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드라마틱 육아 / 태교 편
부모가 기대하는 대로 자라는 아기
잊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삶과 잊어버려도 괜찮아지는 삶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매일 한결같다는 것은 똑같이 변함없음으로 인해 성장도 멈춘다는 의미가 아닐까... 두려워지는 오늘입니다.
무엇이든 꾸준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나의 잘못이나 주변의 탓이 아니라 자연스레 흐르듯이 살아가는 나의 삶 또한 이 자연 속의 일부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에 대해 해답은 없어도 매일 지나 온 흔적을 거슬러 올라가 오늘 가야 할 길에 힌트를 얻을 수는 있겠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집 안에서 머무르며 아이들을 돌보고 살아가는 일조차 벅차고 힘겹게 느껴지곤 하는 것은 왜인가?
... 그래서 이곳에서의 제 육아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여러분과 보다 넓게 소통하며, 더불어 나아가는 내일을 기대할 수 있다는 건 무척 설레는 일일 테니까요.
오늘 태교 편의 핵심은 제가 아들과 딸, 두 남매를 키우며 절실히 깨달은 이론의 허와 실입니다.
태교서나 출산과 육아에 대한 서적은 누구나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그 안에 나온 대로 따르면 정말 아기가 잘 태어나 잘 자랄까?
첫 째 때에는 책에 쓰인 대로 견과류를 먹고, 유기농 식품을 가려 먹고, DHA가 풍부하다는 등 푸른 생선을 섭취하며 태아의 지능발달에 도움을 주려하였습니다. 음악은 낮에 모차르트를 주로 들었고 베토벤이나 기타 음악은 조금씩 들었습니다. 특히 강의를 들으러 다녔기 때문에 함께 공부하고 있다는 기분으로 지낸 시간이 많았지요. 당시 외국어 교육이 거의 붐을 일으킬 시기였기 때문에 아기가 태어나면 다국어를 익히게 해 주려고 해외 각지의 외국 분들과 채팅도 했습니다. 태어날 아이에게 중국어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했더니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는 대답을 듣고 뿌듯했던 기억이 납니다. 수능시험을 볼 때만 해도 영어를 1, 2등급 받은 실력이었는데 1년 후에 train과 subway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받아 회화 공부에 관심이 많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입덧이 심해서 음식은 속이 매스껍지 않은 것으로만 가려먹어야 했지요. 강의 듣는 것이 일상이었고 과제는 거의 컴퓨터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었는데, 그로 인해 전자파 차단 앞치마를 두른 채 종일 컴퓨터 자판 소리를 태아에게 들려주어야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이루어지는 환경들이 책에서 권하는 태교의 모범형이 아니다 보니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커졌지요. 아기의 태명은 장군이었습니다. 씩씩하고 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어주었어요. 엄마의 그런 마음이 전해졌는지, 태어난 아기는 신생아실에서 가장 큰 소리로 울고 분유도 제일 많이 먹는 모습을 보여주었답니다. 이때부터 저는 '태아기 엄마의 바람이 아이에게 전해지는구나.' 하는 다소 검증이 미비한 혼자만의 믿음을 싹 틔우게 됩니다. 이후에는 살면서 점점 나만 바라고 신경 쓴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꼭 해야 할 건 시켜야 한다는 진리를 깨달아가죠.
아기는 잠을 잘 자지 않고 말을 많이 했습니다. 옹알이를 일찍 시작하고 한 시간 정도 잤나 싶으면 다시 깨서 칭얼거리곤 하였지요. 처음에는 아픈가 싶었는데 집중해서 놀거리가 있거나 사람이 계속 말 걸고 마주 보아주면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그치더라고요. 육아서적을 여러 권 읽다 보니 그런 모습이 호기심 풍부한 영재의 특성 같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착각이었는지 그 이후로 저의 육아는 남들이 보면 과보호에 준할 만큼 집착과 고생으로 불필요한 얼룩을 만들기도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와 고모들까지 대동해서 아기가 지루할 틈 없이 놀아줄 군단을 형성했거든요.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텐데, 그땐 집안에 첫 손자였던 데다 마음에 여유와 관심이 많았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시절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기억이예요.
그렇게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다가 아기와 제가 둘이만 남으면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도 했습니다.
