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 19세기로 돌아가다
디자인을 독학하며 매일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좌절한다. 내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 때문에.
상세페이지 하나를 만들 때에도 그렇다.
조금만 더 디테일을 잡으려면 결국 타이포그래피 지식이 필요해지고 색감을 잡아보려 하면 색채학이 필요해진다.
'너무 공부해야 할 분야가 많은데?'
그래서 필요한 공부의 커리큘럼을 리스트업 해서 하나하나 해보자는 식으로 공부하고 있다.
열심히 하다가도 문득 묘한 기분이 든다.
‘이럴 거면 학교를 다시 가야 하나.’
나는 디자인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미학을 공부하고 있었다.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나의 궤적이 대학 정규 커리큘럼의 지도와 겹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전공자들이 원래부터 밟아왔던 지도를 뒤늦게 따라 걷고 있었던 셈이다.
'지름길은 없다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모든 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기술도, 감각도, 지식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미술사 부분만큼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미술사는 스스로 깊이를 채워가는 공부인지도 모른다.
전공자들이야말로 그 깊이를 체계적으로 배워왔겠지만 비전공자인 나도 내 경험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따라가 볼 수는 있지 않을까.
늦게 공부를 시작한 미술사학자 전원경 씨의 사례처럼 전공 여부보다 삶을 대하는 태도와 사색의 깊이가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 분야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비전공자에다 늦게 시작하는 사람이지만 삶과 결부시켜서 미술을 대하니 이해와 공감이 먼저 일어났다. 암기된 텍스트가 아니라 화가의 생애와 내 마음이 공명하는 순간도 한 번씩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질문이 하나 생겼다.
음악 전공자에게 동경하는 작곡가가 있듯 미술 전공자에게도 마음속에 품고 있는 화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땠을까.
가상의 미술 전공자가 되어 과거로 돌아가 본다면 나는 어떤 사조를 사랑했을까? 무엇이 나의 심장을 뛰게 했을까?
나는 어떤 풍경을 볼 때 그 풍경이 내 기분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을 자주 경험해 왔다. 그때에는 내 기분과 풍경이 완벽하게 일치해 사진처럼 마음에 남았던 순간들이 좋았고 나중에 다시 떠올려도 공기와 냄새와 온도까지 같이 따라오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런 순간들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표현했던 작품들을 찾아봤다.
"이거... 인상주의인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 개념이 지금의 디자이너라는 직업에도 대입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금 AI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디자이너가 하던 일을 너무 쉽게, 너무 빠르게 대신한다.
SNS에는 "프롬프트 하나면 상세페이지 2초 만에 뚝딱"이라는 글들이 넘쳐난다.
재현의 도구가 인간을 추월할 때 느끼는 서늘한 감각.
19세기 사진의 발명이 화가들에게 던졌을 그 정체성의 혼란과 존재론적 공포. 지금 AI 시대에 디자이너를 목표로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과 같이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이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을 다른 방식으로 승화시켰다. 사진이 할 수 없는 것, 빛에 대한 자신만의 감각과 해석을 화폭에 담아냈다. 나도 그런 길을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내가 정확히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었다.
그것이 왜 좋아졌는지를 공부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인상주의가 도래했던 시대를 한번 들어가 보려 한다.
기술적 숙련을 넘어 나만의 철학을 세우는 일. 그 길을 찾기 위해 가장 혼란스러웠던 19세기 변화의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사진이라는 기술 앞에서 화가들이 어떻게 자신만의 길을 찾았는지 그들의 고민을 따라가 보려 한다.
그 여정 이 끝나고 나면 나는 어떤 디자이너가 되어 있을까.
무엇을 하려 했는지에 대한 확신만큼은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