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쭉이 아빠 Apr 25. 2022

희귀난치병 아이 아빠 “우리 애기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40대 아빠살이] 바르덴부르크 증후군 아이 키우는 아빠 이야기

세상 어떤 연고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가 있다. 희귀난치병을 갖고 태어난 세 살 루나의 경우다. 그 아이를 만난 아빠의 마음에도 깊은 생채기가 생겼다. 평범한 가정에 갑자기 찾아온 불행이었다. 하지만 아빠는 두 발을 딛고 일어섰다. 부모 되는 게 이렇게 어렵다. 바르덴부르크 증후군(Waardenburg syndrome)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의 아빠 이상주 씨 이야기다.

아빠 이상주 씨(40)가 둘째 루나(3)와 뽀뽀를 하고 있다. 루나는 선천성 희귀난치병인 바르덴부르크를 앓고 있다. ⓒ이상주

◇ "아기는 분명히 건강하다고 했었다"

2019년 7월 19일에 둘째가 태어났다. 몸무게 2.7kg 여아로 이름은 루나. 그는 아기를 받은 의사가 분명히 건강하다고 말했다며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첫째 아들에 이어 딸까지 얻은 아빠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하지만 출산 다음 날, 병원에서 아기의 이상 증세를 알려왔다. 


"아기가 배변을 안 본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가스가 차서 배가 불러온다고 하더라고요. 담당 의사를 호출하려고 했는데, 하필이면 그날이 일요일이었어요. 다음날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죠."

 

루나는 태어난 후 한 번도 배변을 못 본 상태였다. 속이 거북했기에 엄마의 모유 또한 전혀 먹지 못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속절없이 지났다. 21일 월요일 아침. 담당의가 루나의 배를 살폈다. 의사는 배가 딱딱해졌다며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까지도 단순한 장 꼬임이라고 생각했다. 


"관련 검사가 가능한 근처 병원으로 갔는데 사진을 보더니 시간이 더 지체되면 천공(穿孔)이 생길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그날 휴가였어요. 결국, 수소문 끝에 서울에 있는 한 병원으로 다시 이송해야 했습니다."


급박한 상황에 그는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에 뭔가 일이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그제야 '이렇게 급히 갈 만큼 큰일인가?' 싶어서 불안했다. 가는 내내 우는 아이를 보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는 수술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한참을 서서 생각을 정리했다. 건강하게 태어났다던 아기가 3일 만에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당장 아기가 태어난 병원을 의심했다. 아기를 받은 의사와 출산 후 돌본 간호사들이 떠올랐다. 


"의사는 아기가 건강하다고 말했어요. 실제로 출산 직후 아기는 문제가 없어 보였고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의심스럽잖아요. 출산 후 이틀이나 지나서 이상이 있다고 말한 것도 그렇고, 출산 과정이나 아기 케어하는 중에 무슨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병원 측 과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는 모든 의구심을 일단 덮었다. 당장은 아기가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수술 전 담당 교수와 마주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수술 동의서였다. 만에 하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과 확인했다는 체크란이 빼곡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칸을 채워나가던 그의 손끝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서 머뭇거렸다. 


"사망할 수도 있다는 부분에 체크를 안 하면 어떻게 되냐고 물었어요. 체크 안 하면 수술 안 해주는 거 당연히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모든 병원과 의사들이 의심스러웠던 터라, 이 문구 또한 아기가 잘못됐을 경우 '병원 측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머뭇거리는 그를 보던 의사가 수술 동의서는 형식적인 절차라고 말했다. 죽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수술 후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는 사례들을 이야기했다. 


"수술 과정과 예후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어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두 번 세 번 다시 말씀해 주셨어요. 30분~40분 정도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긴 시간도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시겠다는 말에 진심이 느껴져서 동의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루나는 태어난 지 3일 만에 큰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사진은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 ⓒ이상주

모든 게 처음 겪는 일이었다. 당황스럽고 힘들지만, 칼자루를 쥔 의사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교수의 말에 진심이 느껴졌지만, 그는 모든 대화를 몰래 녹취했다. '거의 없다'는 말은 죽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힘없고 평범한 아빠가 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였다. 


