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학교에서 지켜야 할 공적인 영역과 각자 풀어내는 개인적인 영역에 관한... 조금은 불편했던 주제를 이끌어낼까 합니다.
어떻게 보면 어렵고, 또 조금 달리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 같은 그런 얘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처음으로 이 브런치에서 고백하는 듯한... 저의 어린시절 얘기부터 시작할께요.
저는 아주 어려서부터 "친한친구가 누구야?" 물으면 대답을 잘 못할만큼 사교성이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도 늘 혼자이거나 가끔 언니를 쫓아다니는 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언니는 활달하고 주위에 친구들이 모여들어 재미나게 웃고 떠드는 화기애애한 풍경을 자주 연출했지요. 상대적으로 저는 스스로도 거의 의기소침하고 소심하다고 생각이 되어서, 하루하루가 힙겹고 지루하게 느껴졌던 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노는 언니를 멀찌감치서 바라보던 때의 횡량한 기분이 지금도 떠오를 정도니까요...
어머니께서는 그런 제가 너무나 걱정이 되셨는지 새학기마다 담임 선생님을 만나면, "얘는 친구가 없어요..." 하고 미리 알리기도 하셨답니다. 그러면 다정하신 선생님들께서는 보통 가까운 곳에 사는 친구 옆에 앉혀주시거나 한 번 더 말씀을 걸어주시던지... 뭔가 배려를 해주셨던 것 같아요.
참 따스했던 기억입니다. 그렇게 어렵게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기면 꼭... 부모님 중 한분이 공직자이시거나 태도에서 중도를 제법 잘 지키던... 지혜로움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어쩜 저렇게 반듯할까?' 나는 소극적이기는 해도 내면의 놀이욕구가 있어서 그런지, 은근히 삐딱한 자세를 보이기도 했었거든요. '어쩜 저렇게 늘상 밝을까?' 마치 표정관리술이라도 익힌것 마냥 환한 인상이 참 안정되고 좋아보였습니다. 본받고 싶기도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1년도 넘게 등하굣길을 함께 오가며 두런두런 속 얘기도 나누고 많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서로 집에 초대하는 일은 없었고, 딱 한 번 들렀을 때는 아무도 없이 피아노만 잠깐 보다가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왜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결같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지내 온 그 친구와 나 사이에는 겉보기에만 단짝 같을 뿐, 실제로 친밀감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이 빠져있다는 느낌이었죠.
그 때쯤 친구도 비슷한 말을 저에게 한 것 같습니다.
"너는 아무리 오래 만나도 처음같은 인상을 줄 것 같다..."라고요. 정확한 말은 기억이 가물하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건 맞습니다. 그 때 마음이 저릿함을 느꼈거든요. 그 때 그 말에는 서운함이 담긴 것 같았어요. 제가 그 친구에게서 충분히 친밀감을 느끼지 못 했듯이 그런 마음이 전이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되었고요. 아니나다를까... 그후로 자연스레 조금씩 멀어지다가 결국 그 친구에게는 다른 다정한 단짝이 생겼고, 저는 홀로 고민하며 나의 까칠함을 좀 다듬을까 ... 공부나 더 파고들까... 그런 방향으로 변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 그 친구에게는 보다 더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고 감정도 케어할 단짝이 절실했던 것 같아요. 그러기엔 전, 좀 이해타산적이었고 수학을 좋아하며 전과목 성적 유지 내지는 상위권 확보에 열을 올리곤 하였으니까요. 수업태도는 저보다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성적에 대한 집착은 제가 더 있었거든요. ㅡㅡ...
그 때 그 시절부터 그랬었나 봅니다.
학교에서의 공적인 행동과 사적인 영역사이의 간극을 인지했던 것이죠... 친구의 행동은 한 번도 수업중에 지적을 받지 않을만큼 반듯하고 온화해 보였습니다. 한마디로 공공질서를 잘 지키는 학생이었던 것이죠. 그 외의 시간에도 특별히 집합시간을 어긴다거나 청소를 땡땡이 친다거나 흔한 졸음 내지는 지각 정도도 눈에 띈 기억이 없으니까요. 그런 면들이 지금 생각해보면 공공의식이 내면화되어서 의젓하게 나온 것 같아요.
