에 문득 엄마의 시간이 궁금해진다. 엄마는 당신의 명절 노동이 끝난 후에도 새로운 손님맞이에 또 다른 고단함을 짊어졌다. 사위, 며느리는 엄마에겐 늘 귀한 손님이다. 며느리 오기 전 음식 장만해두랴, 기름범벅으로 지쳐 들어서는 딸 눈치 보랴, 명절 중 단 하루도 엄마는 편치 않았다. 섭섭하기는 해도 엄마에게도 코로나 휴가는 반가운 선물일 테다. 엄마의 식탁에도 좋아하는 책 한 권과 차 한 잔이 올랐을까. 아니면 빈 식탁에 엄마는 단잠을 주무실까. 엄마도 나도 이렇게 편안한 여자의 상형문이 되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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