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화상간

어쩌다 연어

by 미정의 서

부산이 고향인 나는 생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조개 미역국보다는 소고기 미역국을 더 좋아한다. 하동서 올라온 시댁은 국도 생선국을 선호하고, 갓 캔 석화를 시켜 올려 가족들이 모여 앉아 까먹는 풍경은 무척 낯설었다. 그런 내가 좋아하는 생선요리가 있다. 초밥이다. 특히 생연어에 토치로 살짝 불향을 얹으면 그 맛이 일품이다. 다음 메뉴를 구상하고 있는 남편에게 넌지시 연어초밥을 던져 보았다. 전기밥솥에 쌀을 씻어 안친 후 ‘초밥’ 버튼을 누르고는 장바구니를 들고 나선다. 김 빼는 소리와 함께 고슬고슬한 밥이 완성될 때쯤 연어와 고추냉이를 담은 장바구니가 도착했다. 밥에 단촛물을 섞어 모양을 잡고 먼저 슬라이스 해 둔 연어를 얹어 불향을 더하니 여느 일식집 못지않은 식탁이 내 앞에 놓였다. 남편은 계획하지 않은 메뉴의 식탁을 <어쩌다 연어>라 이름 지었다.

남편을 만나고 처음으로 소개한 이는 선배 부부였다. 첫 만남이 어색해서였을까. 선배의 남편은 내 남자 친구에게 쉬지 않고 술을 권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연희동에서 꽤 유명한 일식집에 초대받아 평소 먹어보지 못한 진귀한 음식을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술잔도 기울고 해도 기울어 헤어질 때 즈음 남자 친구는 취기에 그날의 기억을 잃었다. 그의 집을 찾느라 언뜻 들었던 가회동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리고 난생처음 파출소에 들어가 신원조회를 거친 후 그의 주소를 받아 들었다. 일주일 전 출고한 내 첫 차에 제대로 신고식을 치른 것부터 만취한 남편을 부축해 들어선 시댁 어른과의 민망한 첫 만남은 우리 부부의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생선요리를 마주할 때면 언제나 그때의 ‘사고’를 이야기한다.

지루한 일상에 한 번씩 꺼내보며 웃을 수 있는 이 에피소드는 선배 부부가 준 결혼선물이었다. 그들은 결혼식에 오지 못했다. 그 해 겨울, 선배는 뇌출혈로 큰 수술을 받았고 언어장애와 편마비가 후유증으로 남아 지금까지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고되고 외로운 시집살이 중에도 자아실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선배는 뒤늦게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교수 임용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평소에 즐겨 읽던 장자의 혼돈처럼 차곡차곡 채워 온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수술 후 기적적으로 깨어난 그녀를 절망하게 한 것은 자유롭지 못한 몸, 잃어버린 자리보다 사라진 언어였다. 쓰러지던 그날도 강의를 마치고 간단하게 식사를 함께 한 후 글쓰기를 위해 서둘러 집으로 향하던 선배였다. 읽고 쓰는 일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언어의 상실은 생명을 잃는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혼 후 우리는 선배 부부를 자주 찾았다. 그녀에게 언어를 되찾아주고 싶어 얼마간은 매일 집으로 가 함께 윤동주의 시를 읽었다. <별 헤는 밤> 한 자 한 자 글자들을 읽으며 잃어버린 소리의 기억을 되찾으려 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과 노력도 재활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느슨해졌고 멀리 이사한 후에는 고작 일 년에 두세 번 만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감사하게도 선배의 남편은 여전히 아내에게 헌신된 사람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를 위해 기도하고 그녀를 대신해 살림을 한다. 이따금 아내의 짜증에 상황을 원망할 법도 한데, 그는 아내의 곁을 묵묵히 지켜냈다. 지난 오월에는 그런 선배 부부에 대한 오마주로 짧은 동화 한 편을 써 드렸다. 글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동안 틈틈이 그려 보낸 선배 그림에 대한 내 답장이기도 하다. 어쩌다 선배와 나도 시화상간의 주인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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