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성격장애 여자친구를 만나고 변한 것

내 트라우마를 찾게 도와준 그녀

by 산을 걷다

"나는 그녀에게 항상 감사해."


주변에 이렇게 말했을 때 지인들은 항상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그 정도의 비상식적인 일들 겪고, 너를 부숴놨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냐고.


하지만 내 말에는 가식이 없다. 지인들에게 의연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도 아니다. 진심으로 나를 부숴놨던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감정기복이란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었다.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매일매일이 전쟁 같았다. 미친듯이 싸우고 화해하는 일이 반복됐다.


탈진, 오열, 분노, 허무함, 기대, 절망 등

이 때 나는 깊은 감정들을 느껴볼 수 있었다. 이상했다. 원래 감정기복이 큰 사람이 아니었고, 감정이 생겨도 금방 사그라드는 사람인 내가 이 정도로 격해질 수 있다는 점이


그래서 그 이상한 감정은 호기심이 됐다. 그녀를 사랑했기에 이해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연애에 대해 공부했다. 하지만 그 정상적인 범주에 우리의 관계는 없었다. 다음은 애착유형을 공부했다. 이거인가 싶었다. 그녀의 일부는 불안형애착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이 파괴적인 관계는 설명이 안됐다.

5분전엔 영원의 사랑을 속삭였는데, 갑자기 자기 같은 못생기고 돼지같은 년을 왜 만나냐며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 일이 반복됐다.


그래서 나는 나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그녀가 문제가 아니라면 내가 문제인 걸까? 나는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봤기 때문에 더 이상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 관계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나' 밖에 없었다.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나는 좋은 사람이 맞아?", "과연 그녀의 문제야? 너는 잘못 없어?"


그러다 우연히 과거의 어린 나를 발견했다. 온 몸에 상처가 났는데 얼굴은 웃고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길 원하지 않는 강하고 애처로운 작은 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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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작은 아이를 만나는 일이 너무 불편했다. 나는 강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일찍 어른이 된 멋있는 사람인데? 왜 약해보이고 애달파 보이는 어린 내가 왜? 왜..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거지?


나는 회피형애착 유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해되지 않아 시작한 사람에 대한 탐색이 결국 나를 이해하는 방향이 되어 돌아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인인 그녀와의 관계는 끝이 났다.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참 감사한다. 그녀가 날 부숴놨기에 꽁꽁 숨어있던 내 트라우마를 발견하고 안아줄 수 있었으니까.


그녀가 아니었다면 여전히 누구의 위로도 필요로 하지 않고, 누군가를 위로하지도 못하는 겉은 따듯해보여도 속은 차가운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아갔을 거다.


지금은 보다 남에게 의지하고 있다. 내 연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무너지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결함을 보여주는 것이 두렵지 않을만큼 내 내적기준이 두터워진 것을 느낀다.




한 심리학 특강에서 들었던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아파본 사람만이 치유되고 나서야 비로서 아픈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처음부터 건강했던 사람은 아픈 사람의 마음을 100% 이해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를 치유했고, 이제는 타인을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그래서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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