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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의 서 Jul 18. 2023

샬롬, 튀르키예

일곱 교회 순례기 3

지진은 모든 것을 앗아갔다. 함께 했던 성도들, 예배의 공간, 삶의 터전, 그리고 평안을. 동쪽 시리아 접경에서 발생한 지진 현장을 복구하는 일에 튀르키예의 선교사 모두가 힘을 더했다. 잦은 여진에 두려울 법도 하건만 그들은 그리스도께 속한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위험과 피로를 마다하지 않고 매주 동남쪽으로 이동했다. 몇 달간 지속되는 복구작업에 그들의 육신은 지쳐 갔고, 여진의 공포와 건물 잔해를 들어올 때마다 드러나는 시신 그리고 코 끝에서 가시지 않는 악취에 괴로웠다. 그들을 위한 위로와 회복이 필요했다. <샬롬, 튀르키예>는 그런 선교사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지표면 위에서는 유럽 문명과 아시아 문명이 만나 화려하고 장대한 도시 경관을 이루고 있지만, 수세기동안 그 아래서는 서로 다른 지각판이 마찰하며 크고 잦은 지진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무너진 그곳으로 되돌아가 건물을 짓고 땅을 일구고 삶을 이어갔다. 땅이 흔들리고 산이 무너져 다시 삶의 기반을 빼앗겨도 뿌리내린 고향을 쉽게 떠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테다. 한 사람 한 사람 선교지의 사정을 듣고 불편한 곳을 확인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여기 태생도 아니고 단지 스스로 영적으로 그곳에 뿌리내린 자들이니 어찌할 수 없는 자연재해 앞에 고국으로 피한 들 누가 뭐라 할까.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들이 달려가 쏟는 눈물과 땀과 사랑을 현지인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이 화약고 같은 땅으로 부르신 뜻을 이해한다. 그래서 아낌없이 자신의 육신을 그곳에 묻는다. 오늘 그의 아픈 곳을 치료해 주지만 내일이면 아직 아물지 않은 그 팔과 다리로 현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그 제자들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잠과 식사 시간을 줄여가며 볼 수 있는 환자를 최대로 보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짧은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시 사역지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리스도의 일을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모양이 사람마다 다르지만, 선교사는 좀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서나 국외에서 알고 지내는 선교사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 정서에 깊이 뿌리내린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늘 후원자를 찾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단 재정만이 아닐 것이다. 기억 그리고 기도가 그들을 그 낯선 땅에서 버티게 하는 실제적인 힘이라는 것을 안다. 건강해서 나선 길도 아니고, 부유해서 떠난 길도 아니다. <성 바울>이라는 이름을 지닌 교회나 성당을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떠오르는 단어 두 가지가 있다. 정주와 이동. 바울은 어디서도 자리를 갖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전하고 떠나온 그의 흔적 위에 뒷사람들이 장소를 기리고 건물을 지었다. 다양한 색채의 모스크로 가득 메운 이 땅 곳곳에 바울의 걸음이 닿았고, 보이지 않는 그 흔적 위에 자신의 육체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짓는 튀르키예의 선교사들은 이 땅의 방랑자다. 주의 평안과 은혜가 어디에서도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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