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일상이 별개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떠나기 전에는 여행하며 대단한 사유를 하고, 큰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을 줄 알았다. 그렇지는 않더라. 이따금씩 스쳐간 생각들 다짐들 정도다. 그때마다 메모해 두었는데 추려서 정리해 보았다.
시간이 흐르게 두는 것도 치유가 될 수 있다.
한 달간의 휴가를 갑작스럽게 떠난 건 아니었다. 작년부터 회사와 상의했던 일인데, 여러 상황과 사정으로 올해 3월이 되어서야 떠났다. 작년 3월, 힘든 일이 있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긴 논의 끝에 퇴사를 철회하면서 휴가를 달라고 했다. 당장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서야 떠났다. 여행지에서 뉴스를 듣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되었다는 보도에 알았다. 아, 그 일이 벌써 1년이 되었구나. 작년에 휴가를 가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갔더라면 도망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도망이 아니라 여행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시간은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1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그때의 힘듦이 많이 나아졌다는 걸 알았다.
낯선 이에게도 다정한 사람이 되자.
라 스페치아 호텔에서 체크아웃할 때다. 키를 반납하자 직원이 이것저것 체크하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말을 하기 시작하는데, 순간 나는 좀 긴장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우리 호텔에서 머물러줘서 정말 고마웠어. 앞으로 멋진 여행을 하길 바랄게.”
긴장했던 내가 점점 미소를 지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별 말 아닌데도 눈을 맞추고, 나를 배려해 천천히 말을 해주고, 건네는 따스한 메시지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여행 중 이런 다정함을 몇 번이고 만났고, 그때마다 결심했다. 나도 다정한 사람이 되어야지.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에게도 눈을 맞추며 다정하게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말이다.
나만의 멋을 만들어 가자.
이탈리아 사람들이 정말 멋있고 옷을 잘 입느냐고 친구가 하도 카톡으로 묻길래 유심히 관찰한 적이 있다. 내 눈에 들어온 건 그곳의 중년 이상의 사람들이었다. 옷은 세련되게 입는다기 보다는 깔끔하고 조화롭게 입더라. 그중 안경이 멋있었다. 어떤 유행이 있다기보다는 자기에게 어울리는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안경을 쓰는 것 같았다. 똑같은 안경 프레임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저런 걸 쓴다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다양하게 자기 멋을 만드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안경을 하나 사 오고 싶었는데 핏 자체가 너무 달라서 안경이 붕 뜨더라.
옷장이나 나의 물건들을 보며 참 일관성 없네,라고 종종 생각했다. 나만의 멋을 찾는 중이라 다양한 것을 시도해 보는 과정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한 번쯤은 내게 어울리는 혹은 내가 좋아하는 멋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시도.
따로 글을 쓴 적도 있는데, 아란치니를 먹으며 생각했던 것이다. 공항에서 맛보고는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던 아란치니를 카페에서 다시 먹었다. 정말 맛있어 그곳에서 매일 먹었다. 첫 번째 시도가 시원찮았다고 그걸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시도해 보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다. 분명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그게 무엇이든.
여행이 끝났다. 여행과 일상이 별개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여행하며 생각한 것들을 일상에서 떠올리고 실천하고 싶다. 그리고 기대한다, 여행 같은 일상과 일상 같은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