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메모하고 문제점 분석
요즘은 걸을 때마다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이슈가 생각나면 바로 메모해야 하기에 Opal로 스마트한 음성 메모앱을 만들었다.
음성기능은 + 를 누르고 핸드폰 내의 녹음앱으로 녹음(오팔 자체 음성기능은 버그가 많다. 사용극구말림)
하면 된다 그러면 두서없이 녹음된 메모를 “논리적으로 정리” 해주며 웹앱을 만들어준다.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르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목표가 있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관계는 싫거나 좋거나 귀찮거나 다양한 이유로 연결되어 있다. 그 다양한 이유를 활용해가며 “생존과 삶의 질”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삶이다.
어렸을 때부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나”에 대한 집착을 할 경우, “이익”과 “성과”를 만들지 못한다.} 였다.
그래서 혼자 고민을 할 때나, 회사에서 회의를 할 때나, 어떤 리포트나 뉴스관련 문서를 볼 때 1순위로 채크하는 것이 [화자가 자의적?]이였다. 그런 판단이 되면 반드시 되짚고 분석하게 된다. 이런 성향은 10대부터 있었던 지라 극동아시아의 “원래 그런거야, 하라면 해”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나 글은 매우 불편했다. 어쩌면 그래서 나의 30년 직업(?)인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적성에 맞았을 지도 모르겠다. “오류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실수나 실패는 필연”이라는 것이 일상이기에 “오류”를 잡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부자연스러움은 오히려 {오류가 뭔지 모르고 자의적 해석}을 할 때 생긴다.
어찌보면 간단하고 논리적이고 문제없을 것 같은 사고방식이지만 “논리적 사고”보다 “개인적 성향”에 초점을 맞춤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럴 경우, “논리적 사고”를 버리고 다른 방법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이런 점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을 기억할 때는 “현재 이슈해결”이 목적일 때가 많다. 지금의 “이슈”를 해결하거나 앞으로의 방향을 잡을 때, 생각의 근거로 과거의 경험을 검색하고 정리하게 된다. 가끔 불필요하게 “남에게 불편함”을 제공했다는 판단을 할 경우, 나님의 과거는 어땠는 지 정리하게 된다.
10대 중2병 환자 시절에 이웅평의 미그기가 날아왔던 그 때의 나로 돌아가서 생각하게 된다. 남들은 호들갑을 떨고 난리 쳤을 때, 우리누나와 나는 아무 감정없이 대화를 나누었었다. 방공호가 우리집에서 몇 미터 거리인지 그리고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누나와 내가 10분 정도 이야기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분 안되서 할 수 없는 것이 별로 없네?라는 결론을 내리는 순간 상황은 종료되었고 그 다음에 둘 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할 일을 했다.
누나나 나나 “대외적”으로는 인기가 많았다. 그러나 불필요한 것들은 하지 않는 이기적인 타입이었다.
당시 여대생이었던 누나가 중학생이었던 내게 했던 말은 대충 이런 말이었다. ”너는 영악하기 때문에 이담에 커서 남들 이용해 먹을 확률이 커. 그러니 평소에 너를 훈련시켜야 할 거야” 이런 말을 하는 누나나 듣고 있는 나나 “감정따위”는 없었다. 누나는 나를 그렇게 평가한 것이고 나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진지하게 노트에다가 내가 뭘하고 싶은 지 적어본 기억이 있다.
그런 경험으로 가끔 나님의 사고방식이 어떠한 지 채크할 때가 있다. 주로 “평소메모(데이터)”를 근거로 “나의 사고방식(로직)”의 방향을 분석하게 된다. 이런 식의 분석이 가능한 이유는 50년 가까이 메모광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 속에서 극도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감이 떨어졌을 때가 감지가 된다. 이럴 때마다 몇 달간의 메모를 분석하며 혼자서 평가를 했었지만 수년 전부터 AI가 삶을 바꾼 이후부터는 메모를 데이터로 업로드 한 후, 분석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름 쓸만하다.
이전 회사 대표들이 나님보고 싸패라고 한 적이 종종 있었다. 남들이 들으면 엽기적이지만 당시 대표들이 싸패(그러니까 업계에서 네임드가 되었겠지?)였기에 동질감으로 좋아했던 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으로 분석해보아도 싸패급은 안되는 허접한 존재같다. 어설픈 행동수칙을 가지고 있어서 “이익”에 위반되는 행위를 할 때가 많은 것을 보면 “현실에 안주하는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맞다.
최근에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몇 몇을 봤다. 신기하게도 나와 인연이 있던 사람인데 스타트업계에서는 네임벨류가 엄청난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들에 대해서 “호감”을 가진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경우 “인지부조화” 또는 “모자람”이 느껴져서 싫다. 특히 모자람의 영역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가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를 인간애 또는 착한인성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데, 그것보다는 “지능”이라고 판단된다.
그 네임드있는 사람과 나의 유사성은 매우 높았다.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Social Grade나 성과나 몰입의 능력은 월등하게 차이난다. 단지 딱 하나 “사고방식(맥락)”과 “이슈를 푸는 방법”이 너무 똑같아서 신기했을 뿐이다. 최근에 그 사람의 이슈는 사업이 아니라 “관계”이다. 가족관계 또는 직장동료들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글을 보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을 근거로 성과가 좋은 사람들은 “배려감”이 없거나 “배려감을 둔갑시키는 기술”이 있다고 평가한다.
여하튼 그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한 것에서 놀랐다. 나도 이슈를 풀지 못하면 “그림을 그린다”. 아마도 16년 이상 이슈를 해결하지 못할 때마다 그림과 낙서를 꾸준히 했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 사람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어떤 의도였을 지 추측이 되었기 때문이다.
불편함
사람들은 감성을 주장하며 자신의 과거의 인간관계에 대한 아픔을 말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가해자인가?]라는 의심을 할 때이다. 그런 의문으로 기억을 꺼내면 많이 불편해지게 된다. 기억이 완벽하지 않은 이유가 혹시 잊고 싶어서였을까? 라는 자기합리도 해보지만 “거친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주변의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내용을 “징징대는 분위기”로 여기고 듣기 힘들어 할 때마다 “내가 덜 된 인간”임을 인지하자고 노력한다.
누군가와 자식이야기로 “친구관계”를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내가 했던 주어는 단 한 가지였다. “무엇을 하던 나쁜 사람은 되어서는 안된다.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가되는 것이 훨 났다”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주장했던 것은 심연에 봉인된 기억하지 못하는 업보에 대한 두려움일 수도 있다.
다시 연필과 볼펜과 붓펜으로 삶을 단디해야 할 때가 왔다. 지난 6개월 동안 아날로그를 활용한 기록이 없다. 그 만큼 디지털적 사고가 강해졌기에 실수가 나오는 듯하다. 과거 육식동물과 같은 사고방식을 되풀이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내가 현재 육식동물의 능력을 가지지 않았을 때는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