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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셉 Feb 10. 2024

인생에 Skip 버튼이 있다면?

영화 <클릭> 후기

삶의 과정은 특정한 결과를 위한 것인가?


영화 <클릭>을 보았다. 꽤 오래된 영화이다. 왠지 영화를 한 편 보고 싶어서, OTT 사이트를 뒤적여 한 편 찾아냈다. 영화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만능 리모컨으로 인생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예를 들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장면은 빨리 감기로 넘기고, 필요한 경우에 잠시 일시정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듣고 싶지 않은 소음은 음소거할 수도 있고, 필요한 경우에 멀리 있는 대화도 소리를 높여 엿들을 수 있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야 결과가 나오는 일도 몇 번 빨리 감기 하면 금세 자동으로 결과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과거의 일이 기억나지 않을 때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듯 몇 번 돌리면 과거 자신의 모습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다만 빨리 감기 하거나 건너뛴 인생은 자신이 살아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억 속에는 없고, 리모컨을 통해서 그 장면을 불러올 때만 회상이 가능하다. 일이 많아 가족에게 시간을 낼 수 없을 지경인 주인공은, 중역의 자리에 오르고 여유가 생기면 함께 시간을 보내겠노라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다. 아내와 말다툼을 할 때면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빨리 감기를 누르고, 중요한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거래처의 대화 내용을 엿듣기도 한다. 빨리 결과물을 얻기 위해 기다리기보다는 장면을 건너뛴다. 덕분에 주인공은 원하던 결과를 다 손에 넣는다. 회사의 사장이 되고, 큰 계약 건을 척척 따낸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가족들은 더 이상 그를 중요하게 생각지 않고, 사랑하는 아내와도 이혼하게 된다.


삶을 건너뛸 수 있다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누구나 인생에 유쾌하지 않은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괴로운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시간들을 하나둘씩 떠올려 본다. 초등학생 시절 급식 당번이었을 때, 밥차를 가져오다가 국통을 엎지른 일이 있다. 그날 하루 국을 못 먹게 된 아이들의 눈총이 얼마나 따가웠는지 모른다. 잘못을 해서 선생님께 불려 가 훈계를 듣고 매를 맞던 장면도 떠오른다. 수능 공부를 하느라 밤낮없이 문제 풀이에만 몰두하던 시절도 생각난다. 모든 시간을 투자하지만 어느 것 하나 보장받을 수 없는 불안한 시기, 감수성은 메말라가고 효율과 정답만이 나를 지배하던 회색으로 칠해진 시간이 떠오른다. 대학에 입학하고, 필참이라고 은근 겁을 줘서 따라간 OT 행사에서 먼저 나간다고 했다가 장기자랑을 하던 때도 떠오른다. 스물여섯이 다 지나갈 즈음에 입었던 군복의 차가운 느낌도 아직 생생하다. 영하 20도 되는 추위에 땅을 파던 일이며, 제대하면 무얼 하지 노심초사 불안해하던 때도 기억이 난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때는 수도 없이 많다. 신입사원 시절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싶던 회식자리 하며, 한없이 늘어지는 회의 시간도 생각이 난다. 지금도 고통스러운 과정은 어서 지나고 결과만이 달콤하게 주어지는 상상을 가끔 한다. 땀방울을 짜내며 밑천이 드러난 머리를 부여잡고 글을 써내는 고통스러운 과정 대신에, 척척 글이 써지면 얼마나 좋을까? 나아가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 글쓰기의 시간을 어서 지나고 글이 줄 수 있는 결과를 빨리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아내 뱃속에는 아이가 자라고 있다. 입덧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 없이 어느새 아이가 다 크면 어떨까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한번 상상을 해 본다. 내게 그런 만능 리모컨이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빨리 감기를 좀 하면 글이 한 편 뚝딱 나오고, 불안을 친구 삼아 모험이라 우기며 한 발씩 걷지 않고 한꺼번에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입덧하는 아내를 바라보고 돌보는 과정 없이 버튼 한 번으로 아이가 이미 태어나 있다면 어떨까. 아이를 키우는 우여곡절 없이 아이가 장성한 어른이 되어있다면 어떨까. 


나는 이쯤 생각을 하고서는 과정 없는 삶은 삶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삶은 어떤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다.


흔히 목적이 중요하고 결과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인생은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목적이 전부이고 과정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이다. 과정이 전부이고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사는 것, 자신이 원했던 곳에 가 있는 것이 곧 인생이다. 


글을 쓰면서 무엇인가 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고 또 써서 책을 내고, 인세 수익을 올리고, 자신의 명성을 높이기 위하여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순간이 좋기 때문에 글을 쓰고 있다. 글의 결과가 무엇일지는 아무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설령 열심히 쓴 대가로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쓰는 동안 나는 행복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중역으로 승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모든 과정을 건너뛰고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 버튼 한 번 누르면 당장 20년 후에 사장이 된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고통스레 글 쓰고 머리를 짜낼 필요도 없다. 버튼 한 번이면 백만 부 판매고를 올린 작가가 될 수 있다. 열심히 노력할 필요도 없다. 버튼 한 번이면 당장 대기업 그룹의 회장이 될 수 있다. 어떤가? 여러분이라면 누를 것인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과정이 없다면 그것이 어떻게 인생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며 과정이 없는 삶은 공허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사람은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필요하지 않은지 제대로 구분해 낼 능력이 없다. 만일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건너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게 필요한 것들만을 남길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선의를 가지고 행동하더라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한 번 꿈을 꾼 적이 있다. 친구에게 맛집을 한 군데 추천해 주었는데, 친구가 그곳으로 향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나로서는 선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지만, 그것이 그에게는 죽음이라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좋고 나쁨을 알 수 없다. 


만일 사람들이 저마다 좋다고 여기는 대로 삶을 건너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 건너뛰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남을까? 건너뛸 수도 없지만, 건너뛸 수 있다 하더라도 한계는 명확하다. 무엇을 건너뛰어도 좋은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삶은 산다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보며 삶을 끌어안는다.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글자를 썼다 지웠다 하는 지금 순간을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글쓰기의 묘미는 완성된 글 한 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순간, 바로 지금 속에 있다. 삶의 의미도 무언가 성취하고 완성했을 때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순간을 살아가는 여기에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삶을 건너뛸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해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하는 멋진 영화였다. 


앞으로도 ‘어서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생각하게 되는 어려운 시기가 있을 것이다. 이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건너뛸 수 없다는 사실도 명확하다. 대신 태도를 조금 바꿔 보려고 한다. 이전에는 어서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라며 눈을 질끈 감았다면, 이제는 눈을 부릅뜨고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고 한다. 용기를 내서 삶에 들어있는 여러 구성 요소들을 다 끌어안을 작정이다. 오늘이라고 부르는 이 날을 차곡차곡 잘 살아서 언젠가 결과물을 얻게 되었을 때, 삶을 돌아보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리고 하나 더, 나도 영화 같은 글을 쓰고 싶다.


사진 출처 : AI 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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