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초 먹은 금갈치
2020년 10월 1일 추석
은빛 갈치가 금빛을 입었다.
추석 당일 여행 테마는 <禮>다. 어린 시절 명절엔 할머니 댁 마당이 늘 시끌벅적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삼촌, 사촌에서 육촌까지 온 집안 식구들이 음식을 나누고 제사를 지내고 산소를 찾는 일이 몇 해간 반복되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7촌 아저씨였던 것 같다. 점심 먹고 오후면 두 아이와 아내와 함께 대문을 들어서는 소리가 요란했다. 유쾌한 가족이었고, 사람들은 그네들 이야기에 정신없이 웃어댔다. 엄마는 얼른 그 자리가 끝나길 바랬겠지만, 난 그이들의 이야기가 우스워 언제나 그 만남을 기다렸다. 특별한 내용은 없었지만 과장된 제스처와 익살스러운 말소리가 듣는 이의 재미를 더하였다.
살다 보니 기다려지는 만남이 좀 더 생겼다. 집 밖 나서기가 조심스러운 긴 연휴, 다투지 말고 잘 보내라는 응원으로 밑반찬 두세 가지가 배달되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지인 부부가 직접 다니러 왔다. 2인 식탁에만 최적화되어 있는 내게 그 부인은 레전드다. 모임의 규모가 많아지면 한 번에 10여 명의 만찬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녀의 식탁에는 늘 모자람이 없다. 풍성하고 또 정감이 넘친다. 영국식 꽃문양 접시들과 각기 다른 형태의 커피잔, 출처가 궁금해지는 받침들이 그 가정의 화목한 이야기를 말없이 전한다. 지난 주말에도 그녀가 내놓은 차받침에 다들 질문이 쏟아졌다. 한 종류는 가죽인데 어떤 잎모양을 찍어 냈고 다른 것은 광목 위에 붉은색 잉크로 프로타주한 나뭇잎이 어릴 적 추억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렇게 식탁 위에 오른 음식과 식기와 정성이 둘러앉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녀의 남편은 회계사다. 숫자를 다루는 그분의 이름은 아내만큼 여성적이다. 그래서인지 숫자와 여성의 섬세함을 고루 지녔다. 모임 중 대화의 흐름이 끊기거나 어색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유머와 장난을 섞는다. 심각한 분위기에서도 유쾌함으로 모임을 마무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언어적 센스 덕분이다. 사실 이 미식 여행도 그의 독촉 문자가 한 몫하였다. 첫날 아침 식단을 그룹채팅방에 올렸더니 ‘점심은? 저녁엔 무슨 메뉴?’하고 기다리는 탓에 하루 두 번만 차리려던 남편의 식탁이 세 끼가 된 것이다. 아내를 위한 이벤트이기도 하지만 열렬 구독자를 위한 서비스이기도 한 셈이다. 특별하게 준비한 남편의 식탁과 달리 이들 부부의 식탁은 화려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곳엔 언제나 사람에 대한 예의가 있다. 소박하고 일상적이지만 최고의 형식과 배려를 담은 그 진심을 배우고 싶다.
이렇게 부부의 기억을 빌어 평범한 갈치구이에 금빛으로 수사를 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