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것을 멈출 수 없다

데이터가 쌓이면 예술이 된다. 모네

by ODG

마 과장의 옆자리에는 회사에서 기대를 걸던 젊은 사원이 있었다.
그는 조직이 요구하는 문법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기본기도 단단했고 보고서는 안정적이었다.

입사 초반 모사원은 충분히 유망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보고서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완성된 결과보다 변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상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인데...”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그는 점점 회사와의 괴리감을 느끼고 퇴사각을 잡기 시작한다.




1. 르아브르 — 하늘을 배우다 (1858-1860)


모네는 처음부터 급진적인 화가는 아니었다. 르아브르에서 10대 후반을 보내던 그는 캐리커처를 그리며 이름돈을 벌었다.

이후 아마추어 화가였던 고모의 소개로 외젠 부댕을 만나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댕은 그에게 실내가 아니라 하늘을 보라고 말했다. 모네는 이때 처음으로 빛이 사물을 어떻게 바꾸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2. 알제리 — 빛의 강도 (1861-1862)


1861년 군 복무로 알제리에 머물렀을 때 북아프리카의 강렬한 태양과 선명한 색채에 대한 경험은 하나의 자극이 되었다. 장티푸스로 일 년밖에 복무하지 않았지만 이 빛을 화폭에 담기 위해 평생 노력했다고 알려져 있다.



3. 글레르 화실 — 문법을 익히다 (1862-1864)


파리로 돌아온 그는 샤를 글레르 화실에 들어간다. 이곳에서 인체 구조와 명암, 전통적 구도를 배웠고 르누아르, 시슬레, 바지유와 교류했다. 모네와 그 동료들은 자연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사실주의 화풍을 구사하는 바르비종파에 매료되어 있었다. 바르비종파의 그림들은 주제에 대해서는 고전주의를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표현에는 자연주의적인 특징을 가졌었다. 모네는 이 화풍에 매료되면서도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었다.


4. 조직의 인정 — 살롱 입선 (1865)


1865년, 그는 처음으로 바다를 배겨으로 하는 두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비평가들은 모네를 전도유망한 화가로 평가했고 이제 막 살롱에 발을 디딘 모네에게는 엄청난 것이었다.


옹플레르의 센강하구,클로드 모네 90 ×150cm 1865/ 르아브르 곶의 썰물, 클로드모네 90.2 90 ×150cm 1865

이 작품은 스승 외젠 부댕의 영향을 받은 그림으로 아직까진 잘 짜인 정교한 그림에 가깝고 인상주의 화풍의 단계로 나아가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 해에 다시 두 작품을 출품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살롱의 주목을 받는다. 특히 그의 아내를 모델로 한 〈초록 드레스를 입은 카미유>는 페르시아의 여왕 같다며 찬사를 받았고 주문이 쇄도하며 재정적인 여유로움도 얻는다.


초록옷을 입은 카미유, 클로드 모네 232 ×151cm 1866

25세에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 방식을 고수하면 앞으로의 길은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이런 안락함을 포기하고 새로운 모험을 감행한다.


5. 런던 — 형태가 녹아내리다 (1870-1871)


1860년대 후반과 1870년대 초반은 프랑스의 혼란의 시기였다. 특히 1870-1871년 프로이센과의 보불전쟁으로 모네는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간다. 사우스 캔싱턴 뮤지엄에서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접하고 충격에 빠진다.

눈보라 속의 증기선, 윌리엄 터너 91.5 ×122cm 1842 / 해안으로 다가오는 요트, 윌리엄 터너 103 ×142cm 1835

안갯속에서 건물의 윤곽은 흐려지고 대기가 화면을 지배하는 듯했고 사물은 고정되지 않고 공기 속에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터너의 그림에는 사물의 구체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데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바람과 물과 빛의 시각적 효과만이 중요해 보였다.


6. 퇴사선언 — 〈인상:해돋이〉 (1872)


1872년 그는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영향을 받아 <인상:해돋이>를 그린다.


인상주의 이전의 화가들은 자신이 원하는 색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색을 섞는다. 이때 혼합된 색이 두껍고 밝기가 사라지는 문제가 발생했다. 반면 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을 섞지 않고 분할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색을 작은 터치로 병렬하는 것이었다. 조금 멀리서 보면 그 색들이 서로 섞여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인상:해돋이, 클로드 모네 48 ×63cm 1872


그런데 같은 해에 그렸던 <아르장퇴유의 봄>은 색채나 구도가 훨씬 더 안정적이다.


아르장퇴유의 봄, 클로드 모네 55 ×65cm 1872


그리고 그는 이 작품들을 살롱 대신 독립 전시에 출품판다.


<인상:해돋이>를 본 살롱의 평단은 대충 작업한 듯한 붓놀림으로 무질서한 데다 그리다 만 그림 같다고 혹평했고 대중들도 혹평 일색이었다.