아기의 병명은 '선천성 무신경 거대 결장'이었다. 통상적으로 약 5000명 중 1명 정도 발생하는 질환으로 장 하단 부위 일부에 신경절 세포가 없어서 근육들이 움직이지 못해, 기능적으로 정상적인 장운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배변이 안된다는 말이다.


"장루 수술을 했어요. 배변을 배출할 수 있도록 장루(대변 배출 통로)를 만들었어요. 아기가 너무 어려서 복원 수술은 조금 더 크고 나서 2차로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수술 도중 아내가 병원에 도착했다. 제왕절개로 분만한 아내였지만, 아기의 수술 소식을 뒤늦게 듣고 부천에서 서울까지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수술이 진행되는 동안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아빠는 그제야 녹취파일을 삭제했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회복을 마친 루나는 장루주머니를 차고 퇴원했다.  


◇ "바르덴부르크증후군이요?"

집에 왔건만, 루나는 모유를 먹지 못했다. 대신 소화가 잘 되는 특수분유를 먹었다. 토하거나, 열이 나거나, 처지거나, 가스와 배변 배출이 안되고 배가 딱딱해지면 즉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감기도 걸려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몇 달 후 루나의 몸무게가 좀 더 늘고 2차 복원수술을 받았다. 대장 전체와 소장 일부가 제거됐다. 또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그래도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실제로 건강하게 잘 커가는 아이들의 사례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지 7개월쯤 흘렀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이듬해 4월이었어요. 루나 몸무게가 이틀 만에 500g~600g이 빠졌어요. 기력도 없어지더라고요. 갑작스러웠어요.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서 바로 응급실로 갔습니다."


검사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지나가던 의사나 간호사들이 루나를 보며 눈이 파란색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평소에도 눈이 좀 파랗다고 생각했었다. 머리카락 색처럼 눈동자도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한 안과 의사는 다르게 생각했다. 


"지나가던 안과 의사가 루나를 유심히 살폈어요. 그리곤 혹시 어디가 아프냐고 묻더라고요. 장에 세포가 없어 수술을 했다고 말했더니, 혹시 바르덴부르크 증후군일 수도 있다며 추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때까지도 그게 어떤 병인지 전혀 몰랐죠. 이름 자체를 처음 들었으니까요."

루나의 눈은 푸른색이다. 달의 여신을 뜻하는 이름처럼 신비롭다. ⓒ이상주

예정에 없던 눈 검사와 청각 검사 등이 진행됐다. 뇌파검사 결과가 나빴다. 소리에 반응이 없는 걸로 확인됐다. 여러 의사들의 협진 결과 모든 증상이 바르덴부르크 증후군을 가리켰다. 


바르덴부르크 증후군은 청력 장애와 피부, 머리카락, 눈의 색소 변화 등이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희귀난치성 질환이다. 상태에 따라 4가지 유형으로 나뉘며 추가적으로 장에 세포가 없는 선천성 거대 결장, 미간 사이가 넓은 안면 기형, 신경관 결손 등이 동반되기도 한다.  


"최종 결과를 말하던 의사가 나중에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어요. 그 순간 모든 희망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인공와우는 사람 목소리가 기계음으로 들리잖아요. 일반적인 소리와 다르니 아이가 제대로 듣고 말할 수 있을지 걱정됐어요. 무엇보다 대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바르덴부르크 증후군은 치료약이 없잖아요. 선천성 희귀난치병이니..."

  

그는 절망에 빠졌다. 선천적인 질병이었기에 병원을 탓하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해 돌아섰다. 


