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이 들고 멍이 낫다
엄마 집에는 큰 압력밥솥이 있다. 10년 전 장사 하실 때 사용하던 거라 제법 큰 편이다.
엄마는 압력밥솥도 국이 들어 있는 냄비도 음식물 쓰레기도 엉뚱한 장소에 놓는다.
작년 여름부터 엄마와 다시 함께 살기로 결심한 난 엄마의 산만한 부엌과 식기류의 위치가 싫어
그날도 압력밥솥을 정리하다 그 무겁고 큰 뚜겅이 내 무릎에 떨어졌던 거다.
통증과 함께 짜증이 몰려 왔다... 하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너무 많이 일어나는 일이니 화 라는 감정은 이제 별 의미가 없다.
올 초 1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부터 엄마의 마음과 정신에는 병이 찾아 왔었다.
그 병이 달갑지 않기에 막아보려 애썼지만... 그건 나와 내 형제들의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문제였다.
병이 찾아 온 걸 피부로 느꼈을 때 한동안 눈물이 나왔고 눈물이 그치자 화가 치밀어 왔다.
왜 .. 왜 ... 어째서~!!!!! 나를 비롯한 자식들 말은 듣지도 않고 본인 고집으로만 시간을 보내셨는지...
아픈 아빠와 엄마와의 관계속에서 둘 만 힘들었을거라 생각하지만 그 시간과 감정을 함께 느끼고 지내온 자식들 마음은 그닥 중요하지 않았지!!! 세상의 모든 고달픔과 서러움은 모두 당신 몫이라 생각하였으니...
그 옆에서 지켜보던 자식들 마음에 숱한 멍이 든 건 알바 아니었을 거다.
그래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사람은 자기의 감정이 먼저인 존재니...
아빠를 보내고 아빠를 그리워하며 그 공허함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와는 달리 난 큰 과제를 하나 끝낸 기분이었다. 아빠 그리고 엄마가 함께 한 시간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악다구니 쓰며 소리 지르던 엄마와 큰 병으로 자기 자신의 즐거움이 제일 우선 시 되었던 아빠의 모습 .. 그리고 그 사이에 껴서 두 사람의 모든 감정을 받아내야 했던 우리들...
엄마의 마음의 병이 더 깊어지기 전 그 전에 이 세상을 떠나시는게 자존심 강한 아빠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속으로 얘기하였고 아버지는 그렇게 갑자기 가셨다.
몇 달이 흘렀다. 난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기 보단 기억을 깜빡이며 하루에도 똑같은 질문을 수십번씩하고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위로하겠다고 데리고 온 강아지를 보살피기 바빴다.
엄마의 마음과 정신만큼 산만한 부엌과 식기구들은 한동안 나의 분노를 끌어 올렸다. 왜 이지경이 될때까지 자신을 그리 두었는지..... 엄마에 대한 동정보단 그 성격과 고집에 화가 났다.
그날도 맞지 않은 자리에 있는 식기구들과 압력밥솥을 정리하다 그만 멍이 들었다.
오랜만에 내 피부에 눈으로 잘 보이는 멍이 들었다.
멍이 들고 멍이 나아가는 이 시간을 눈으로 확인해가며 문득 멍이 나아가는 과정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오늘도 오늘의 멍을 확인했다.
멍이 낫고 있나? 멍이 들었던 무릎의 멍 색깔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이제 원래의 살결로 회복하기 직전이란 신호겠지..
내 마음도 멍 색깔이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