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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티아고 김솔 Jan 05. 2023

일촉즉발 위기의 까미노

북쪽길#2

직장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2,887km 찐으로 걷는 배낭여행

✅ 프랑스길 Camino Francés (2018)

✅ 피스테라, 무시아 Camino de Fisterra y Muxía (2018)

✅ 은의 길 Vía de la Plata (2022)

✅ 북쪽 길 Camino del Norte (2022)

✅ 영국 길 Camino Inglés (2022)



그 유명한 라콘차 비치를 산세바스티안을 떠날 때야 처음으로 걸어 봤다. 어제저녁을 먹고 바로 숙소로 직행, 산세바스티안의 시옷ㅅ도 구경하지 않았다. 오늘 실제로 해변에 와서 보니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더 멋진 곳이네. 제길.


해변을 가득 메웠던 사람들과 상점은 아직 잠든 시간이다. 아주 고요하고 적막하다. 혼자 있고 싶어 엄마 아빠와 멀찌감치 떨어져 걸었다. 나는 어제부터 계속 저기압이다. 누구 하나 잘못한 게 없지만 말수가 많이 줄었다. 그나마 걷는 내내 바다를 끼고 가는 멋진 길이라 풍경을 약 삼아 소화가 안된 감정을 적당히 누르며 걸었다. 무엇 때문에 저기압인지 아직 감정을 찾지 못한 상태다.



오늘 목적지 사라우츠로 가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이었다. 해안을 따라 들어가는 도시 초입부터 이곳은 한눈에 봐도 휴양 서핑의 정석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어지러울 만큼 아름답다. 한 걸음만 걸어 나가도 화보가 되는 곳에서 이 놈의 가방을 메고 길바닥을 헤매고 있자니 차분히 짜증이 쌓이기 시작했다. 대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트렁크에서 서핑슈트를 갈아입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너네 참 재밌어 보인다.

10대 친구들이 서핑보드를 둘러업고 바다에 간다. 앞바다로 매일 서핑하러 나가는 동네에서 산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숙소에 들어가 짐을 풀면서 배낭 속 짐을 일부 정리했다. 북쪽길로 오면서 날이 더워지니 은의 길에서 입고 다녔던 옷들이 무거워졌다. 각자의 바람막이와 옷가지들 그리고 은의 길 내내 들고 다녔던 드론을 한국으로 보내려고 짐을 추렸다. 마트 비닐봉지로 딱 한 짐이 나온다.

"우체국이 멀지 않으니 얼른 혼자 다녀올게"


엄마 아빠는 걱정이 되었는지 아빠랑 같이 다녀오라 한다. 하지만 그냥 쌩하니 나왔다.

혼자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주면 좋을 텐데. 도대체 그 틈을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 화가 터져 나온다. 제발 혼자 있게 해 줘.

바스크 지방으로 넘어오면서부터 바에서 먹는 간식 메뉴가 많이 바뀌었다. 바스크 지방은 핀초가 유명하다.
각자의 취향대로


그래, 그거다. 우리는 너무 오래 붙어 있었다. 삼십이 넘은 자녀와 부모가 개인 시간이 전혀 없이 24시간x40일을 화장실 갈 때 빼고 잠잘 때까지 붙어 지냈으니 탈이 날만도 하다. 아무리 서로를 배려한다 해도 먼지 쌓이듯 소복이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던 거다. 회사 업무를 해도 출퇴근이 있고 주말이 있고 연차가 있는데, 오프 없이 타지에서 모든 정보를 처리하니 신경에서 고장 시그널을 보내고 있던 거다.


타고난 개인주의 성향에다가 극강의 효율충인 나로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왜 굳이 같이 하려고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쟤는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지랄 맞은 지 엄마아빠는 저 놈의 자식을 알 수가 없다.


오늘 저녁 식사도 연이틀 피자다. 심지어 마트에서 산 냉동 피자. 만만하다. 모든 것이 성가실 때 선택하는 무언의 메뉴다.

숙소 라운지에서 침묵의 식사를 한다. 그 가운데에 어설프게 끼어 있는 중년의 서양 남자, 다행히 눈치 있게 으레 할 법한 인사도 생략한다. 삐그덕거리며 사라우츠의 밤이 조용히 지나간다.

다음날 아침, 사라우츠의 해변도 도시를 떠날 때야 처음 밟았다. 바스크 지방에서 가장 긴 해변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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