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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Sep 18. 2021

#57. 남편이 떠났다.

내가 바라던 결혼 생활

8 셋째 주였던가. 남편이 혼자 심심할  읽으라며 책을 한가득 사주었다. 그리고 그는 짐을 챙겨 제주로 떠났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이직까지 얼마간의 자유 시간이 생겨 떠나게  . 그는  나름대로 제주에서의 계획을 세웠고, 나는 나대로 혼자 지낼 생활에 대해 계획을 세웠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 나는  생활을   돌아보며 다시 세팅하고 싶었고, 책을 무지하게 읽고 싶었으며 매일같이 글을 쓰고 싶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핑계를 대자면 회사 일이 많았다. 그리고 혼자 집에 있는  자체로 너무 좋아서 무언갈 하고 싶다는 생각도 안 들었다. 대신 주말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만들며 보냈다.


 주말은 회사 동료들과 원데이 클래스를 들었다. 예전부터 북바인딩을   해보고 싶었는데 동료들과 함께 해보게  . 북바인딩은 어렵지만 재밌었고, 동료들을 여의도가 아닌 홍대에서 만나니 색다르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다.


그다음 주말은 부산에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만나야지 하면서도 코로나 때문에 거리두기 단계가 낮아지면 만나자고 계속 미루다가 4단계일  만나게 됐다. 결혼  처음 보는 거라 결혼식   모습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친구가 살면서 내가 그렇게 행복하게 웃는  처음 봐서 기분이 너무 좋고 자기가 눈물이    같았다며 말해주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그렇게 행복해했었나 싶기도 하고, 십 대부터 만나던 친구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어 있는 거지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이 없는 마지막 주말엔 남편을 만나러 제주에 갔다.  주에 일이 정말 많았고 백신까지 맞았던 지라 상태가 메롱이었는데 남편이 보고 싶어 찾아갔다. 뭐가 그리 반가웠던 건지, 만나자마자 웃고 서로를 껴안았다. 관광 따위 관심 없는 우리는 먹고 쉬고 자수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남편을 두고 먼저 서울로 돌아왔다.


남편이 떠났다는 말을 주위에 했을 때 반응들이 다양했다. 오랜 기간 동안의 여행을 허락(?)해줬냐라고 의아해하기도 했고, 남편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너네 부부 진짜 쿨하다고 칭찬(?)해 주기도 했다. 정작 나는 다른 생각을 했는데. 남편이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혼자 시간 보낼 생각에 신나서.


나는 앞으로도 나의 결혼 생활이 이러한 모습이면 좋겠다. 혼자 떠날 줄도 알고, 혼자 시간을 즐기며 보낼 줄도 아는, 그리고 가족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만들 줄 아는. 그도, 그리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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