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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taraxia Aug 19. 2024

심야 택시 안에서

귀막고 눈막고 코막고 달리는 나는 쉐도우 드라이버다!

저녁 9시경, 신사동 사거리에서 남자손님 한 분을

태운다

1차 솔자리 모임을 하고 2차로 다른 술자리로

이동하는 듯하다.

남자승객은 목적지를 알려주고는 바로 핸드폰을

집어든다.

집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하는 모양이다.

'오늘은 뭐가 재밌었어?' '저녁은 뭘 먹었어?'

'맛있었어?' '사랑해~' '아빠 늦지 않게 들어갈게~'

저녁운전은 전방주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룸미러도

잘 보지 않는다.

귀에 들려오는 건 끔찍이도 딸을 사랑하는

다정한 아빠의 목소리다.


딸과의 전화가 끝나자,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그런데 대화내용이 좀 이상하다. 상대는 여자다.

대화내용 몇 마디를 들어보면 직감이 온다.

아내는 아니다.

구체적인 대화내용은 차마 적지 못하겠다.

그가 끔찍이 사랑하는 건 딸만이 아닌 듯하다...

들어도 못 들은 척!


저녁 11시경, 역삼역 근처에서 한 커플을 태웠다.

언뜻 봐도 30대는 아닌 것 같고, 40대 초반정도인데 가면서 대화내용을 들어보니

여자는 이혼소송 중이고 남자는 싱글인지는 모르겠고 사업을 하는 것 같다.

여자분이 술이 얼큰하게 오른 듯하다.

휘청이는 여자를 남자가 부축이며 차에 올라탄다.

이런저런 상황을 힘들어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하면서

연신 스킨십을 시도한다. 밤이라 뒷좌석이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귀로는 보인다.

술이 오른 여자는 횡설수설하고 그런 여자를 남자는 가만두지 않는다... 봐도 못 본 척!


자정이 넘어 도로에 차가 줄어든다.

술 한잔하고 택시를 잡으면서 피던 담배를 도로에

휙~ 버리고

뒷좌석에 올라타는 손님덕에 차 안은 순식간에 소주 담긴 재떨이가 된다.

비흡연자인 나로서는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숨만 쉬어도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좁은 실내에 진동을할 텐데

궁금하지도 않은 자기 자랑을 하며 말을 걸어온다.


본인이 강남에 명문고와 명문대를 나왔다는 둥...

예전에 대기업의 왕회장과 독대를 했었다는 둥,

작년에 세금을 30억을 냈다는 둥... 목적지도 알려주지 않고 그냥 직진하란다.

알코올과 담배냄새를 뿜어대며 '직진에 우회전....

유턴~'을 외친다.

변두리 7080 노래방 앞에 세운다.

지난번에 갔던 곳인데 괜찮았단다.

미터기 요금 12600원인데, 12000원만 받으라고

하더니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던지듯 내주고

내려버린다.

세금 30억은 내도, 택시비 600원은 안 내겠다는

심뽀다

말을 섞기가 싫어서 그냥 내려주고는

창문을 모두 열고 어두운 영동대교를 달려 강남으로 간다... 맡아도 못 맡은 척!


업무 특성상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만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 맡아도 못 맡은 척!

해야 하는 쉐도우 드라이버다!

오늘도 네온사인 가득한 도심의 밤거리로 그림자처럼 스며든다!

렛츠! 스타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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