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 힘든 거야. 조금 울자
끊임없이 그를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어린 시절 내게 가장 큰 공포의 대상이었던 그는 지금은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그가 폭력을 쓰고, 폭언을 퍼붓고, 자신을 제외한 모든 세상사람들을 욕하고 저주할 때도
나는 그와 친해지고 싶었다.
정신질환을 앓게 된 누나에게 폭력을 사용하던 그 순간까지도 나는 "대체 왜?"라는 질문을 놓지 않았다. 그 질문은 증오보다 깊은 갈구였다.
"제발 내 아버지가 사람이어야 해.", "당신도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해 줘."
나는 아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남들처럼 술 한잔을 기울이며 응석도 부려보고 싶었다. 내게 있어선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도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적적하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덕분에 나는 '힘든 것'이 뭔지 잘 모른 채 자랐다. 내가 슬픈지, 힘든지 솔직히 하나도 잘 모르겠다. 남들은 무너져야 할 상황에서도 다음날이 되면 멀쩡해진다. 나는 아주 씩씩하게 회피하며 성장했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부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날 무척 두려워졌다.
마움 속 한 구석이 망가진 사람인 것 같았다.
친누나가 죽었는데,
가장 친한 친구가 오열을 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감정이 마치 차단된 기분이었다.
두렵고 무섭고 혐오스러웠다.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일까?"
사실 그 두려움을 인지하는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게 있어서 두려움은 '일종의 불편감'이었다
375편의 감정 일기를 썼다.
그제야 나는 내 힘듦을 타인에게 조금씩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지금 너 힘든 거야, 조금 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