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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ntage appMaker Nov 10. 2022

열등감이 발현될 때

개발자 생각 #2

나 때는 말이야..라는 생각이 들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면
열등감이 시작된 것이다

- 26년 차 개발자의 자기 검증



1.

집 안일을 처리하기 위해, 아침 일찍 동사무소에 들렸다. 아침이다 보니 평소에 즐겨 입던 Facebook T-shirt(보는 사람들은 허름한 티셔츠라고 생각하겠지만 페이스북 거래처와 고객만 받을 수 있는 티셔츠다)와 반바지, 그리고 노트북 가방을 둘러매고 귀에는 QCY13 이어폰을 끼고 갔다.


번호표를 끊자마자 호출이 떴다. 그래서 해당 번호 출구로 가서 용무를 이야기했다. 

"가족관계 증명서"를 띄려고여... 


그러자  출구 직원이 말한다. 

"선생님,  어떤 용무로 띄시려는 거지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선생님?" 왜 선생님이지?

"보통 온라인으로 처리를 하는 데, 오프라인으로 신청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가?"

"설마 내 외모를 보고? 그렇게 말한 건가?"


다시 한번 내 복장을 검토해보았다. 

흔한 개발자의 모습이다. 전 세계 개발자들에게 볼 수 있는  

글로벌 IT 회사의 T-shirt를 입고 노트북 가방을 메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 보였나?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가지며 직원에 요구사항대로 요청서를 기입하고 원하는 문서를 출력받았다. 

그리고 나오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머리스타일과 몸 전체의 실루엣은 분명 젊은 분위기지만 머리 색깔은 반 이상이 백색이었다. 


반백의 개발자


이 한마디로 모든 것이 요약 가능했다. 


2.

출력한 문서를 노트북 가방에 넣고 며칠 전, 후배와의 점심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판교로 향했다. 

약속을 한 날은 무더운 날이었고 더위에 지쳐 편의점에 들어가 있을 때,  후배의 전화를 받았다. 


후배> "선배님 이번에 저 회사 옮겼어요" 

나님> "야! [판교]에서도 제일 좋은 회사의 팀장에서 어디를 가? 그냥 다니지 그랬어!"

후배> "더 좋은 기회로 판교에서 일해요" 

나님> "멋지네.. 좋겠다. 한 턱 쏴라..."


그런 말을 하고 며칠이 지났고 점심을 먹으로 판교로 향했다. 

판교에 도착해서 후배를 기다리며 작년에 판교에서 고생했던 생각을 해보았다. 이 나이가 되었음에도 20살 어린 친구들에게 말도 안 되는 말을 들었던 기억. 단지 빨리 일을 마치고 결제를 받아야 하기에 잘못된 업무에 대해 항의조차 할 수 없었던 기억. 그런 기억을 하다 보니 후배가 손을 흔들며 왔다. 


[판교의 명성이라면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에 이런 메시지가 나오면 안 되지! - 개발자의 시각임- ] 


아끼는 후배 중 하나다. 동네, 학교 후배라는 이유도 있겠지만, 인성도 좋고 믿음감 있게 일을 했다. 나의 마지막 회사에서 팀원이었고 그 회사가 상장 폐지되는 순간에도 맡은 바 일을 마치고 퇴사해주었다. 그런 점에서 동질감을 가지고 좋아하는 친구이다. 


그 친구와 나는 비슷한 점이 한 개 더 있다.  

개발자 경력의 대부분을 "스톡과 지분을 고려하며 회사를 선택"을 해왔다는 점이다.   


3.

개발자 문화는 일반 직장인 문화와 다른 점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스톡과 지분"에 대한 이야기이다. 


스타트업과 벤처의 성공과 실패는 개발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기에

전 세계 수많은 회사에서는 개발자를 직원이 아닌 파트너로 대우해주는 경우가 많다. 

(경험상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파트너보다는 소모품으로 하대하는 문화에 가깝다)


10년 전 같이 다닌 회사에서도 이 친구와 나는 지분과 스톡의 계산으로 회사에 합류했으며

그 결과는 상장은 했으나 "상장폐지"라는 아픔을 겪으며 물거품으로 변했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살지 않으련다!"라는 마음으로 1인 회사를 운영했고

그 친구는 "좀 더 좋은 기회를 찾겠다며" 

당시에는 같이 다닌 회사보다 규모가 작지만 투자가치가 있는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리고 그 회사는 국내 1위를 넘어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더 좋은 기회를 떠나 이직을 했다. 

그 친구는 5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꾸준히 진화하고 있었다. 


4.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러나 지인들의 엄청난 성공과 부를 보며 "선택은 잘했네(운이 좋다)"라고 평가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들이 선택한 것을 지키기 위해 경험해야 했던 Death valley는 타인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지인들이 잘되면 고마운 것이다. 

자꾸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 친구는 기회가 좋았어.."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럴수록  무능함과 열등감이 시작되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


업계 이야기, 지인이던 후배들이 얼마나 부와 명예를 얻었는 지를 듣다가

이런 말로 만남을 마쳤다. 


"형이 지금 외주에 집중하고 있어~ 그러니 나중에 바빠서 외주 필요하면 우리 최근 3년간 포트폴리오 보내줄게.  판교 쪽 Big3 앱 몇 개는 우리가 했어.. 이 앱도 우리가...."


하며 핸드폰에 개발했던 앱 몇 개를 보여주며 짧게 PT를 했다.


개발자의 영혼, 프라이드는
직장인일 때 가능한 것이다. 
자영업 개발자는 그런 것 없다. 
생존이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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