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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Jul 30. 2022

나이 든 엄마는 무슨 색깔일까?

베란다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진다.

햇살이 흩어지며 원을 그리는 그림자가 어지럽다.

우리 집에선 아침마다 "으이차" "으이차" 구령과 함께 맨손 운동을 하시는 할머니를 볼 수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맨손 운동을 하신다. 건강 염려증이 있으신 할머니의 건강을 위한  코스. 본인이 드실 반찬은  따로 만들어 드실 정도로 철저한 자기 관리의 소유자이다.


무척이나 예민한 성격을 타고난 할머니. 모든 병명 앞에는 '신경성'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약봉지는 '신경정신과' 약이 가장 많았다.

그때는 '신경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크게 관심도 없었지만 중년이 되고 돌이켜보니 할머니의 성격과  병을 얻게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있다.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왔기에 노년기의 할머니를 오래도록 지켜봤다.  기억에 '할머니'라는 단어로 기억되기 때문에  번도 엄마의 할머니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 할머니도 엄마였지.. 나와는 모든 상황이 다른 엄마.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인 할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남매를 낳고 아빠가 중학생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가난한 젊은 미망인.. 순식간에 얻은 할머니의 엄마로의 타이틀이었다.

"중학교 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 너무 배가 고팠어."

아빠가 이야기해주신 굶주린 고통을 겪은 가난한 . 고모들은 일찍 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큰고모의 지원으로 겨우 아빠만 대학을   있었다. 인생의 굴곡을 모르고 살아온 나의 편안한 삶과는 대조적인 할머니의 .


 예민한 성격에  모든 인생의 굴곡과 시련을 겪었다. 삶이 조금 편해진 상황에서도  불안과 경계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안함 조차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할머니의 성격에 삶의 무게가 더해져 '신경성'이란 병들을 얻게  것이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고 자식을 공부시켜야 하고 시집 장가도 보내야 하는 많은 숙제들을 혼자 감당하기도 버겁지만 도망갈 수도 없었으리라.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할머니는 끝까지 엄마로의 숙제를 끝냈다.

 결과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와 함께 살며 끼니 걱정은 자식에게 건네주고 본인의 건강만 걱정하면 되는 편안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끝내 편안하지만은 않으셨다. 그런 탓에 우리 가족은  긴장 상태에 있을 때가 많았다.

새벽 몇 시든 아픈 할머니의 호출에 불려 가야 하는 엄마, 남편처럼 의지했던 아들에 대한 기대감이 어긋날 때 생기는 실망이 다툼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난 엄마에게 불똥이 튀지 않기 위해 할머니가 찾아낸 실수를 내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짓궂은 남자아이가 장난으로 의자를 빼서 엉덩방아를 찧은 날 엉덩이가 아파 울면서 집에 왔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 손을 끌고 학교까지 들어가셔서 그 녀석을 혼내주시겠다며 교실을 뒤졌다.

어릴 때 팔이 심하게 부러져 모든 의사들이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어린애한테 무슨 수술이냐며 끝까지 동네에 수술 없이 고쳐보겠다는 의사를 기어이 찾아준 할머니. 덕분에 팔의 두 갈래 뼈가 다 부러졌는데 자연치유로 붙은 첫 사례자가 되기도 했다.


"정애야 젊을 때 많이 먹고 젊을 때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나이 들면 먹고 싶은 것도 없어지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진다."

"너희들도 나이 들어 봐라. 나이 들어보면 내 마음을 알 거다."

"젊을 때 아무거나 먹고 다니면 나이 들어 병든다."

다리 힘 있을 때 많이 다녀라. 나이 들면 몸 따로 마음 따로다."

"너희는 절대 안 아플 것 같지. 나이 들어봐라 안 아픈지."


할머니의 나이 들면 어록이 내가 나이를 들어갈수록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예민한 할머니의 느낌은 웬만하면   들어맞는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말과 마음들이 이제는 조금씩   같다.


"니 애 낳을 때까지 할매가 살겠나?"

매일 운동에 좋은 음식만 챙겨 드시는 할머니는 당연히 내가 애 낳는 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의 못 보셨다.


"늙으면 빨리 가야지 빨리 가고 싶다." 라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셨던 할머니는 나무  편안한 바람이 되어 산들산들 다니시겠지.  그러실 거다.




30대 중반에 엄마가 되고 나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달라질 엄마의 색깔에 대해 생각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누구보다 강인한 엄마이고 삶의 무게를 한 손으로 들고 나아갔던 가장이었다. 모든 스트레스가 마음의 병으로 와서 노년은 꽤 오랜 시간 아픈 시간을 보내면서 마음이 약해지고 무뎌지셨다. 진분홍색 엄마가 연분홍색 엄마가 되었지만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다채롭고 강인한 ‘엄마’라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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