인상주의라는 이름도 그 조롱에서 나왔다.


모네는 이런 주위의 손가락질에 개의치 않았다. 지속해서 자신의 화풍을 발전시켜 나갔고 남들에게 초라하게 보여도 꿋꿋하게 자기의 길을 걸어갔다.


7. 사진기술을 활용하다


1839년에 등장한 사진은 당시 셔터스피드가 별로 빠르지 않아서 움직이는 대상을 찍으면 대상의 실루엣을 명확하게 포작 하기가 힘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사람들은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서있야 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은 사진기의 이런 약점을 파고들어 우연히 스쳐 지나가는 피사체를 그리는 등의 방식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생 나자르 역의 철로, 클로드 모네 60 ×80cm 1877


<생 나자르 역의 철로>에서 수증기 사이로 철로가 흔들리는 듯한 묘사는 스냅사진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모네는 이런 덜 뚜렷하고 윤곽이 흐린 그림에 대한 혹평을 잠재우기라도 하듯 더욱더 집중적으로 작품을 많이 남겼다.


8. 현실과 타협할 때가 온 것인가 (1872~)


모네의 이런 모호한 그림은 즉각 인기하락으로 이어졌고 이내 그림이 안 팔리기 시작했다. 씀씀이도 컸던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때 마네가 모네의 그림을 사주며 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1878년부터 1881년까지 3년간 300여 점의 유화를 그리는 등 동일주제를 반복해서 그림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그리고 또 그리면서 자신의 세계를 유지했다.


1879년이 그의 아내 카미유의 사망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을 때 조르주 프티라는 지인으로부터 부르주아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려보라고 제안했고 모네는 결국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1880년 <라방꾸에서 바라본 센 강>과 <라방꾸의 일몰> 두 작품을 살롱에 출품한다.


라방꾸에서 바라본 센강, 클로드 모네 100 ×150cm 1880
라방꾸의 일몰, 클로드 모네 100 ×150cm 1880


모네의 예상대로 <라방꾸에서 바라본 센 강>은 심사위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그림의 구도가 비교적 안정되고 선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가도 컸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현실과 타협한 모네를 다시는 인상주의 그룹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자고 말할 정도로 비탄해했다. 이후 모네는 예술성과 대중성의 줄을 적절하게 줄타기하면서 자신의 생활과 작품활동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9. 연작 — 집요함의 증명 (1890년대)


1890년 모네는 자신의 전기 작가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가 짧아서 그것을 다 화폭에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 변화하는 속도를 담아내기에는 내 작업 속도가 너무 늦는다는 사실이 나를 좌절하게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뜁니다."


거장에 오른 중년의 화가의 말로는 너무 겸손하다.


이후 모네는 새로운 모티프를 찾아다니며 하나의 주제를 발견하면 동일한 그림을 반복해서 그려내면서 대상의 변화를 표현했다.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 날씨에 따라 동일한 주제를 수십 번 그리는 연작에서 대상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색채의 변화가 더 중요해졌다.


건초더미와 연작은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의 호평이 끊이지 않았다.


건초더미의 해질녁,클로드 모네 73.3 ×92.7cm 1891
건초더미 눈 내린 아침, 클로드 모네 91.65 ×100cm 1891
건초더미 가을의 끝자락, 클로드 모네 61.4 ×100.4cm 1891


10. 끝까지 빛을 관찰하다 (1900년대 ~ 1926)


기존의 그림이 기능성에서 구체화로 나아갔다면 모네는 구체화에서 추상으로 나아간다. 형태는 빛을 타고 바람에 흩어져 버리는 것처럼 대상은 조정되어있지 않게 된다. 그는 주체와 객체가 하나가 되는 회상과 환상의 체험을 화폭에 담으려고 계속 노력하며 작품을 남겼다.


국회의사당, 클로드 모네 81 ×92cm 1904

모네는 마네와는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새로운 기술이 밀려왔을 때 그는 정면으로 싸우거나 도망가지 않고 그 빈틈을 찾아냈다. 때로는 사진을 참고해 작업하기도 했고 또 어떤 순간에는 사진이 잡아내지 못하는 시간의 흔적을 그림으로 옮기려 했다.


나는 그 모습에서 잘 적응하는 제니얼 세대를 보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 태어나 도구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결국은 자기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사람들.


직업적 측면으로도 그를 떠올리면 조금 부끄러워진다.


나는 지금 내가 하려는 일에 이만큼의 집념을 쏟고 있는가.

집요하게 반복하고 있는가.

기술에 반응하는 데 급급한 건 아닌가.

대중성과 나의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고 있는가.

50이 넘어서도 자신의 발전에 가슴 두근거리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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