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드라마틱 육아 / 관계 편
아이를 키우려면 온 동네가 필요하다며?
오늘 해 보려는 이야기는 아이를 키우며 주변 사람들과 얽히는 관계와 갈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첫 째가 태어났을 때 살던 마을은 제가 공부하기 좋은 시설이 가까이 있던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산책로와 개울이 가까이 있고 주에 한 번씩 마을 장도 서고요, 상점도 모두 친절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육아에 온전히 집중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환경은 아기를 보살피고 애착을 형성하기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유모차를 끌고 나가면 비슷한 아기들이나 가족단위로 모여있는 광경이 눈에 띄었고, 이웃이나 친구들끼리 농구 같은 운동을 즐기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교회와 성당처럼 마을 주민들이 모이는 장소가 가까이 있는지도 이사 전 집을 정할 때마다 염두에 두던 사항입니다. 이후에도 저희는 이사를 할 때마다 산책로와 종교시설이 있는지를 대형 마트의 근접성보다 우선시했던 것 같습니다. 보육기관이나 어른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는 주로 아이가 얌전한 성향을 보일 때 함께 지내기 좋은 것 같았는데, 저와 있는 시간이나 여가시간만큼은 활달하고 즐겁게 생활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주위 환경은 아이의 기초 성품을 형성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 또한 세뇌되다시피 들어본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숲과 개울과 넓은 가족 공원이 있는 풍경이 마음에 위로와 여유를 주었고, 즐거운 전환과 상쾌한 기분도 들게 해 주어 좋았습니다. 단지 안에는 낡았지만 정겨운 놀이터가 있었고, 식물을 정성스레 키우거나 재활용품을 활용한 살림살이를 꾸미는 일에도 관심을 가졌던 만큼 정서적으로는 온화한 곳이었다고 기억합니다.
한 때는 맞벌이와 육아를 겸하면서 친정의 도움을 구하며 가까이 살기도 해 보았습니다. 그때에는 가족들과의 문화가 주로 어울리는 환경이 되었고, 이웃들과는 전에 살던 동네보다 서먹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결과적으로 어떤 환경이 육아에 더 나았는지를 들자면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려서는 성인이 되었을 때보다 친척도 식구처럼 친밀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그런 혈연관계를 알고 왕래하며 지낼 수 있게 해 준 것은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에 친정이 가까이 있는 마을에서 이웃들과 지내던 때에는 상대적으로 가치관이나 생활양식의 차이가 크다 보니 서로 조심하는 예절에 대해 더 의식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인지 서로 상처 주는 말 등을 가리려고 애쓰다 보니 이웃들과의 놀이나 모임은 즐거운 기분으로 끝나는 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에는 아이들도 동네에서 어울려 지내는 시간들에 흡족해 보였고 굳이 멀리 다니거나 거창한 미래를 위한 계획 없이도 하루가 의미 있게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에 온 동네가 필요하다는 말이 그쯤 되어서는 점점 크게 실감이 났지요.
직계가족끼리만 조용히 아이를 돌보던 때와 달리 다양한 이웃을 만나고 여러 친구들을 사귀면서부터는 아이가 귀엽기만 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하거나 피해를 주는 것 같을 때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아도 야단치고 한참을 훈계해야 할 때도 있었어요. 마음이 급해져서 사건 사고가 안 생기게 하기 위해 먼저 설레발치며 아이의 주변을 가려주려 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미숙한 자아에서 시작하여 성숙한 시민이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변화인데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자면 버겁거나 필요 이상 많은 힘을 들여야 할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시간들을 거쳐서 우리에게 남겨진 건 무엇일까요? 그 이후로 두 번 더 아이들과 이사를 했습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학업 정도는 챙길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자라자 아버지의 출퇴근이 용이한 곳으로 옮긴 것입니다. 십 년도 넘게 정든 동네를 떠날 때에는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 컸던 것 같습니다.
둘째에게는 그곳이 고향이라서 더 그랬는지 다시 가 보고 싶다는 얘기를 첫 해에는 수도 없이 했었지요. 첫 째도 기억 속에는 그곳이 고향 같았을 거예요. "내가 전학을 오지 않았더라면..." 말하면서 이사 후 잃은 감각과 즐거웠던 정서에 대해 많은 아쉬움이 있다고 한참 말해주었습니다. 그럴 때 제게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참 많은 힘이 되더라고요.
