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에게 선물한 글
몇 해 전 기획한 전시장에 함께 연구일을 하던 선배가 찾아왔다. 선배는 연구 중 과로하여 쓰러졌고 몇 차례 뇌수술을 받았다. 후유증으로 언어장애와 우측마비를 안고 살아야 하는 선배를 수술 후 한 두 해는 열심히 찾아보았던 것 같다. 그러나 그즈음 결혼준비에다 새로 시작한 공부로 바빴던 나는 조금씩 벌어지는 선배와의 시간적, 심리적 거리를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다. 전시장을 찾은 선배는 그런 내게 섭섭한 마음을 조심스레 전했고 곧이어 터진 코로나 기간 내내 그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난 이 전시에 왜 초대하지 않은 거야?"
나의 첫 개인전도 미술관 1, 2층을 나누어 함께 열었던 만큼 믿고 의지하던 선배였다. 처음 연구일을 시작할 때 도움도 많이 받았다. 무엇보다 선배의 남편은 우리 연구소의 든든한 후원자였다. 어쩌면 첫 기획 작가는 선배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인정과 일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죄송한 마음이 컸지만 서둘러 화제를 돌려 선배의 질문을 피했다. 코로나 확산이 조금씩 잦아들 즈음 선배를 찾았다. 스승의 날을 핑계 삼아 선배와 나의 은사님을 함께 뵙기로 한 것이다. 은사님의 꽃과 함께 선배의 것도 준비했다. 꽃다발 속에 짧은 글 한편도 인쇄하여 넣어 두었다.
선배는 전시 이후 꾸준히 나에게 그림을 보내주었다. 작업실에 앉아 불편한 몸으로 매일 그림을 그리는 그녀를 떠올렸다. 그림에는 그녀가 살아온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눈처럼 뽀얀 피부에 늦둥이 사랑을 독차지했던 그녀는 그림을 잘 그렸다. 아버지의 재능을 모든 자녀들이 골고루 나누어 받았지만, 거기에 선배는 사랑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더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맞닥뜨린 아버지의 죽음은 밝고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에 걷을 수 없는 그늘을 새겼다. 메시지로 전송한 그림들을 한 편 한 편 올려보다 문득 <글을 모르는 철학자>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림마다 떠오르는 문장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그렇게 짧은 글 한 편이 만들어졌고 그 글을 인쇄하여 선배에게로 향하는 길이었다.
철학자의 서고는 조금 특별하다.
한 권 한 권 낡고 바래 아주 오랜 귀중본들을 소장해 둔 것 같기도 하다.
여느 서고와 달리, 책은 색깔별로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양에 따라 배열되었다.
철학자는 매일 첫 시간 서고의 공기를 마신다.
그리고 조용히 서고 앞으로 다가가 책들과 인사한다.
인사를 건네받은 책등의 글자들은 먼지와 습기에 탈색되어 좀처럼 읽히지 않는다.
어떤 것은 잿빛 책등 위로 검은 점들만 흩어져 있다.
잉크가 떨어져 나간 자리다.
서고의 책들은 철학자와 눈인사만 나누었을 뿐 한 번도 그의 손에 펼쳐진 적이 없다.
철학자는 글을 몰랐다.
한창 글 쓰는 일에 몰두해 있던 이른 저녁, 갑자기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글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철학자는 아침이면 서고를 찾아 잃어버린 글자들에 인사를 건네었다.
그리고 암호를 풀듯 기호의 문양들을 맞춰가며 자신의 시간들을 건져낸다.
그렇게 시작된 선배의 그림책 출간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로 끝났다. 촬영한 그림을 보정하고 글을 다듬어 책으로 만들어 보았다. 선배 부부는 그것만으로도 흡족해했다. 코로나로 전시도 열 수 없는 상황이라 더미북 형태지만 그간의 작업들을 내 이야기로 한 번 매듭짓는 것 같다며 감사를 전했다. 그런 감사마저도 송구해 나는 그림책 공모전을 찾아보았다. 마침 어느 출판사의 공모일정이 가까웠고 더미북을 몇 권 더 제작해 응모해 보았다. 기대했지만 결과는 아쉬웠다. 모자란 글 실력 때문인 것만 같아 죄송했다. 그렇게 출간되지 못한 철학자의 이야기를 이곳에 기록해 두려 한다. 언젠가 잘 포장한 책 한 권을 가지고 선배를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