"그때부터 루나와 우리 가족에게 닥친 불행의 이유를 저에게서 찾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루나 임신했을 때 내가 뭔가를 잘못했는지 기억을 더듬었어요. 그랬더니 아내와 싸웠던 기억이 나더라고요. 혹시 그것 때문에 아내가 충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아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자책했어요. 밖에서 계속 담배만 피운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지? 어떻게 키워야 되지? 이런 거 생각하면서..."


다행인 것은 그가 긍정적인 성향의 사람이란 점이다.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결되는 게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일단 해결책을 찾는 게 그다. 


"난청아이 육아카페라는 커뮤니티가 있어요. 인공와우 수술한 아이들 부모들이 모인 곳이에요. 관련된 정보나 아이들 커가는 모습들을 공유하는데, 어떤 분이 자기 아이는 처음에 눈도 안 보이게 되는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이었는데, 다행히 나중에 다시 검사를 했을 때 시력이 돌아오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분 사연을 읽고 그래도 루나는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괜찮다고 말했다. 언어치료만 꾸준히 잘하면 일반 아이들과 똑같은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줬다. 그는 실제로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도 유창하게 말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다행히 루나는 안면 기형이 있거나 지적 장애가 있지는 않았기에 더 희망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내에게 커뮤니티도 소개하고 관련된 자료나 좋은 사례를 계속해서 보여줬어요. 열심히 치료하면 루나도 분명히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물론 쉽진 않았어요. 저도 처음에는 눈만 뜨면 루나 일이 생각나서 힘들었거든요. 아내는 더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와 제 아내는 조금씩 절망을 극복해 나갔습니다."

      

◇ "부모 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았니?"

그는 절망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아빠로서 열심히 역할을 하다 보면 모든 게 행복해질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날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기 전까진. 


"루나가 병원에 입원해있었고 어머니, 장모님, 저, 아내가 교대로 간호를 했어요. 저는 병원에서 자고 회사로 출근했기 때문에 아내와는 한동안 떨어져서 지냈어요. 그런 상태로 한 달 반이 흘렀어요. 저는 감기도 잘 안 걸리는 사람인데, 독감이 걸려서 그 와중에 입원까지 했어요. 병원과 집을 오가며 아이들을 돌보던 아내도 지쳐갔어요. 루나가 퇴원해서 집에 왔지만, 변한 건 없었어요. 좋아질 거란 희망을 계속 품었지만, 현실은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 잠에서 깼는데 아내의 울음소리가 들렸어요."


거실로 나간 그는 아내에게 루나를 괜히 임신했다고 말했다. '만약 루나가 없었으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포기할까?'라는 못난 생각에서 비롯된 말이다. 그가 던진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아내를 찔렀다. 아내는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냐"라며 눈물을 흘렸다. 슬퍼하는 아내를 본 그가 속상해서 한 말이었지만, 마지막까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

 

"아내는 장모님이 루나 첫 수술할 때 최악의 경우 포기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유는 자신이 장모님의 딸인 것처럼, 루나 역시 자신의 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어요."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당시 그는 너무 힘들었다.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앞으로도 계속 힘들 것 같았다. 그때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아기를 입양 보낼까도 고민했었다고 고백했다.


"나중에 그날 왜 울었냐고 물어봤어요. 아내는 루나를 케어하고 있었는데, 첫째가 놀아달라고 보챘다고 했어요. 첫째이긴 하지만 고작 세 살 밖에 안됐는데, 얼마나 엄마품이 그리웠겠어요. 하지만 피곤했던 아내가 되려 짜증을 냈다고 했어요. 애는 울고... 그날 저녁에 잠든 첫째 얼굴을 보다가 '왜 그랬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아내도 많이 지쳐있었던 거죠. 그때는 극복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한번 흔들린 마음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때 그를 붙들어준 건 다름 아닌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그의 마음을 이해해 줬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루나가 남들보다 약간 불편할 뿐이고 커 가면서 좋아질 거라고 다독여주셨다. 하지만 아들의 나약함도 꾸짖었다. 


