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거의 오후
파리에서 아침을, 함부르크에서 점심을 먹는다. 다진 고기를 구워 만든 함부르크의 스테이크가 내가 좋아하는 햄버거가 되었다는 설을 풀어가며 고기 대신 하얀 두부에 당근, 양파, 캔 참치를 잘 섞어 패티를 만들고 감자는 굵게 채 썰어 기름에 튀긴다. 코젤 맥주와 함께 차린 식탁의 제목은 <함부르거의 오후>다. 남은 감자 조각으로 하트며 별 모양을 낸 남편의 위트에 수다스럽게 칭찬의 말들을 쏟아내다가 문득 식탁에 오른 별 주위로 대기를 떠돌던 철자들이 가만히 내려앉기를 기다린다.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가 많지만 여행이 자유로워지면 가장 먼저 가보고 싶은 곳이 독일이다. 수년 전 밀라노로 들어가 베를린으로 나오는 여행을 계획했었다. 로마에서 급히 인천행 비행기를 탈 일이 없었다면 좀 더 일찍 나의 스승을 만났을지 모른다. 발터 벤야민. 낱장의 자료들에서 만난 낯선 독일인 이름이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하는 내내 쫓아다녔다. 글을 쓰고 사색을 할 때마다 암호문 같은 그의 문장에 붙잡혔다. 어쩌면 베를린을 밟지 못한 아쉬움에 더 그 이름에 집착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10여 년의 세월이 지나 텍스트로만 알았던 벤야민의 쓰기를 서울 북쪽 오랜 시약창고에서 재현하게 되었을 때, 나는 또 한 명의 벤야민을 갖게 되었다. 홀로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으로 향하던 그때, 그녀와 나는 함께 여행 중이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고 자신의 강의시간까지 내준 고마운 선배였다. 두 학기 그녀의 수업을 열정적으로 듣기도 했다. 20년 세월이 지나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후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하던 그녀를 한 순간도 잊은 적 없다. 그런 선배와 함께 한 첫 여행에서 나는 생의 반원 위로 아른거리는 북극성을 만났다. 밤이면 길 잃은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준다는 그 별의 의미를 그때는 몰랐다. 긴 공부를 끝내고 매일 밤 서고를 헤매며 이런저런 글자락을 뒤따라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이등성의 안내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엔 잊힌 이름과 글자들이 별자리를 수놓고 있었다. 같은 성씨의 족보에서 사라진 이름들, 그리고 오직 대를 잇는 도구로서만 얹힌 다른 성씨의 이름들. 가문의 자랑이었던 나도 결혼이 그런 이름들의 반열에 오르는 수순인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아무도 그 사실을 알려주는 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기혼과 미혼의 딸 사이에서 잠시 고민하셨던 것 같다. 그녀도 결혼으로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으니까.
전시의 끝날 선배의 작품들로 지은 집을 헐고 서고를 비우고 나오던 그 밤, 어둑한 시약창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뉘었던 <꽃자리>가 계속 맘에 걸렸다. 가장 내밀하고 아픈 말들로 이어진 종이 뜨개에 붙은 반어적 수사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 나의 실수였다. 그 말들이 드러나지 못하게 바닥에 고정시켜 버린 무지한 기획자를 선배는 말없이 받아주었다. 그런 선배에게 할 수 있는 내 작은 보은은 밤하늘에 그 <꽃자리>를 되살려내는 것이라 생각했고 지금도 나는 그 부활의 낱말들을 기록하는 중이다. 그 별자리가 떠오르는 날, 이제는 나의 벤야민이 되어버린 선배와 함께 베를린의 북극성을 찾으러 떠날 계획이다. 로마에서 아쉽게 미뤄두었던 그 여정이 긴 공백 끝에 이어지는 그날을 날마다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