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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잘 한 일 : 시부모님과 식사

멀리 계신 친정 부모님을 대신해 시부모님이 나를 살피고 챙겨주고 있었다.

by 백수쟁이

남편이 떠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첫 주말, 남편 없이 시부모님과 점심을 먹었다. 시부모님과는 가까이 살고 있어 동네 밥집에서 만났다. 함께 식사하고, 커피를 마셨다. 어머님은 나를 만날 때마다 무언가를 챙겨 오신다. 오늘도 한 보따리 챙겨주셨는데, 남편 없는 동안 잘 챙겨 먹으라며 여러 밑반찬과 과일을 주셨다. 남편이 없을 때면 더 챙겨주시려는 마음이 참 감사하고 애틋하다.


매주 토요일에 시부모님과 식사하기. 올해 내 다짐 중 하나였다. 이런 다짐을 한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가끔 핸드폰 앨범 속 가족사진을 보면 기분이 이상했다. 우리 모두 변함없이 늘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지금과 다른 젊은 우리가 있는 거다. 부모님 사진을 보면 더욱 그랬다. 고작 1-2년 전 사진인데도 지금과 다른 젊음과 생기가 있었다. 흔히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고 하는데, 부모님의 시간은 더 빠르게 지나가는 걸까. 빠르게 지나는 만큼 세월의 흔적은 더 깊게 패이는 걸까. 사진과 달리 부모님을 만날 때면 부쩍 주름이 깊어지고, 걸음은 느려지고, 기운이 없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럴 때면 부모님과 즐겁고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새삼 깨달아 효도와 만남에 게으름을 피우거나 핑계를 대지 말아야겠다고,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주말 식사를 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시부모님이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한두 달에 한 번 찾아뵈었는데, 가끔 만나니 시부모님이 어렵고 어색했다. 서로 보살피며 지내려고 한동네에 사는 건데, 옆집 이웃보다 만나기 어렵고 같이 있는 게 어색하면 어쩌나 싶었다. 서로를 편하고 익숙하게 여길 수 있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므로 한 번이라도 더 만나며 친해져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토요일 점심이면 함께했다. 집에서 음식을 차려 식사했다. 외식이 더 간편하고 맛있지만, 손수 차린 음식으로 함께하고 싶기도 했고, 외식 비용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가끔은 더워서 불 앞에서 요리하기가 싫다고, 맛집을 발견했다고 핑계를 대며 외식을 하고, 어떤 날은 역할을 바꿔 남편이 요리를 했다.


남편의 출국을 앞두고, 토요일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내심 고민했다. 남편 없이 시부모님과 시간을 보낸 적이 거의 없어서 나도 시부모님도 부담스럽고 낯설 것 같아서. 하지만 오늘 함께 식사해 보니 우려와 달리 편안했다. 삼촌 장례 후 처음 만나는 거였는데, 서로를 살피고 위로할 수 있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앞으로도 토요일마다 함께 식사하려 한다. 다음 주 토요일엔 어떤 요리를 해야 할까나.


한 때는 친정 부모님이 멀리 계셔서 잘 챙기지 못 하고, 자주 만나지 못 하는 게 속상했다. 시부모님이라도 가까이 계서 다행이라 여기며, 시부모님도 내 가족이니 친정 부모님 대신 가까이서 좀 더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요즘 남편 없는 빈 자리를 시부모님이 여러 모양으로 챙겨주시는 걸 보며 그동안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멀리 계신 친정 부모님을 대신해 시부모님이 나를 가까이서 살피고 챙겨주시고 있다는 걸 알았다. 잘 해야지, 양가 부모님께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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