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도장깨기 - 은의길/북쪽길/영국길의 시작
직장을 그만두고 스페인 여행길에 오른 30대 딸,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하는 부모님과의 140일간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을 기록합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거의) 바로 해소하고 해결하며 살았던 까닭인지 안 해본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갈망도 없는 편이다. 하지만 머리가 많이 컸을 때야 알았다. 그건 바로 내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 덕분에 누렸던 복이란 것을.
부모의 지지와 보호로 나는 인생을 단디 살아갈 자양분을 가득 채웠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었다.
이 자양분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기에 그들에게도 되돌려 주고 싶었다. 나의 부모가 나에게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 주어 듯, 나도 그들에게 은퇴 이후 인생 후반전을 끌고 나갈 자신감과 활력을 선물하고 싶었다. 이제는 내 차례임을 직감했고, 미루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여행을 돕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회사 업무를 정리하고, 그들과 함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 배낭여행 길에 올랐다.
뭐 퇴사까지 하면서 부모와 여행을 떠나느냐 할 수도 있지만 이번 여행이 그들의 인생에서 큰 기점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4년 전 이미 한차례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길)을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그 여행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우리의 생활 속에 계속 남아있다. 우리에게는 천 번을 곱씹을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생겼고, 무엇보다 ‘그거 뭐 별거라고. 나이 먹어도 다 해'라는 마음가짐과 태도, 다음 도전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때 이후 나이 앞자리 숫자마저 바뀌어버린 70대가 된 아빠. 어쩔 도리 없이 나이 듦을 매일 경험하는 그들에게 이번 여행이 위축된 용기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긴 여행길에 올랐다. 스페인 까미노 데 산티아고 도장깨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