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길고 긴 백수 생활과 아이들의 사춘기를 겪고 나서 집에 있는 게 답답해졌다.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고 싶었다. 그게 뭔지 잘 몰라서 고민하다가 제일 빨리 실행할 수 있는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후기를 써볼까?
그래서 집에 있는 내 옷과 액세서리를 하나씩 찍어서 올리게 되었다.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거나,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꾸준히 하니 방문자 수도 좀 늘었다.
내 안의 해소되지 않는 어떤 것들이 소비하는 것으로 해소가 되었다. 다이아는 없지만 빛에 비쳐 반짝거리는 반클리프 팔찌를 하고 있으면 뭔가 되게 있어 보였다. 반클리프 팔찌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은 왠지 좀 멋있었다.사람들이 내 손에 가는 시선도 나름 즐겼다. 너도 알아보는구나.
그 후에도 비싼 것들, 시계, 반지, 팔찌, 귀걸이 등 명품 액세서리에 입문했더니 계속 사고 싶어졌다. 그리고 패션 블로거에 옷들을 올렸다. 자라 세일을 하거나 코스 세일을 하거나 매장에 들르면 세일하는 옷은 좀 별로고 신상 옷들 위주로 하나씩 들였다.
블로거니까 이 정도 투자는 괜찮겠지 하며 옷장을 채워갔다. 계속 입어보고 사진 찍고 영상 찍고, 나름 재밌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물건을 사는 것이 재미 없어졌다.
코스 매장의 마네킹이 입은 심플하고 소재 좋은 옷을 봐도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입고 나갈 데도 없는 데다 블로그를 쓰고 아침마다 운동하니 사람 만날 시간도 없고, 막상 만나는 것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엄청나게 방문자 수가 많은 블로거를 자주 관찰하곤 했는데 매번 비슷한 옷, 비슷한 스타일, 심지어 같은 옷인가 싶은 옷들을 협찬받고, 수수료를 받아서 링크를 계속 올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얼마 버는지 모르겠지만 잘 벌겠다. 꾸준함에서 여기까지 왔겠지 하며 존경심도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했다. 왜? 다들 똑같이 너도 나도 시장통처럼 팔고 있으며 수없이 많은 쓸데없는 광고가 넘쳐나고 연예인들도 하나 같이 자기네들이 입지 않은 옷들을 사진을 찍고 광고를 해주고 나는 피곤했다. 이제 더 이상 진짜는 없는 것인가?
그냥 다 광고이고 내가 입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서로의 니즈에 의해 의미 없이 쏟아내는 어떤 글을 써서 누군가를 속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어떤 마음은 그래서 돈을 못 버는 나 자신이 좀 답답하기도 했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시간에 닥치고 하면 돈이라도 벌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영 끌리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진짜를 전달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누군가도 나처럼 그런 것들 때문에 이미 지쳤을 수 있고, 이미 그런 사람들이 넘치는데 나까지 보태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왜 팔이피플이 거슬리는 가?
그들이 부러운 걸까에 대해 생각해 봤다. 한 편으로는 돈을 버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그러나 내 안을 들여다보면 내 목적은 블로그에 있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왜인지 같은 목적이 있는 사람처럼 묶이기 싫은 내 안의 이상한 우월감일 수도 있다. 그게 아니면 남들에게 가짜로 무엇을 파는 행위가 내가 사용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것을 돈이라는 수단 앞에 거짓말하며 진짜 좋다고 말하는 내가 너무 짜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아님 얼마 안 되는 돈이라 그랬을 수도 있다. 몇 억을 주면 만들어서라도 할 것 같기도 하다.)
아무 생각 없이 블로그를 하면서 달려왔는데 이런 나의 생각에 부딪혀 버렸다. 내 성격상 그래도 이게 돈 버는 길이야 라고 알려줘도 가지 않을 것을 알기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리고 쇼핑을 완전히 끊지는 않았지만 엄청 비싼 것들 나를 있어 보이게 하는 것들, 명품 로고라든가 알만한 어떤 것들을 계속 소비하는 건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안 하는 건 정리 좀 하고 앞으로는 좀 더 내면의 어떤 것을 채우고 싶다.
비싼 옷이 아니어도 꾸준히 로션을 잘 발라서 관리된 피부, 트리트먼트를 잘해서 관리된 머릿결, 태도, 자세, 말투, 그리고 나를 발가벗기고 알몸으로 남겨도 남을 어떤 것, 경험, 책, 여행, 전시관람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을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런 것들이 쌓여서 진짜 나를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