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꿈꾸는 엄마 / 아름답게 세상살이

지하철 소매치기는 요즘도 있을까?

by 스무디

올여름 장마철에 한 번 건물 앞에 놓아 둔 우산을 도둑맞았고, 지난 토요일 지하철에서 혼자 공상에 빠져있을 때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 것 같습니다. 두 번 다 서울 한복판의 강남지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는 십 년 넘게 정부지원이 많은 취약계층이 모였다고 알려진 옛 달동네 인근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도둑이 있다거나 내 것을 누가 훔쳐간다고 여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낭만이 풍요롭던 시절이었지요.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다가 주머니에 슬쩍 넣으면 '갖고 싶나 봐~', '다음에 돌려주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고, 겉으로 안 보이게 넣어둔 간식을 꺼내 먹는 손에도 '배고팠나 봐. 먼저 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이렇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대상이 어른일 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하려던 중대한 일을 빼앗긴다는 의혹이 있어도 항의하기보다는 상대방이 받을 상처나 당혹감이 먼저 밟혔습니다. '오죽하면 그랬겠어~', '억울함을 달리 호소할 길이 없었나 봐. 나라도 이해해야지.' 이런 식으로 얼핏 보면 바보 같은 손해를 떠안고 이용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웃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습관이 내 가정을 돌보는 주부로서는 치명적인 단점을 키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남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 자식이 준비물을 못 가져가도 누군가 빌려줄 것이라 기대했고, 친구 따라 놀다가 어떤 장난을 친다 해도 너그러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기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어른이라면 더욱 관대히 아이들을 보살필 것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리라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습니다. 내가 기대한 건 꿈이자 이상일뿐이었고, 법 없이도 어울려 살 수 있는 아름다운 문화 같은 건 늘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집 앞 놀이터에 깜빡 잊고 두고 온 현금 지갑은 돌아가니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고, 분실물 센터에 가져다준 이도 없다는 걸 알았을 때 내가 믿던 인지상정의 성은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에게 준비물을 챙겨 줄 때에 양이 많으면 항상 없는 친구들을 나누어주라며 넉넉히 넣어 보냈지만, 내 아이가 가져가지 못한 준비물은 누구에게도 받지 못한 채 그냥 그런 애로 밀려 방치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불량한 태도, 안 되는 걸 기대하는 사람쯤으로 대우받을 때는 부모로서 자책감에 화끈거리기도 하였죠.


가만히 떠올려 보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4년까지는 대부분 가족들의 보호 아래 지냈었기에 음식은 유기농으로 가려 먹이고, 아무리 어려도 반드시 계산을 먼저 한 뒤 물건을 열도록 일일이 케어하였습니다. 씻고 입고 말하는 것도 조심시키고 넘어져 다치는 일도 없게 신중한 행동을 기르도록 두었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제가 바빠지고 아이를 맡기는 시간이 늘면서는 느리고 적응력이 부족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기고 싶은 요점은... 무엇이든 가꾸고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도 베풀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생각만으로 내가 했듯 부메랑처럼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요즘처럼 잊혀지기 쉬운 시대에 게으름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려는 노력을 해야 지켜지는 것 같습니다.


지하철에서 남의 가방이나 물건을 훔치는 소매치기 뉴스를 거의 볼 수 없는 요즘에 그런 일이 저에게 일어난 것도 제 일상을 소중히 돌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어느 정도 자랐고, 거리두기가 생활화된 시대에서 제가 굳이 나서 돌봐야 할 일들도 많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지 모르지요. 따라서, 이번 강남에서 물건을 잃은 두 번의 사건으로 인해 제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을 더욱 늘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내 것을 지키는 일이 각박한 게 아니라 사는 데 꼭 필요한 생존본능임을, 애써 가진 노력의 결과물을 내가 스스로 소중히 지켜야만이 남들도 나의 수고를 인정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폰 분실 사건의 전말을 추리하다가 새삼 되새깁니다.


그러고 난 뒤에는 판단이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두 번 다 "도둑맞았다.", '요즘 같은 때도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이 다 있네.'와 같이 그들의 잘못으로 전가하며 찾아낼 수 있으면 cctv라도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제는 달리 생각합니다.


