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레마의 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정의 서 Jul 17. 2023

키프로스에서 온 편지 1

일곱 교회 순례기 2

노교수의 포세이돈이 로도스를 지나 키프로스를 눈앞에 두고 아침을 맞았다면 그 식탁엔 분명 복제된 비너스상이 마술 같은 이야기와 함께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언어로 되살아날 아프로디테의 거품은 로도스에서 멈췄다.


잠깐 눈만 붙이고서 곧 깨어났다. 이국적인 일출이라도 볼까 하여 방문을 나선다. 긴 비행에 지친 일행은 아직 잠들어 있는 시간, 오직 한 사람 깨어있는 프런트 직원에게 고개 인사를 건네며 조용히 호텔 정문을  빠져나갔다. 짙은 안개가 호텔 외벽을 두르고 익숙지 않은 향신료 냄새가 그 속에 진하게 베여 있다. 폰을 꺼내 나침반을 열고 해 뜨는 방향을 찾아본다. 이미 일출 시각을 한참 지났는데도 어스름조차 보이질 않는다. 주차장을 지나 차단기가 있는 대로변까지 나가보지만 여전히 안갯속을 걸을 뿐이다. 호텔 옆 바에서 밤새 고객들을 상대하던 남자 몇몇이 여행자의 기대를 저버릴 만큼 무뚝뚝한 표정으로 내가 걷는 방향으로 걸어온다. 두려움에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급히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남편과 함께 하루 일정을 위해 기도하며 여전히 안갯속에 숨어있는 이스탄불식 아침 인사를 기다린다.

이른 기상은 시침을 초침으로 쓰는 것만 같다. 각자의 묵상을 마치고 오전 진료에 필요한 물품까지 챙겨두고 여유 있게 식당에 내려왔지만 일행은 보이질 않는다. 아침 식사도 우리가 처음인 듯하다. 미세한 점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색감을 지닌 다양한 과일 잼들, 그리고 벌집째 진열해 놓은 꿀이 눈에 띈다. 대개 호텔식 아침은 커피와 빵, 야채와 과일 섞은 샐러드에 스크램블에그 정도로 끝내는 편인데, 이 독특한 진열대는 입안 가득 마녀의 터키쉬 딜라이트에 빠져든 에드먼드를 상상하게 만든다. 어느새 두 손은 앙증맞게 구워 둔 컵모양 과자에 잼을 하나씩 퍼 나르고 있다. 덕분에 이스탄불의 첫 식탁은 “지금껏 몰랐던 가장 달콤한 아침”으로 기억될 것 같다. 부족한 잠을 대신해 달콤함에 취해 있는 나를 깨우는 실루엣이 동편 실외 테라스를 잇는 통유리창으로 드러난 햇살과 함께 지나간다. 어제 오후 키프로스로부터 온 L과 동행한 또 다른 L 부부다.

이스라엘에서 처음 L 부부를 만났다. 직업이 의사라는 것과 L의 목회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L에 대한 그들의 깊은 존경과 헌신이 느껴졌다. 바울의 누가이거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기도 했다. 이스라엘에 이어 두 번째 사역지인 이곳 이스탄불까지, 장거리 비행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국서 단숨에 달려와 주었던 것이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순례에 앞서 한국에서 사역팀이 들어오기 전 그들은 짧은 키프로스 순례를 함께 했다. 가보지 못한 그 순례길이 무척 궁금했지만 반가운 인사만 건네고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자리로 돌아와 식탁 가득 아이처럼 펼쳐 놓은 잼들의 컵을 치웠다. 다행히 그 장면은 내 기억 속에만 남았을 뿐이다. 오전 사역을 끝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중 지나가던 L 부부와 두 눈이 마주쳤다. 그들이 먼저 다가와줘서 고마웠다. 게다가 L은 마침 궁금했던 키프로스 이야기를 들려주려 폴더폰을 열어 보인다. 살짝 엿본 화면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행 13:4,5) 그곳에 왔다."


키프로스의 남서해안 파포스엔 에게해의 파도가 밀려와 탄생했다는 아프로디테 신화를 다룬 유적지가 수많은 여행객들을 불러들인다. 섬의 반대편 살라미스에는 다른 목적의 순례자들이 초기 사도들의 흔적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그 행렬을 두 L이 함께 잇고 있었다. 지중해 동편, 이 아름답고 역사적인 섬에는 상이한 두 입구가 서로의 등을 맞대고 열려 있는 셈이다. 신화적 이야기와 예술적 영감을 찾는 것과 신앙의 유산을 찾아 문을 두드리는 것, 내겐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경험의 기회다. 제한된 인간의 경험 세계 안에서 모든 것은 극단으로서 존재하니 말이다. 그리스도의 오심도 우리에게는 대단히 모순적인 이야기가 아니던가. 지고의 왕이 한 아기로 말구유에 누이다니! 정의와 인자가 서로 입맞춤을 하다니! 극단들 속에 드러나는 진리의 순간은 내가 알고 있고 경험해 온 것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이제는 노교수의 말 자리에 L에게서 온 활자들을 세워보려 한다. 살라미스에 안치된 위로자의 육체처럼, 핸드폰 속에 옮겨 담은 그의 글도 내게는 이미 신성한 것이 되어 버렸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의 이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