반면에 저는 엉뚱한 말을 하거나, 정해놓은 시간에 늦는 등 약간의 일탈행동으로 관심을 모으곤 하였고 같이 그런 행동을 하는 친구가 보이면 친근감을 느끼기도 했었거든요. 지극히 사적인 감정과 욕구로 공공질서에 해로움을 끼쳤네요. ㅜㅜ...
그런 습관이 안 좋게 인식된 건 어른들의 훈계나 가르침으로 인한 건데, 저 또한 공립학교의 교사가 되고보니 학생들에게 같은 기분을 되물림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명히 공공장소이고, 하루의 계획이 짜여져 그 안에서 다 함께 움직여야하는 집단 공동체임을 감안한다면 자제력을 발휘함이 마땅할텐데 왠지 자꾸만 미안해지고 안타까운 감정은 무엇일까요? 이제는 저도 개인적 욕구를 뒤로하고 공공성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 명예로움을 느끼는데, 어째서 그렇게 사는 게 옳다고 확신있게 주장하지 못하는 걸까요?... 공직을 떠나보면 알게 됩니다.
모두가 같은 가치관을 목표로 살아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겠죠...
또한, 그러함을 은근히 깨우쳐가던 그 시절에도 공공을 위한 질서를 위해 나 자신을 깍아내리는 결과는 달갑지 않았을 것 입니다.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으로... 자신이 공적인 수업에서 산만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좀 한번더 생각해서 조금만 더 아름다운 표현으로 바꾸어 쓸 순 없을까... 그런 속마음도 있었던 것이겠죠.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기다는 사춘기, 요즘은 초등 5학년부터 한창이라죠?
그때의 공공의식은... 사적인 감수성을 아름답게, 자아를 보다 소중하게, 자존감을 드높여 총명함을 잃지않게... 우리 학생들의 전체 인생에서의 큰 변환기라 여기고, 잠시만 좀 너그러워져도 괜찮지 않을까요?좀 더 세심한 표현으로 아이들의 공공의식을 가다듬어 줄 대화체계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공공의식은 여전히 갖추되, 위험하지 않은 정도의 일탈은 조금 유연하게 봐줄 수 있는 여유도 필요하겠습니다.
요즘도 수행평가에서는 태도 점수를 둘 수 있는 만큼, 공공의식을 갖추고 전체를 위한 질서를 늘 염두에 두어 행동하는 것은 ...학교에서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겁니다. 그를 위해선 좀 더 크게 자란 자의식도 낮추고 사교성도 때론 조절하면서 조심스럽게 주위를 두루 살펴야 할 것입니다.
점심시간에는 점차 개인 수저통을 갖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는데, 그것을 흔쾌히 허용하는 건 아마도 코로나가 지난 다음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점차 학교는 개인 한명 한명을 고러하며 일을 해나가야 원만히 흘러가는 장소가 되어가고, 그 개인들은 각자의 개성이 점차 강해지니, 결국 학교 교육과정은 일련의 맞춤형 교육 서비스처럼 진화하고 있는 것도 같지요.
언젠가는 사적인 얘기와 몇몇 친구끼리 모여다니는 사교활동도 별 문제없이 받아들여지는 날이 올지...
아직은 사생활을 얘기하기 어색한 교실내에서, 또는 학교 행사에서, 여러분은 각자 어떤 표정과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 저는 밖에서 여전히 사람들을 만나면 일정선이상 가까워지기 전에 거리를 두게 되는 것 같아요. 법이나 규정상의 문제, 공공성과 정의에 관한 고찰 등이 그런 행동결과를 뒷받침하기는 하지만, 조금 고독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사유를 통해 보다 질서있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추구하는 건 참 좋은 일이겠죠? 감사와 흐믓함으로 마무리하는 5월 되시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