엄마, 아빠 되는 게 쉬운 거 아니다. 너 이러는 거 이 순간만 모면하려고 하는 거다. 옛날에는 더 많은 아이 키우고 살았다.
아내 장효진 씨와 둘째 루나. ⓒ이상주

◇ "아빠라고 말하며 나를 안아줬어요."

루나가 바르덴부르크 증후군을 판정받은 날, 청력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았지만, 다시 회복될 수도 있었기에 우선 보청기를 착용키로 했다. 그렇게 27개월이 흘렀고 아이는 큰 탈 없이 잘 자라주었다. 다만, 배변의 문제로 관장을 해야 하는 일이 잦았고, 면역력의 문제로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 더구나 코로나는 아이와 아내를 더욱 움츠리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아이의 발달 상태도 더뎌졌다. 오랜 기간 동안 누워서만 지냈던 탓인지 두 돌이 넘어서야 아장아장 걷게 되었고, 소리가 잘 안 들려서 말도 늦었다. 


"보청기를 착용하며 청력이 회복되길 기다렸지만, 결국 양쪽 모두 청력이 상실되어 올해 5월에 인공와우 수술을 했어요. 수술비가 5000만 원 정도 들었는데, 다행히 산정특례 제도(본인일부부담금 산정특례 - 중증 질환자에 대해 환자가 부담하는 진료비를 경감해 주는 제도)의 혜택을 받아 수술비 대부분을 지원받았어요."


그는 수술비 안 받아도 되니까 한쪽이라도 루나의 청력이 살아있길 바랐다. 없는 형편이지만, 돈보다 중요한 건 루나의 건강이기에. 루나는 결국 청각장애인 중증 판정을 받았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지 반년 정도 됐어요. 3개월 전부터 언어치료를 시작했는데, 한 달 전쯤에 루나가 갑자기 '아빠'라고 말하며 저를 안아줬어요. 처음에는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어요. 그전에도 아빠 비슷한 말을 하긴 했지만, 정확하진 않았거든요. 아이가 태어난 지 25개월 만에 처음으로 듣게 된 '아빠'였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는데 눈물이 났어요. 루나 키우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이었어요."


그는 아이를 안고서 '이렇게 좋아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인공와우를 착용하면 사람 목소리가 기계음으로 들리니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걱정이 많았기 때문이다.


"루나의 발육 상태는 또래보다 1년 반 정도 늦고, 청각 문제 때문에 인지능력도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아마도 잘 듣지를 못해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첫째가 하는 거 보고 따라 하더니 요즘은 핸드폰으로 직접 영상도 보더라고요. 유튜브 보면서 웃을 때도 있는데, 알아듣고 웃는지 그림만 보고 웃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저는 그런 모습 보면서 희망을 가져요. 점점 더 좋아질 것이라는."


현재 루나는 '아빠', '엄마', '없다'를 말할 줄 안다. 아빠는 루나가 네 번째 단어로 '오빠'를 말하길 바란다. 첫째 태양이는 엄마 아빠만큼 루나에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첫째 태양이가 동생 루나를 항상 지켜주길 바란다. 아빠, 엄마가 세상에 없을 때도.. ⓒ이상주

◇ "태양이는 운동을 가르치고 싶어요. 동생 지켜주라고"

루나의 눈은 파란색이다. 덕분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자주 받는다. 인공와우의 송·수신기가 반짝반짝 불빛을 발하지만, 푸른색 눈동자보다 특별하진 않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은 루나의 눈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뒤에서 수군거릴 때도 있는데, 솔직히 그때는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런데 대부분 대놓고 아이 눈이 예쁘다고 먼저 물어보세요. 컬러렌즈 꼈냐면서요."


