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아가지도 않기
오후 한 때 뿌리던 비가 잠잠해진 틈을 타,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우리 부부가 살고 있는 곳은 제주의 어느 조용한 해안가 마을이다. 건물 밖으로 나서면 저 멀리 보이는 바다가 콧속으로 흘러들어온다. 오늘처럼 비가 내린 날이면 특유의 습한 기운과 함께 바다내음은 더 짙어진다. 며칠 내내 달궈졌던 지면에 비가 닿아서 그런지, 그렇지 않아도 습한 바닷가 마을은 비가 증발한 탓에 더욱 습하다.
수증기 자욱한 마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배가 무거운 아내는 빨리 걸을 수 없다. 느릿느릿,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천천히 걷는다. 행여 조금이라도 빠를 세라, 부지런히 아내의 발걸음을 살피고 보조를 맞춘다. 임신 전에는 꽤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25분쯤 부지런히 걸으면 도착하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하나 있는데, 결혼 직후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둘이 꽤 빠른 속도로 그곳까지 걸어갔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고 나면 목표를 달성했다는 안도감에 걷는 속도도 줄고, 괜히 너그러운 마음이 되어 마을을 크게 한 바퀴 돌고는 했다.
이제는 25분이나 떨어진 곳까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가지 않는다. 뱃속의 호꼼이를 데리고 다니는 아내의 배가 꽤 무거워져서, 예전 같은 속도로 한 시간이나 걸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우리가 걷는 산책 코스의 풍경도 바뀌었다. 아이스크림 가게로 가는 최단거리 코스, 도로를 따라 난 인도로 걷던 것이 이제는 마을 안길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뱅글뱅글 도는 것으로 바뀌었다. 거기에 걷는 속도도 더 늦추었다.
총 걸음 수는 줄었다. 왕복 거리도 줄었다. 하지만 아내와 내가 갖는 산책 시간은 줄지 않았다. 느긋한 발걸음을 옮기며 함께 존재한다. 서로의 삶에 찾아온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나눈다. 정돈해서 표현하지 못하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공상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가장 안전한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무엇이든 어떤 이야기든 터놓게 된다. 일터에서 있었던 일, 오늘 썼던 글에 대한 내용, 길가에 핀 꽃의 이름, 감귤 모자를 쓰고 지나가는 무리들에 대한 감상. 40분 남짓 함께 걷는 발걸음 속에 우리의 관계는 더 깊어진다.
요 며칠은 무위의 즐거움을 잃어버리기 일보 직전 상태다. 지나치게 많은 것들이 생각 속을 차지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일, 제출해야 할 과제,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핸드폰 알림 같은 것들이 머릿속 공간과 나의 24시간을 군데군데 차지하고 있다. 삶이 내게 부과하는 ‘의무’는 때로 너무 많아서, 한시도 ‘무위’를 즐길 수가 없다. 해야 할 일을 두고는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고 느긋함을 즐기고자 해 보아도, 현대 사회는 해야 할 일을 좀처럼 줄여주지 않는다. 일은 끝이 없고, 하루하루만 끝이 날 뿐이다. 회사 일 뿐만 아니다. 자기 계발인지 자기 착취인지 알 수 없는 ‘갓생 살기’, 피상적인 관계를 양산할 뿐인 만남, 계속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들이 압력으로 작용한다.
흔히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즐거워서 하는 취미생활조차 어떤 결과물이 되어야 한다. 취미로 기타를 배웠으면 한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정도는 되어야 하고, 글을 쓰면 어디 내놓을 수 있을 만큼 그럴싸해야 한다. 호기심이 생겨서 뭘 좀 배워보려고 해도, 이왕이면 제대로 배워서 자격증을 따거나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렇게 효율과 결과물에 쫓기다 보면, 삶 속에 무위를 누릴 수 있는 여유는 점차 사라지고 만다.
노력이 나쁘다거나 결과물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너무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성의 물음을 던져 본다. 많은 것을 성취하고,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것저것 추구하고 더 많은 노력을 해 보아도, 저마다에게 주어진 24시간은 단 1초도 늘어나지 않는다. 최대치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24시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집어넣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은 쫓기는 모양새가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현대 사회는 바쁨을 미덕으로 삼는다. 초등학생 아이들조차 방과 후 학원을 세네 개씩 기본으로 다닌다. 학생이며 직장인 할 것 없이 저마다 자신의 바쁨을 자랑으로 삼는다. 대학생, 직장인 할 것 없이 하루의 가장 큰 성과는 얼마나 많은 일을 성취했는가이다. 과연 이는 쫓기는 것인가? 아니면 쫓는 것인가? 현대 사회를 사는 모두는 저마다에게 큰 소리로 물어야 한다. 쫓기고 있다면 때로는 뒤돌아 맞서는 용기도 필요할 테고, 쫓고 있다면 뭘 쫓아 달리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쫓기듯 살고 싶지 않다. 글도 쥐어 짜내듯 쓰고 싶지 않다. 흘러나오는 것을 쓰고 싶다. 나를 쫓는 수많은 것들을 바로 보기 위해, 늘어나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는 24시간을 땅바닥에 쏟아 버리지 않기 위해 애쓴다. 쫓기듯 살지 않기 위해서 느긋하게 마을을 산책한다. 나를 쫓아오는 것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일부러 멈춘다. 끝없이 밀려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쓴다.
끝없이 뭔가 해야 한다고 압력을 주는 사회에서, 나의 고집은 아내와 느리게 걷는 산책 시간에 있다. 또한 나의 의지는 눈 뜨자마자 40분간 쓰는 일기에 있다. 다른 시간은 다 내어줘도, 이 두 시간만큼은 결코 다른 것에 내어주지 않는다. 이것이 없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되고 만다.
그리하여 또 마을길을 느릿느릿 걸었다. 어느새 돌담 사이에는 수국이 피었다. 살던 곳을 떠나와 여행지를 찾은 사람들을 본다. 비가 흩뿌리는 하늘을 피하려 이리저리 지붕을 찾는 새들을 만난다. 풀벌레 소리를 듣고, 이따금 지나가는 고양이들을 본다.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잠시 그쳐준 비가 고맙다.
그리하여 나는 또 책상 앞에 앉았다. 끄적댐일 뿐 무슨 작품도 되지 못하고 습작조차 되지 못하는 글을 한참 끼적였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한참을 뚝딱뚝딱 써내려 간다. 또 아무것도 아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존재하는 내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