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를 녹슬지 않게 매일 기름칠을 해주는 것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았다. 따뜻한 담요를 덮고 드라마를 보고 있었는데 더 보고 싶었지만 껐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루틴이 나를 움직였다. 그의 성공에는 매일 4시에 일어나 책상에 앉고 원고지를 쓰는 시간 이 그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내가 글을 썼을 때를 되돌아보면 마음이 갈 곳을 잃었을 때 글을 썼다. 갈 곳을 잃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 오면 노트북을 켰다. 펜을 들고 써 내려갔다. 그냥 내 안의 것들을 쏟아냈다. 순서도 어떤 질서도 없이 수많은 것들이 마음속을 엉망진창을 만들고 있을 때 나는 그것들을 나열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쏟아내면 한결 나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면 다시 글을 쓰지 않았고 언제나 감정이 꽉 차서
감당이 안 될 때 글을 썼다. 오늘은 그냥 앉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장에서 뜬금없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타자가 친 공이 2루타가 되는 그 경쾌한 타격음을 듣는 순간, 마치 하늘에서 뭔가 꽂히듯 '소설을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내면의 소리를 들은 것 같다. 나는 종교가 없어서 특정 종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종교 채널을 봤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고 말하는 걸 보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라카미도 내면의 어떤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그냥 하겠다가 아니고 매일 4시에 일어나서 10km를 달리며, 스스로의 다짐을 지키는 모습, 그것을 이루는 과정이 그냥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약한 마음이 내면의 어떤 방어기제가 작동해 '어 그거 안돼' '그거 별로야.''그거 돈 벌기 힘들어.' 이런 소리들 남들이 하는 말들, 정작 본인들도 가보지 못한 길을 쉽게 말한다. 겪어보지도 않고서 신포도처럼, 저 높이 있는 포도는 시어서 못 먹을 거라고.' 포기해 버린다. 완벽주의를 가장한 방어기제, 책임회피, 관성의 법칙이 나를 움직이지 않게 만들었다.
내 뇌가 그렇게 습관이 들어져 버렸다. 상처받지 않고 싶어서,힘들지 않고 싶어서, 세상에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게 있나. 이제야 내 모든 것들이 내가 가는 모든 길이, 실패를 했던 성공을 했던, 그냥 지나갔던 모든 길이
다 나를 만들어 준 길이라는 것을 나이 마흔이 넘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내가 누누이 아이들에게 했던 말,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걸 나도 알고 있었으면서 안주하려고 했던 나 자신을 지금부터라도 다시 책상에 앉힌다. 책상에 앉는 건 힘든 일이 아니야. 이 추운 겨울 새벽에 밖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고작 집안에서 책상에 앉는 게 뭐가 어려울 까. 그냥 앉는다. 내가 운동 갈 때 맨날 하는 게 있다. 옷을 입고 패딩을 입고
갈아신을 운동화 가방만 들면 어떻게든 헬스장에 도착해 있다. 아마도 이제는 습관이 되어 버려서 뇌에서 더 이상 그것을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루틴이다,
우리 뇌는 습관이 되면 그것을 방해하려 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그 방해하려는 그 시간, 인간이 본래 위험을 감지하는 그 기간을 습관을 만들지 못하고 뇌에게 설득당한 지난날들이 수두룩 하다. 그래서 하다 말고 하다 말고, 운동을 한 이후로는 그 방어기제가 많이 없어졌다. 운동으로 이미 증명해 냈기 때문에서 스스로를 믿게 되었다.
수영도 어떻게든 가서 물속에서 움직이면 죽을 것 같고 왜 이렇게 안 늘지 그렇게 생각을 해도 또 가고 또 가고 하니 그때는 늘지 않았던 것들이 지나 보면 나아져 있었다. 우리의 루틴도 그렇게 익숙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처럼, 내일도 앉아야지.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하는 마음 오늘도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