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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쟁이 Jan 29. 2023

#68. 미용실에 앉아 하게 된 다짐

이렇게 살면 될 일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2022년 8월 15일, 지난 광복절에 무엇을 했는지 기억을 하는가.

그날 나는 히피펌을 했다.

그리고 2023년 1월 24일, 설 연휴 마지막 날 머리를 펴고 단발로 댕강 잘랐다.

살면서 펌을 하고 머리를 자르는 일이 뭐 대수인가 싶지만, 내게는 이 기억이 오래오래 남을 것만 같다. 내게는 꽤나 지난한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머리를 기르는 일이 지난했다. 머리를 길게 길러본 기억이 없었던 지라 머리카락이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일이 어려웠다. 가슴팍까지 길러보고 싶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내 머리카락은 성장을 멈춘 것만 같았다. 또 내 머리는 유난히 거지존에 오래 머물고 있는 느낌을 받아 단발로 다시 잘라야 하나, 종종 충동이 일었다.  

이따금씩 거울을 보며 어느 정도 자랐는지 길이를 가늠해 보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어떤 때는 하나도 자라지 않은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훌쩍 자라나 있었다.


어느 정도 머리를 기르고 히피펌을 할 때 즈음은 또 얼마나 지난했는가. 언젠가 히피펌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이야 늘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주저하게 되더라. 시도해보지 않은 일은 언제나 어렵다. 세계 여행처럼 거창한 것도 아닌 고작 히피펌인데도 말이다. 왠지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게 어울리지도 않을 것 같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잔뜩 들었다.


이 마음을 이기고 히피펌을 했다. 몇 개월이 지나 다시 머리를 자르는 일에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귀찮음. 세상에나 만상에나 머리를 자르는 일보다 해야 할 중요한 일과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머리를 또 하겠다고…? 2023년이 오기 전에 정리하려 했던 머리는 미루고 미루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다듬은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미용실 의자에 앉아 내가 생각한 것들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거든. 히피펌 하나를 위해 1년 넘게 머리를 기르고, 주저하다가 히피펌을 하고, 미루고 미루다 원래의 단발머리로 돌아오는 긴긴 여정을 지나왔구나.

앞으로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었다. 지난한 과정을 조급해하기도 하다가 이내 곧 무심하게 흘려보내면서. 하고 싶은 것에 망설이다가도 ‘에잇, 어디 한 번 해보지 뭐’라는 마음으로 시도하면서. 귀찮은 일은 한껏 미뤄 보다가도 결국은 해내면서. 이렇게 살면 될 일이다,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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