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하고, 불안하고, 안쓰러운 사람
9년 전, 내 친누나는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지옥 같은 집안에서 같이 자랐지만, 회피형 애착이라는 아주 강한 방어막을 세우고 감정을 차단하며 살아낸 나와 다르게.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고, 끝내 우리 곁을 떠났다.
그녀는 아마 매 순간이 고통스러웠을 거다. 나는 이제 그녀가 조금은 편해졌으리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평온하길. 나의 동료, 나의 누이.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인지, 발달, 성격, 사회 심리학...
그건 아마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아버지란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는 한 번도 어른이었던 적이 없다.
친누나가 생을 마감하기 전, 그녀가 정신 질환으로 고통에 몸부림칠 때 아버지가 선택한 것은 '폭력'이었다. 그 말도 안 되는 결정을 직접 말리며 "도대체 아픈 사람에게 왜 그러는 거냐고" 말하며 절규했던 기억이 난다.
감정을 차단하며 살아남았던 그 당시의 나에게도 이 상황은 너무 고통스럽고 비통한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인간의 탈을 쓴 짐승 같아 보였다.
아버지는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아니 왜 그렇게 밖에 행동하지 못했을까? 나는 너무 궁금했다. 누나가 떠났을 때 몇 주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으면서도 왜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인간으로 살아온 건지 정말이지 알 수가 없었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가 더욱 궁금했고, 더욱 공부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타인의 아픔을 공감할 능력이 결여된 것을 넘어,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짓밟아 자신의 통제력을 확인하는 괴물 같은 미성숙함을 가진 사람이었다. 겉으로는 가부장적인 권위를 내세우고 폭력과 폭언을 일삼지만, 내 눈에는 깊은 무의식 속에 울부짖고 있는 내면의 어린아이가 무척 잘 보였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밖에 행동할 수 없었는지 이해하는 길고도 긴 시간을 가졌다.
매일 아침마다 정치인들과 동료들을 욕하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그가 울부짖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제 그를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무례하고, 불안하고, 안쓰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자식으로의 '도리'를 하고 싶었다.
그는 아주 미숙한 아이였지만 평생을 바쳐 일했고,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나는 그의 헌신에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은 상대의 나쁜 점과 좋은 점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나는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온몸이 거부하고, 마치 이상한 일을 하는 것처럼 감정이 뒤틀렸지만, 나는 그와 조금 더 나아지고 싶었다.
그건 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존중이었다.
노년에 접어든 아버지의 시간이 유한한 것을 알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건 나를 위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가 모두 그에겐 공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나는 그와의 시간을 늘리려고 할 때면 항상 '쌍놈의 새끼, '후레자식', '개놈의 새끼', '쓰레기 새끼'와 같은 말을 들어야만 했다.
그에게는 항상 좋은 말만 하려고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신경이 거슬리면 우리 집의 분위기는 전쟁터가 되었으니까.
그는 항상 나를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곤 했다. 그래서 그렇게 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는 악취가 심했다. 그래서 양치를 해달라고 말했다.
기분 나빠하지 않도록 장난 반을 섞어서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마치 부모를 욕하는 것처럼 수치스러웠나 보다.
나는 다시 쌍놈의 새끼가 됐고, 쓰레기 새끼가 됐다. 온갖 놈의 새끼는 다 되어본 것 같다.. 하하
나는 아주 극히 적게 남아있던 일말의 미련을 지웠다.
나는 그를 이해했지만. 그는 아마 나를 평생 이해해주지 못하겠지.
그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오늘 심리의 장례식을 치렀다
이 향이 다 타버리고 나면 나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