한창 활발해진 컨디션을 저 혼자라도 맞춰주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집 안에서 요란한 뮤지컬 CD를 틀고, 당시 유행하던 유아 교육기관이나 문화센터 등에도 다니곤 했습니다. 말을 일찍 시작했고 어른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답하고 그러길래 정말 똑똑한 줄 알았지요. 모든 부모는 자식이 어릴 때 천재인 줄 안다는 말이 있는데, 저 또한 그런 생각을 여러 번 해 보았습니다. 부모의 눈에는 내 아이만이 가진 특성이 누구에게 보다 도드라지게 잘 보이고 어떻게 길러줘야 할지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늘이 준 재능이라는 게 별 게 아니라 그런 부모에게 받은 고유한 특성 같지요. 단지 그것을 어떻게 남들에게 이해받고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는지... 그것을 잘 해내는 부모도 있고, 서툴어 헤매는 부모도 있고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 평생 짊어져야 할 숙제가 아닐까요?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이 이론적인 평균보다 길어지다 보니 점점 '이 아이가 자라서 학교 공부를 잘 못한다면 어쩌나.' 걱정이 되고 너무 좌절감이 들 것 같았어요. 저도 미숙한 어른이었으니까요. 한글을 일찍 익히게 하고 동화를 읽어주었는데 보는 대로 다 소화하더라고요. 그때 안심하고 쉬었는데, 천재가 아니므로... 꾸준히 이어갔어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으며 후회하였습니다. 아이는 어떤 분야에서도 전혀 특별하거나 우수하지 않았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도록 맞춤법마저 틀려오고 있었거든요. 공책을 열어 볼 때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들면서 육아를 할 때도 자만심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태아기 때부터 관심 가진 영어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않을까? 흙 속에서 진주를 찾는 심정으로 조금 더 기대를 걸어봅니다.
'그래. 한글보다는 영어에, 한국말로 대화하기보다는 뮤지컬 같은 신나는 분위기와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다.' 외국어에 욕심을 냈던 저의 태교 시절이 의미 있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영어 천재일지도 몰라." 영어학원에 보냈고, 말하기 대회 상과 주니어 토플 급수를 딴 게 제일 자랑할만한 결과물이었어요.
더 이상 스스로 성과를 올리고 싶어 하진 않더라고요.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알게 된 건 아이가 자연스럽게 회화를 구사할 수는 있지만 선생님의 기대에 따른 반응을 제 때 보이는 활동에는 무리가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히 스스로의 동기로 하는 학습은 유효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역효과가 나기 쉬운 타입이 있지요. 아이가 상처받을까 조심조심 달래며 고진감래 끝에 다른 아이들과 얼추 평균을 맞추는 정도로 기대하며 한 동안 천천히 아이 뜻에 맞춰주기로 합니다. 천재나 영재의 꿈같은 건 차츰 지워갔어요.
학교에 입학한 후로 주위의 친구들이 다 바뀌니 새로 모임도 나가며 어울리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땐 제 상황 때문에 들어줄 수가 없어서 준비물을 넉넉히 보내거나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따라라." 정도의 말들로 매일 격려를 해주며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받게 되었어요. 아이와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하교 후 집에서 만나면 씻고 저녁 먹고 청소나 정리정돈 등을 하다가 늦은 시각 숙제를 펴고 봐주려 한다는 일상을 그대로 말씀드렸는데, 더 이상 어머니가 당부하시는 말은 소용이 없는 것 같다며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제겐 아이의 학교생활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뉘앙스로 들려서 밀려오는 상실감에 서운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지 어떤 잘못을 한 건지 아이를 볼 때마다 한 동안 채근했어요. 고쳐야 할 행동을 몇 가지 전했지만 자세한 상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이후에 그 또래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짐작해 보건대, 아마도 엄마의 말을 생각하느라 선생님의 마음과 눈치를 읽기에는 역부족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이들이 어릴수록 부모님과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수록 교사의 기대에 부응하게 이끄는 일은 상당히 어려워지더라고요. 그래서 학부모로서는 조금 서운했지만 교실 적응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추기 위해 그런 것이니 그리 염려할 일도 아니었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갔습니다.
선생님의 당부로 아이의 행동을 몇 가지 교정해주려 했던 그 시기에 아이도 스스로 말하더라고요.
"엄마. 나 컴퓨터를 하게 해 줘."
