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전
캔버스에 물감을 입힌 듯 구름 사이로 내민 달이 그림 같다. 밥상을 물리고 추석 저녁달을 보러 현관을 나서면서 남편이 저녁상 제목을 알려준다. 그리 좋은 기억은 없어도 명절엔 “그래도, 전!”이란다. 하기야 편안하게 식탁에 앉아 받은 동태전에는 기름 냄새에 범벅된 머리카락도, 온종일 펴지 못한 채 굽은 허리의 사연도 없으니 막걸리 한잔 곁들여 즐길만하다. 달과 술 그리고 전은 더없이 잘 어울리지만 이 세 가지를 생각하면 삼촌의 마지막이 떠올라 슬프다.
삼촌은 술과 바둑을 좋아하셨다. 외가 식구들이 모일 때면 언제나 한상 술자리가 펼쳐졌고, 외숙모는 매번 그 많은 식구들의 미각을 유혹하는 마술을 부렸다. 술잔이 오고 가고 웃음이 피어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의견에 아슬아슬한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으나, 시끌벅적한 술자리의 끝에 삼촌은 늘 바둑을 두셨다. 생각해보면 삼촌에게는 361개의 교차점 어딘가에 바둑알 하나씩 얹어가는 그 시간이 그날의 정리였던 것 같기도 하다.
예의와 규율에 엄했던 아빠와 달리 삼촌은 늘 부드럽고 여유로웠다. 첫 개인전을 하던 날, 삼촌은 내 작품의 첫 구매자가 되어 주셨다. 기도하는 두 사람에 관한 상형문자였는데, 가장 만족했던 작업을 삼촌이 알아봐 줘서 기뻤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할 때도, 복잡한 정부 보고서를 쓸 때도 언제나 ‘그래, 도전!’하고 응원해주던 그 따스한 목소리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 삼촌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어느 사찰에 잠들어 계신다. 고요히 흐르는 강을 내려다보며 그토록 좋아하던 술을 그리워하고 계실까?
퇴직 후 서울을 둘러싼 산을 따라 집을 구하시다 한 번은 구룡산 자락, 한 번은 북한산 자락에 위치한 아파트를 선택한 것은 모종의 타협이었다. 노년에 자연 가까이 지내길 원했던 삼촌과 달리 숙모는 시골 생활을 싫어하셨고 아이들 곁에서 도시의 편리를 누리고 싶어 하셨다. 어쩌다 노년의 생활을 그려 보는 두 분 대화에 낄 때면, 마음은 삼촌을 따를지라도 말은 숙모를 응원하는 이중성의 기술을 부려야만 했다. 진땀이 났지만, 그때가 그립다. 누워 계신 그곳도 삼촌이 다녀 보시고 정한 터라고 숙모가 전할 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순간도 아내와 자신의 기호를 조율하여 선택하셨구나.'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삼촌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오셨다. 병원 생활이 답답하거나 치료가 맘메 들지 않을 때면 그렇게 전화를 하시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면서 큰 산 같던 삼촌이 아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속상했고, 성장한 자녀들이 있는데 그저 주변인인 우리가 조언할 처지도 아니었다. 숙모도 지쳐 갔고, 언젠가 누나에게 전화로 외로움을 호소했던 삼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려온다. 삼촌에게는 의료적 기술보다 사람이 필요했고, 술과 바둑을 즐기던 일상이 그리웠던 것이다. 코로나는 핑계였다. 그때 삼촌이 좋아하던 것들을 그림이라도 그려가 이야기해야 했고, 답답하고 짜증스러운 병상 일지를 들어 드려야 했다. 많은 과오가 있지만 크게 후회 않는 내 삶에 다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마지막 삼촌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