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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tage appMaker Jul 13. 2024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일상을리뷰

일상의 한 장면, 식사 그리고 대화

Dall-e에서 그나마 만족스러운 퀄리티는 유화이다.


1. 아버지와 서울의 어느 음식점에 갔다.


대기시간만 20분 걸리는 곳

그만큼 장사가 잘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우동사랑은 남다르다

평생 면과 빵이 주식이었기에 그 깊이도 다르다

아버지가 추천으로 갔던 곳의 음식은 가격과 면이 모두 훌륭했다

단지 내 취향이 아니었을 뿐이다


2. 대화에서 새로운 단어를 들었다.


우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나온 전자제품(테블릿)의 구매여부를 협의했다

가벼운 정치이야기가 나왔다

당연히 호불호의 셀럽들이 언급되었고

경거망동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아버지 입에서 처음 듣는 단어를 들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아버지와 점심을 종종할 때마다 “요리에 진심”이신 아버지는 본인의 기준에 부합하는 음식점을 알게되면 내게 벤치마킹을 시키실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따라가서 같이 식사를 하곤 하지만 “호불호” 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혈육이라도 취향까지 같기는 힘들다. 아버지가 클래식, Jazz와 파두, 깐소네 같은 “먹기좋은 음식” 같은 음악을 선호하신다면 내겐 Heavy metal(Nu metal 포함)과 90년대 힙합같은 “거친 음식” 같은 음악을 선호한다. 80대 중반의 나이에서도 음악 취향이 변하지 않은 아버지를 보면 나 또한 80대가 되어도 “linkin park”나 “korn”의 음악을 선호할 것이 분명하다.


in the end - 가끔 세상을 스스로 마감한 채스터 베닝턴이 생각 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언제나 잔잔한 톤”을 유지한다. 서로가 다름에 대해서 특별한 감정이 없다. 내 아들, 내 아버지라는 미명 하에 남의 인생을 함부로 정의내리는 것을 싫어한다. 각자 알아서 살길 바란다. 어찌보면 “무관심”이 베이스일 것이다. 단지, 좋은 길로 가기를 바랄 뿐이며 서로에 대한 평가도 무척 시니컬하게 정량적으로 하는 편이다.


그런 아버지와 대화를 하다보면 “사회선배. 고등학교 동문선배”로써 조언을 하실 때가 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런 자세로 아버지가 던지신 워딩을 추론하곤 한다. 그렇다 보니 가끔 “저 단어는 뭐지?”라고 할 때가 몇 년에 한 번씩 나오는 데 최근 대화에서는 “메멘토 모리”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멘토 모리


아들: 아버지? 메멘토 뭐라고요?

아버지: “메멘토 모리”. 모리는 스페니쉬로 죽음을 뜻해

아들: 메멘토는 영화도 있었는데? 기억 뭐 그런 뜻 아니에요? 이탈리아 말 같던데?

아버지: 아닐꺼야 “라틴어”로 알고 있어

아들: 그럼. 라틴어와 스패니쉬의 조어에요?

아버지: 그것 까지는 모르겠다

아들: 저는 처음듣는 단어인데요? 아버지는 언제부터 아셨어요?

아버지: 한 10년 전부터 알던 단어같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다. 유래는 로마의 개선장군이 퍼레이드를 할 때, 그 옆에 노예가 부르짓었던 문구라고 한다. 아마도 그 단어가 뜻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에 겸손" 또는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지 말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삶에서 가져야 할 것과 버릴 것


”남이 가졌다고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가진 것을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한 순간에 많은 것을 쟁취하는 사람”들이 보일 수 있다. 그러다보니 “나도?”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지껏 셀럽들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목전한 적이 많다. 특히 내가 다녔던 다수의 회사는 전자신문이나 팍스넷에서 욕받이가 되며 사라진 경우(상장폐지)가 많았다.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것을 잃는 시간은 그들의 노력한 시간보다 더 빨랐다”.


가끔 아버지가 내게 “투자자”로서의 삶에 대해 의향을 묻곤 하셨다(아버지, 어머니 모두 투자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난 기술 노동자로서의 삶에 더 가치를 두고 살았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대답을 했다.


“남이 잘한다고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투자를 통한 부의 축적은
학습과 의지의 양만큼 비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적어도 저를 보면 그렇습니다.

그리고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인지하는 것이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는 바로 인정하시는 반면 어머니는 “너 때문에 우리집이..”라는 라임을 시전하신다. 이럴 때마다 마음 으로 “기술 노동자의 영혼을 지킨 나님”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현명한 인생은 내가 갖지 말아야 할 것은 버리고 필요한 것은 관리해야 한다. 특히 사람관계에서 그렇다”


삶이 쌓여감에 따라 일과 사람을 통해 미움과 이별이 일상이 된다. 인생이라는 timeline이 우측으로 진행되면 이별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발생한다. 그렇기에 “얻는 것보다 어떻게 버릴 지”를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영광이 끝까지 같이 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영광은 어느 순간 기억 속 어딘가에 봉인 시켜놓아야 한다. “라떼는..”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몇 달 전 6개 팀의 사업 피칭을 진행했다. 그 때 사용할 타이머가 필요했고 그래서 Flutter로 급하게 만들어보았다.



정리


인생은 한 순간이다

욕심에 눈이 멀어, 더 많이 가지려하지 말고

버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자

그런 후에 진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


최근 사회전반의 이슈들을 보며 생각이 굳어지게 된다. "간웅이 영웅으로 둔갑하는 세상"이다. 이것이 어찌 하루이틀 이야기 였을까? 세상을 보는 눈이 자란 만큼 욕망이 능력을 넘어 주화입마되지 않게 단디 하자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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