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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 VS 500만 원

꿈 이야기

by 정필

캄캄한 밤, 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꿈속이었다.
일행들과 함께 걷던 길바닥에서, 나만이 돈뭉치를 발견했다.
한눈에도 적지 않은 액수였다.
무심히 지나갈 수도 있었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모른 척할 수도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혼자였다. 아니, 혼자라는 사실을 의식한 순간부터 진짜 혼자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잠깐 망설였다. ‘그냥 가져도 되지 않을까?’
누가 본 것도 아니었고, 나만 알고 있는 일.
그 순간은 나에게만 열려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그 돈을 들고 경찰서로 향했다.
"주인을 찾아주세요."
짧은 한마디를 남기고 경찰서를 나서며, 꿈에서 깼다.

눈을 뜨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장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왜 그 돈을 경찰서에 가져갔을까.
왜 그 선택이 꿈속의 나를 조금 멋지게 느끼게 했을까.
단순한 길몽일까, 아니면 그 이상의 무엇이었을까.

며칠 전, 실제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대낮,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하러 가던 길.
길가에 떨어진 5만 원권 지폐 한 장이 눈에 띄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섰고, 아무도 주인을 찾지 않는 그 돈을 주워 들었다.
경찰서에 갈까 고민했지만,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그 돈은 나와 동료들의 점심값이 되었다.

그날, 우리는 웃으며 밥을 먹었다.
지나치게 도덕적인 판단을 하지 않은 나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 여겼다.
‘경찰이 무슨 수로 주인을 찾겠어’, ‘운이 좋았던 거지’,
그리고 마음 한켠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잃어버린 입장이었다 해도, 주운 사람이 그냥 사용했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 판단은 어쩌면 나를 더 관대해 보이게 만들었다.

그 선택은 전혀 찜찜하지 않았다.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그날의 나는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꿈은 나를 다시 그 자리로 데려왔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길을 보여줬다.
유혹은 있었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기준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따랐다.

꿈은 때로 우리가 외면하고 지나쳤던 감정의 조각들을 조용히 꺼내 보여주는 것 같다.
의식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정리하고, 한 걸음 멀리서 나를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나는 생각했다.
그날 내가 주운 5만 원도 누군가에게는 애타게 찾는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병원비였거나,
아이에게 줄 용돈이었거나,

혹은 아이가 잃어버린 용돈이었거나,
누군가의 하루치 품삯이었을지도.
나는 그 가능성을 상상하지 않았다.
단지 내 기준으로 충분하다고 여겼고, 나였다면 괜찮을 것 같다는 자기 위로로 결정을 마무리했다.

돌아보면, 그것은 후회라기보다 확장되지 않았던 상상력에 대한 반성이었다.
윤리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타인의 입장을 어디까지 그려볼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윤리적인 사람인가보다, 내가 충분히 상상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는 것.

지금도 그 판단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날의 나는 그 나름의 기준을 따랐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조금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건 나쁜 일이 아니며, 성장이란 아마 그런 방식으로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5만 원.
크지 않은 돈이지만,
내 기준의 크기와 윤리의 밀도를 되묻게 한 금액이다.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까.
정답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잠시 멈춰 생각할 것이다.
이 돈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리고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는 가끔 ‘길몽’을 믿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믿고 싶은 것이 있다.
꿈이 남긴 질문이다.
그 질문이 남겨졌다면, 그 꿈은 이미 내게 충분히 좋은 꿈이다.
오늘도 나는 그 질문과 함께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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