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아내

접시꽃 당신

by 미정의 서

가득 찬 달로 배부른 이튿날 남편은 과일과 차로 간단한 아침을 차렸다. 평범한 명절이었다면 다음날은 친정이나 집에서 늦잠을 자고 정오가 지나서야 첫 식사를 해결했을 테다. 남편이 기획한 셋째 날 미식 여행은 구성은 간단해도 손이 많이 가는 상차림들이다. “접시에 꽃처럼 담아 당신께 바칩니다”는 낯선 문장을 툭 건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따뜻한 차로 갓 깨운 위장을 달래는 짧은 순간, 식탁의 주제인 <접시꽃 당신>의 전문이 궁금해져 시를 찾아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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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시인의 눈에 아픈 아내는 접시꽃을 닮았다. 접시꽃은 그 전설에 따라 수천 년 대문을 지켜왔고, 아내도 그렇게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었으리라. 시인의 담장 너머에는 접시꽃 대신 옥수수들이 줄지어섰나보다. 넓게 퍼진 접시꽃 잎 대신 길게 뻗은 옥수수 잎으로 나리는 빗방울은 더 미끄럽게, 속도를 내며 땅을 적시웠을 것이다. 아내를 잃는다는 슬픔의 깊이와 탄식을 빗방울에 늘어진 잎들에 새겨 두었다. 햇빛 쨍쨍한 여름이면 단단하게 익은 노란 알곡 대신 빗방울 구르는 초록잎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화려한 밥상 앞에서 시인의 슬픈 사연을 읊조리다 보니 작년 여름 잠 못 이루던 남편의 심장 소리가 겹쳐 떠오른다.


남편은 환자를 치료한다. 매일 환자를 보는 일이 힘들지만 자신의 직업을 하늘이 준 사명이라 생각하는 남편은 모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한다. 정작 자신의 건강은 돌보지 못하고 근무 시간 외에도 전화로 환자의 상태를 살피던 어느 저녁, 남편은 숨쉬기를 힘들어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걸음 떼기도 힘들어하는 그에게 찾아온 병은 심방세동이었다. 그간의 과로가 심장에 무리를 준 모양이다. 의사가 내린 처방은 정기적으로 검사하고 관리하는 것이 전부였다. 처음 증상이 나타난 후, 어디서든 단잠을 자던 남편의 수면 패턴에 변화가 생겼다. 자다가 깨어 불규칙한 심장박동에 불편해하는 남편의 발을 매일 밤 만져주었다. 그렇게 발을 만지면 잠시라도 편하게 잠들었기 때문이다. 잠 못 드는 밤이면 늘 외우던 시편을 함께 읊조렸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는 이전처럼 환자들을 치료한다. 시인의 아내처럼, 시인의 바람과 같이, 남편은 누군가에게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며 매일을 살아간다. 그런 남편이 고귀하지만, 한편으로는 밉다. 미움이 커질 때면 그의 메모장 기록 하나를 훔쳐본다.



잘 잤습니다


웬일일까요


모처럼 잘 잤습니다


아픈 이후 힘겹게 아침을 맞은 일이 많았는데요

침상에서 일어나 발을 디디니

미끄럽군요


어젯밤 잠든 사이에

아내가 제 발을 만져 주었군요


샤워기의 뜨거운 물기운에

발에서 아내의 향기가 나는군요


예수님의 발에 뿌린 어느 여인의 향유

주님은 기꺼이 생명을 내어 주셨죠


생명이 다 하는 날까지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접시꽃 향 한 모금 넘기며 힘들지만 감사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나도 그처럼 생의 마지막까지 사랑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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