루나의 흰 피부와 푸른 눈은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아이의 특별한 얼굴에 감탄한다. 하지만, 그는 예민한 학창 시절에 남들과 다른 외모를 가졌다는 건 놀림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일반적이지 않으면 다른 친구들로부터 이유 없이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도 몸이 불편한 친구가 있었는데, 덩치 큰 친구가 그 친구를 항상 지켜줬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도 그 친구를 괴롭히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첫째 태양이가 운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동생 지켜주라고요. 학교도 1년 늦게 보낼까도 생각 중이에요. 그러면 최소 2년 정도는 동생과 같은 학교를 다닐 수 있거든요."


그는 루나의 특별함이 오히려 독이 될까 걱정했다. 그래서 나중에 학교도 특수학교를 보낼까 생각 중이다. 일반학교 선생님들은 특수교사가 아니기도 하고, 일반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 루나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부분에서 아내와 의견이 항상 충돌한다고 말했다. 아내는 설사 일반학교에서 그런 일을 겪는다고 해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두 의견 모두 루나를 위한 마음인 점이다. 부부는 아이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고 있었다.  


◇ "아빠가 대리운전을 하는 이유"

담당의는 루나가 영양제 잘 먹고 언어치료 열심히 받으면 초등학교 다닐 때쯤 일반 아이들과 같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의 말을 듣고 아빠로서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고 했다.


"저희는 외벌이예요. 루나 케어는 아내가 거의 맡아서 하고 있어요. 저는 퇴근 후 2~3시간 아내를 도와서 루나를 살피고, 주말에는 무조건 아이들과 놀아줘요. 그리고 금전적인 부분은 제가 전담하고 있어요. 언어치료 등 앞으로 루나의 치료를 위해 돈이 많이 필요해요. 제가 열심히 회사를 다니는 이유죠."


그는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줘야겠다고 결단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훗날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열심히 벌고 악착같이 아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아이들에게 장난감 하나 사주 기도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들과 키즈카페를 갔어요, 아이들이 '아빠 이거 할래'라고 말했는데 제가 '아니야 하지 마'라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앞으로도 루나에게 돈이 많이 들어가니 열심히 모아야 했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건 좀 아니다 싶었어요. 아이들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지금도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돈을 더 벌어야 했는데 위험한 주식이나 도박을 할 순 없었어요. 그래서 3달 전부터 대리운전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본업에 지장이 갈까 봐 회사에는 이야기도 안 했다. 일주일에 두 번. 밤 8시부터 12시까지 대리운전으로 월급 외 수입을 벌었다.


"알바로 처음 돈을 벌고 나서 돌아온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키즈카페에 갔어요. 그날, 아이들을 위해 돈을 다 썼어요. 하하.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돈은 모으려고 번 게 아니거든요. 오로지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 쓰려고 번 돈이에요. 그래서인 지 3달 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단 한 번도 몸이 힘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즐겁더라고요.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아빠 이상주 씨에게 태양이와 루나는 전부다. ⓒ이상주

◇ "엄마 아빠 애기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그는 루나가 커서 결혼하지 않길 바랐다. 혹시라도 지니고 있는 병 때문에 배우자나 배우자 가족에게 상처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보내기 싫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언젠가 결혼한다면, 그냥 평범하게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언젠가 혼자 살아갈 딸아이에게 남길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가 눈시울을 붉히며 어렵게 말을 이었다.


"엄마 아빠한테 애기로 태어나줘서 너무 고마워. 아프고 힘들더라도 잘 버텨주고 잘 자라 주어서 너무 고맙고 대견하구나. 나중에 커 가면서 항상 건강했으면 좋겠고, 네가 늘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어렸을 때라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네 오빠 태양이가 너를 엄청 사랑하고 보살폈다는 거 기억하고. 부모는 헤어지면 남남이라지만 남매는 그게 아니니, 루나랑 태양이랑 힘들 때 서로 의지했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는 항상 우리 루나를 사랑했단다."



   

[알림] 이 글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게재됐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