나름대로 오래 고심한 것 같았습니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멀티미디어에 물들이지 말라는 것이 당시 육아의 정석처럼 여겨지던 시절이라 굉장히 망설여졌지요. 티브이나 라디오는 언어 학습에 도움이 된다고 납득했으나 컴퓨터는 인터넷만 열어도 성인 대상의 정보가 가득하다 보니 정말 보여주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결국 제가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되라고요.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아들은 집에 있으면 거의 컴퓨터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한 집에 있어도 얼굴을 마주 보기 쉽지 않아요. 이 땅의 많은 남학생들이 그렇다지만 아무래도 태아 시절 듣던 컴퓨터 자판소리와 전자파의 느낌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강의를 듣고 내가 공부할 때 임신한 아기였으니 '어떤 식으로든 공부머리가 뛰어나지 않을까' 기대했어요. 이 또한 막연한 꿈이었음이 곧 드러납니다. 아이는 듣고 익히기보다 스스로 말하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를 즐겼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속으로만 생각하고 말은 필요한 대답만 해야 한다고 가르치니 자꾸 딴 생각이 든다더라고요. 구구단도 잘 못 외우고, 연산도 맞춤법도 여전히 많이 틀렸던 초등 중학년 때, 유튜브로 프로그램 설명법을 강의해서 올리는 걸 보았습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 못한 데 대한 위로가 조금은 되었지만 엄마로서 무책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자책감이 남아서 오래가더군요.
아무래도 강의를 들으며 다녔던 그 시기에 태교의 영향으로 아이가 교수법을 학습보다 먼저 익혔나 보다... 라는 생각이 스스로를 다독이는 위로이자 이후 긴 육아의 시간에서 소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둘째가 태아기에는 전문서적을 안 보고 태교도 별다른 거 하지 않으며 동네분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음식도 크게 가리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을 자연스레 섭취했으며 큰 아이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던 생활이었죠. 유아를 위한 영어나 스포츠 학원에 따라다니고 친구들 집에도 놀러 다니다 보니 모차르트도 못 들었습니다. 태아기에 수학 정석 문제를 풀면 두뇌 발달에 좋다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실천은 못 했어요. 태교라고 신경 쓴 게 있다면, 영어나 중국어를 흘려듣는 정도요? 당시 아빠의 관심을 환기시키려... 김 00님의 피겨 공연이나 여자 아이돌의 인기를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재능 있고 건강한 딸이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 관심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딸은 태어나자마자 브이라인 턱선으로 우리 부부를 놀라게 해 주더라고요. 당시 여배우님들의 브이라인 자랑이 한창이었기에 저희 아기도 트렌드에 편승하는 외모를 타고났나 보다 하는 기대감은 감격의 도가니를 만들기도 해 주었죠. 엄마 아빠 조부모님 누구에게도 없는 둥근 짱구 이마와 브이자의 턱선이었거든요. 그런데 둘러보니 다른 집 아가들도 엄마 아빠보다 훨씬 감성이 풍부하게,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자랄수록 그 감성을 맞추어 주는 일이 제게는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안 되면 둥글었던 이마도 조금씩 편평해질 수 있다는 것도 깨우치게 됩니다. 그러면서 저는 점점 더 꿈과 이상을 좇게 되고, 책에는 없는 저만의 생활 논리를 만들어 가고 있었어요.
바로 육아서에 없던 초초감성 육아라고나 할까요? 이는 저의 육아생활이 세월을 더해갈수록 점차 드라마틱한 양상을 띠게 된 데에 관한 항변이자,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불거지는 순간들에 따른 해결안의 모음이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공유해보고 싶었지요.
~ 따라서... 본 태교 이야기의 결론은?
위에서 언급했듯 태교는 엄마가 보는 책이나 그림, 풍경뿐만 아니라 바람과 감정이나 관심사나 만나는 사람 및 환경까지도 모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약간 사변같지만 출생 시기에 따른 운명론도 조금 믿는 편인데, 그에 맞춰 태교를 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어찌보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지만, 분명한 건 뭐든 이론을 안다고 해서 억지로 끼워 맞춰지는 것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가요?^^.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아이들의 본성을 잘 헤아려주고, 타고난 그대로의 성향을 인정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토대를 마련하는 자세도 언제든 잊지말아야 할 필수인 것 같습니다.
육아에는 끝이 없다고 하죠? 사람은 평생 자라니까요. 키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력, 주변과의 친화력과 품성까지도 성장합니다. 그러니 이제 "너 누구 닮았니?", "왜 이러니?" 이런 말보다는 우리 부부가 어떤 사람들인지 서로를 깊이 헤아리고 자녀들을 임신하기 전부터 태아 시절은 어땠었는지, 과거의 추억 속으로도 이따금씩 여행하고 다니면 더욱 알찬 육아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떻게 자라기를 바라는지, 항상 간절하고 예쁜 염원을 담아 매일 행복한 꿈을 꾸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