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겨울 - 첫번째 이야기
24년의 겨울이 이어진 25년의 1월의 어느 날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렸다...
그날은 세상에 눈이 소복이 쌓여 산책 나갔던 세상 밖은 온통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는 푸근하고 햇살이 찬란하던 날이었다
너무나도 눈부시던 그날 문득 하늘을 보며 중환자실에 의식이 없던 아빠를 떠올렸다
' 아빠.. 아름다운 날이다 '
더 이상 의식이 돌아올 수 없다면 부디.. 이 아름다운 날 떠나시길..
오랜 시간 아빠의 자유로운 영혼을 가두었던 그 육신에서 벗어나시길..
온 가족이 아빠의 침상에 모인 얼마 후 아빠는 떠나셨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날은 풀렸다
봄에 이토록 다양한 꽃들이 2월부터 5월까지 순차적으로 피어난 다는걸 매일 산책하면서 알게 되었다
세상은 여전히 빛나고 아름다웠고 감탄을 자아내는 풍경을 품고 있었다
아빠가 떠난 뒤 아빠의 사후 행정적 절차를 하나하나 마무리 지어 나갔다
그 모든 것들이 처음이었던 어설픈 나와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엄마와 함께.
아빠가 떠난 후 아빠의 빈자리에 황망함을 느낄까 걱정되어 매일 엄마와 잤다
엄마의 수면 패턴은 좋지 않았고 그 덕에 그때쯤의 나도 매일 잠이 모자라 짜증으로 가득 찬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수면 부족과 아빠가 떠난 뒤의 일상을 엄마와 함께 보내면서 난 기억을 깜빡하시는 엄마에게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기보단 그 억센 고집에 자식들 말은 귓등으로 듣더니 결국 본인 병을 본인이 불러왔다는 원망과 화를 갖고 있었다
아빠는 24년을 아프셨고 엄마는 그 긴긴 시간을 병간호와 함께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살아내셨다
긴병에 효자가 없고 긴병에 옆에 배우자도 함께 병들고 죽어갈 수 있단 걸 알았다
아버지 떠나시기 7~8년 전부터 엄마는 화가 나면 그 감정을 통제 못하였고 기억도 종종 깜빡거리셨다
찾아보니 우울증 증상의 시작이었다
엄마의 우울증이 시작되기 전부터도 자식인 우리는 엄마 아빠와 거의 주말을 함께 보냈다
숨 막혀하는 엄마를 위해 엄마의 부담을 덜고자 함께 아빠와의 시간을 보냈고
두 분은 체면도 없을 정도로 자식 앞에서 싸웠다가 이내 둘만 있을 때는 둘만의 다정한 나름의 유대감이 있기를 반복하였고 그러는 사이 자식의 감정은 지쳐갔다
이미 두 분은 두 분의 인생과 시간에 고립되어 있었고 자식들의 감정까지 더 이상 신경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봄에 꽃이 피고 여름에 그 절정이 치닫듯 엄마의 대한 나의 감정은 원망과 화로 가득 차 결국 사소한 문제에서 폭발이 되었다
기억을 깜빡거려 하루에도 같은 질문을 몇십 번 질문하는 것보다 엄마의 판단과 생각이 옳다고 결론지으면 그 누구의 조언과 이야기도 듣지 않던 그 성격에 난 어린 시절부터 쌓인 그 고름이 약해진 엄마 앞에서 터진 것이었다
엄마와 함께 한 감사하고 따뜻했던 그 수많은 날들은 거짓말처럼 기억나지 않고 억눌렸던 그 감정들이 무섭게 쏟아져 나왔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소리를 지르고 나니 기운이 빠졌고 멍한 상태로 산책을 했다
언제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이해가 안 되던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의 모습이 결국 나의 삶에서도 나왔다
그리고 난 그렇고 그런 실망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난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지 않았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내 행동은 개차반이었지만 사과를 하고 싶지 않았고 뭔가 그걸로 엄마에 대한 나의 묵은 감정이 정리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런 개차반같은 모습을 나 자신에게도 엄마에게도 두번 다시 보이지 않기로 했다.
- 첫번째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