우산 도둑에 관해...

비가 갑자기 많이 쏟아지던 날 우산을 가져오지 못한 누군가가 제 것을 쓰고 간 것입니다. 그분은 옆 건물에서 식사를 하고 나오셨거나 주차를 위해 급하게 움직이셔야 하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제가 그곳에 머무르는 거주인이었다거나 오래 앉아있었더라면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요. 제게는 다행히 동생이 옆에 있었고 낡은 우산이라도 빌릴 수 있는 여유가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가 손해 본 건 하나도 없습니다. 귀가해서는 그동안 베란다에 사용하지 않고 굴리던 장우산을 펴봤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깨끗하고 커서 기뻤습니다. 내 우산을 가져간 이가 없었다면 그 좋은 장우산을 몰라보고 버렸을 수도 있거든요. 약간 과장 같지만 사람에게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만 주어진다는 말이 이럴 때도 와닿습니다.


금요일 핸드폰 분실은 지하철에서 내릴 때 알았습니다.

그날 주머니가 깊지 않은 외투를 입고 있었고, 다른 공간이 없었기에 왼쪽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어둔 것입니다. 길을 내비게이션으로 찾는 습관이 생겨서 수시로 열어 봤으므로 두고 나가거나 떨어뜨리지 않은 것도 자명합니다. 지하철 안에는 거의 만원에 가깝도록 사람이 북적였고, 저도 자리가 없어서 서 있었습니다. 제 머릿속의 그분은 플랫폼에서 기다리는 시간에도 제 눈에 유독 들어오셨던 분이십니다. 저보다 키도 크고 연세도 많아 보이셨는데, 어딘가 초조하고 불편해 보이셔서 어떤 사연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에 탑승한 뒤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제 왼쪽에 서 계셨습니다. 어쩌면 제가 흘끔 쳐다봤던 시선을 느끼셨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셨는지도 모르지만 "00역이 어디예요?" 하고 물으셨습니다. "바로 다음 정거장이에요." 하고 대답을 드렸는데, 바로 몸을 돌리자마자 눈이 가는 곳에 지하철 노선표가 잘 보였습니다. "아하! 그러네." 하셨고, 곧 00역에 도착하여 하차하셨습니다. 저는 그 후로 두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야 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였는데, 그제야 핸드폰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못 내리고 바닥을 다 살폈지만 안 보였습니다. '떨어뜨린 걸까...' 바로 집으로 돌아오며 갔던 길을 살폈지만 없었습니다.

'일부러 누가 가져간 거라면 핸드폰이 꺼져 있을 것이고, 잃어버린 것이라면 켜져 있을 것이다...' 배터리가 많기에 확신을 품고 전화를 걸었는데 꺼져 있었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가져갔다는 심증이 굳어졌고요. 그 많고 많던 사람 중에 왜 하필 내 것이었는지... 사람을 믿고 싶은 마음으로는 그분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핸드폰 기기를 팔면 다급한 상황에 쓸 수 있지도 않나 헤아려봅니다. 저도 얼마 전 예상치 못한 경제난에 싫은 소리, 험한 소리를 많이 들어야 했던 시기가 있었으므로 어쩌면 그 심정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마저 닿지 않았다면 정말 하늘나라가 그리웠을 것 같다는... 나름 극한의 생활고 스트레스를 느껴보았거든요. 그래서, 만약 그분이라 해도... 잘 다루고 잘 써주시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핸드폰을 잃은 지 5일이 지나고, 그날 바로 공짜폰이라도 개통하자는 도움의 손길도 있었으나 저는 바로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발신만 정지해두고요. 그런 저이다 보니 그때도 '핸드폰 있거나 말거나' 같은 마음으로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태도가 다른 사람의 눈에도 확연히 보였겠지요. 조금 속은 쓰렸지만 곧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고, 이렇게 글을 올리는 여유도 그 덕분에 생겼습니다. 그래도 앞으로는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면 안 되겠지요? 제가 쓰는 글도, 나아가려던 꿈도, 앞으로는 더욱 소중히 지킬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나아가 여러분도 꿈과 일상을 소중하게 간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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