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 회사 생활에 대한 기억
얼마 전까지 방영한 김 부장이야기를 보면서 잊고 있던 나의 20대 시절 회사 생활이 떠올랐다. IMF가 조금씩 잊히고 있을 그 시기, 사람들은 월드컵의 영광을 맛보았고,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 시절 새로운 직업이 생겨났다.
파견직이라는 직업, 회사 소속이 아닌 인력업체에서 관리하여 직원을 뽑는 시스템으로 정직원이 아니고 언제든 잘릴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 시절 나름 소속되지 않는 어떤 불안감으로 위축되어 있었지만 겉으로는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다녔다.
드라마의 김 부장의 모습이 우리 때 부장, 과장, 대리할 것 없이 모두의 모습이었다. 그때는 다들 그런 인식이 있었다. 대기업이지만 나는 그곳에서 파견직만 입는 유니폼을 입고 커피심부름을 해야 했다. 아침 회의 시간에 커피를 타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외로웠던 것 같다. 그때는 어려서 그 감정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불안이었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존재감 없는 그저 그런 잡다한 일을 하는 일개 여직원이었다. 어느 부서나 그런 여직원이 부서마다 있었다. 나는 회의 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ppt자료를 만들기도 하고, 회계정리를 해서 회계팀에 전달하거나 커피심부름이 나의 주 업무였다.
우리 세대를 말하자면, 부모님이 아들과 딸 구분 없이 공부시켰던 세대이며 사회인식은 남자 우선이었지만 그래도 가정에서 만큼은 딸들도 구분 없이 교육이며 투자를 아낌없이 해 준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당차고 내 생각들을 표현했는데, 아직 사회는 그에 비하면 한참 수준 미달이었다.
어느 날은 목감기가 걸려서 목에 스카프를 하고 갔는데 과장님이 내 목에 스카프를 보더니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라며 농담을 던졌고 내가 정색을 하며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냐고 말했는데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한 번은 워크숍의 명목으로 우리 부서와 옆부서가 1박 2일로 콘도에 놀러 갔는데 그 부서 언니와 나는 각 부장님과 블루스를 추었다. 다 늙어빠진 아빠뻘 아저씨들과 불루스를 췄고, 전체 회식을 갈빗집에서 할 때는 임원이 오시면 처장, 부장, 과장, 대리할 것 없이 굽신 거리며 임원이 키우는 개의 갈비까지 챙겨주었다.
그 자리에 나보고 임원 앞자리에 앉으라며 처음부터 나는 지정자석이었다. 술 따르고 술 마셔드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멱살 잡고 거기를 뛰쳐나왔어야 했는데, 그게 술집여자나 다름없는 그런 회사 생활을 하라고 우리 부모님이 대학을 보내주진 않았을 건데, 그런 생각하면 가끔 화가 솟구친다.
또 경악할 만한 일은 부서 회식이었는데 2차로 노래방도우미가 있는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서 내 앞에서 도우미의 가슴을 만졌다.
그리고 나는 정직원이 되었는데 정직원이 돼도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일의 반복이었다. 정직원 시켜줘서 고맙지도 않았고, 더 이상 이곳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말 그대로 빛 좋은 개살구였다. 멀리서 보면 좋은 직장이고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대기업 있지만 그 안에서의 일은 좀 인간답지 않았다. 다들 알면서도 그게 잘못된 줄 모르고 누구도 그게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당연하듯 생각했었다.
그러다 정말 도망치고 싶어서, 다 때려치우고 호주로 도망갔다. 어학연수를 핑계로 회피를 해버린 거다. 그만 둘 이유를 찾았는데 그냥 좀 있어 보이는 핑계를 대고 싶었다. 그럴듯하기도 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이렇게 떠날 수 있는 사람이다. 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너희들과 다르다를 보여주고 싶었기도 했다.
문득 회사 다닐 때가 생각이 나면 그때 생각이 난다. 내가 커피 심부름 하면서 걸어갔던가 그냥 걸어갔던가 회사 안에 책상 앞을 지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내 안에서 다짐처럼 들렸다 '나는 CEO가 될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많은 기억들은 다 지나가버리고 흘러가버렸는데, 그때의 기분, 다짐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회사 생활은 잊은 듯했는데 김 부장이야기를 보면서 그때의 일들 좌천된 이야기, 인사발령의 기억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내가 정직원 되던 그 발령지도 기억이 난다. 모든 게 어설프고 부당한 것들도 암묵적으로 당연히 그런 거지 하고 생각했던 그때, 내 마음속에는 그런 것들이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고 용납이 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다녀야 했던,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 지금은 웃지만 그 시절 그런 일들이 참 부당했다고
그분들에게 왜그랬냐고 묻고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