전부라고 생각했던 일상들 (현재에 집중하라는 어느 명언처럼 정말 눈앞에 닥쳐오는 일들에만 몰두하며 살아도 하루가 모자란 것 같던 시절이 그 지난 십여 년이었거든요.)과 그토록 공들여 쌓아 가던 이웃들과의 관계가 눈 녹듯이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 동안 공포심에 가까운 걱정과 불안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때쯤 드라마와 극본 쓰기를 배우면서 그 안에 담을 수 있는 갖가지 인물들의 양상이, 다양한 성격과 목적과 환경과 가치관과 갈등으로 엮이는 한 편의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희망과 위로도 되었습니다. 추억은 사진 속에 담고 기억과 상념들은 다양한 글로 가공해서 가꾸고 다듬고 포장하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언젠가는 다시 과거의 인연들과도 얘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던 기분은 상상만으로도 굉장한 뿌듯함을 주는 일이었어요.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만요.
그렇게 글쓰기에 빠진 채로 한 삼 년여를 더 보낸 것 같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의 사고방식도 엄마가 생각하는 글과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세계 속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친구들과 전처럼 가까이 지내지도 못했고, 저도 새로운 지역에서 새 이웃과 어울리기에는 직장은 멀고 할 일이 너무 많았지요. 이사 후 정리조차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생활을 이어가야 했으니까요. 아이들의 교우관계가 좁아지면서 내 영향을 점점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은 주로 말과 글 등에서 나타났습니다. 교실에서 선생님께 들은 어휘보다 제가 극본쓰기를 익히며 하던 방식처럼 학습적인 용어들을 생활적인 간단한 말로 바꿔 쓰는 (예를 들자니 그때 사진이라도 찍어 둘 걸 후회가 되네요^^;) 그런 식으로 답안을 작성했더라고요. 제가 봤을 때는 그 말이 그 뜻인 것 같았지만... 배운 대로 적지 않아서인지 오답처리가 되어있어서, 사인해주며 뜨끔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는 잔소리는 아무리 해도 늘 부족한 느낌이 들었고요.
지금 사는 지역으로 이사 온지도 일년이 지나갑니다.
그 덕분에 세월 참 빠르다는 말도 실감이 나네요. 여기에서는 거의 집콕하며 표면상 크게 변한 것이 없는 것 같거든요.
이곳에서는 부디 오래 살 수 있기를 바라면서 식구들과도 그러하자고 다짐과 언약을 반복했더랬습니다. 그래도 살아온 관습이 있어서인지, 이대로 괜찮나... 겉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은 너무 변하는 게 아닌가... 특히 주위가 평온하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부모와 뛰어 놀 나이가 지났다 보니, 부모로서도 이제 아이들과 섞이기보다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배우고 익히고 실천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무거움이라고 생각해요. 다행히 가까운 이웃 분들이 거의 중년이 지난 어르신분들이 많으시고, 오래 살아 동네의 역사를 몸소 새기며 살아오셨을 분들이 많은 곳이라 저희도 매일을 반성하듯 돌아보고 자라는 기분으로 지낸답니다.
육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식을 돌보는 일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늙고 힘이 없어져도 부모가 살아서든 죽어서든 영향을 미치는 것 모두가 넓게 보면 육아의 범주에 속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아이들을 신경 쓰고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해도 되는 시기는 아닌데, 이사 후 집 정리와 주위 마트와 집들이 등 이전 생활과의 균형을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꽤 소요되었습니다. 계획한다고 해서 갑자기 그 안에 다 맞추어지는 일들은 아니더라고요. 이번에는 이사 후 변화의 리스크가 컸던 부분이 큰 아이의 곤두박질친 성적과 잦은 병치레, 활발하던 둘째의 마음 닫기 등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꾸준히 한 직장에 다니던 가장이 제일 크게 충격을 받는 것 같았고, 저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양상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일 여유가 있었지요. 그래도 회복은 해야했습니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무난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너무 튀는 행동은 자제시키고 충실하게 학교 과정을 따라갈 수 있게 겸허함과 성실한 자세를 북돋워주며... 저부터도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지 노력하고 지냅니다. 쉽지는 않아요. 사실 매우 어렵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사를 오면 제일 먼저 이곳의 사람들과 문화에 길들여질 수 있도록 탐색하는 과정도 있어야 하는 것 같은데, 그게 코로나로 과거처럼은 못 했으니 당근 마켓 거래나 지역 커뮤니티에 회원이 되는 등의 움직임으로 대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온라인으로 연결된 친구나 선배들과 소통하고, 멀리서 약속을 잡는 일이 늘더라고요. 점차 스스로 판단하며 해결해가는 일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서 부모로서도 격의 없이 대화해주던 문화는 멀리하고...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해도 의미와 무게가 실려야겠다는 부담을 다시금 가져봅니다.
아기 때는 마음을 알아주고 바람을 맞혀 주는 것, 유아기 때에는 약속을 잘 지켜주는 것, 아동기 때에는 속 마음을 들어주고 학교생활이나 교우관계에 부족함 없이 챙겨주는 것 등이 가정에서의 부모 역할이라고 여겼었는데, 청소년기 부터는 그 중심조차도 찾기가 어려웠네요... 어찌해야 할지 숱한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이렇게 성장해 가고 있답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