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드라마틱 육아 / 문제 편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느리게 가기
이번에는 문제아에 관한 경험담을 풀어볼게요.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당하거나 이용해봤을 법한 문제아 논쟁... 그 민낯을 파헤쳐봅시다.
저는 학창 시절 내내 크게 내가 불량하다거나 문제로 취급되는 나쁜 학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누구누구랑 놀지 말고 공부해라, 너 잘 났다는 말은 기억해도 내가 이상하다거나 뭘 잘못했다는 말 같은 건 최대한 좋게 해석해서 나름의 인간미로 승화시키려는 지나친 자존감의 보호본능이 있었기에...
결혼도 나에게 불만을 많이 표하던 까다로운 남편과 하게 되었고, 모든 식구들이 나에게 잘못만 지적할 때도 마치 잡초처럼 다른 쪽으로는 혼자 공부를 한다던가 게임 레벨을 올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쭉쭉 나아갈 길을 닦았지요.
그렇게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방법대로 잘 살면 된다는 다소 이상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그에 따라 아이들도 양육하니 아들이 딸 같을 때도 있고 딸이 보스 같을 때도 있고, 휴가는 럭셔리하게 즐기는데 통장은 마이너스 거나 밥은 잘 먹는데 병치레가 이어져 끙끙댄다던지, 운동을 할수록 근육은 더 말라간다던지 하는 이상하리만치 비 논리적이고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현상들이 제 주변에서는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유독 학교에서 말하는 문제아나 불량 태도라는 용어에 대해 반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던 건 자연주의 교육관이 허용되는 대안주의적 사고였어요. 우리나라에도 대안학교가 많이 있지만, 핀란드의 복지적인 교육환경이나 영국과 미국 같은 선진국이라는 곳들의 교육 철학과 환경을 동경했지요.
큰 아이를 데리고 이민 갈 꿈도 가졌습니다.
아마, 제게 재산이나 큰 돈이 쥐어졌더라면 미국부터 시작해서 유럽 각지의 교육을 맛 본 뒤 아이를 잘 키웠다는 자만심을 홀로 다지며 늘그막에서야 귀국하고 후회하는 삶을 살았을지도 몰라요.
나는 한국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는 것이 많았구나...
나는 결코 잘나지도 착하지도 의롭지도 않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와 우여곡절과 희노애락의 삶을 거쳐야 했지요.
결혼 후 육아 중 첫 복직을 했을 때입니다.
이미 육아를 진행 중인 주부로서 교단에 정식으로 섰을 때는 미처 그전에 깨닫지 못한 반 사회적인 관념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바람에 하루하루 매 시간이 위태롭게 느껴지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모두에게 축하를 받으며 서게 된 자리인데...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애써서 얻어야 했던 자격인데...
그러고 보니, 교생실습 때에도 책상에 앉아 이상하게 뭉클해지는 감정과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을 감추지 못한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멘토 선생님의 눈치도 봐야 하는데 그러고 있다 보니 아기가 걱정되어서 그런다는 둥의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하였지요. 바로 그 이유는 신규교사로서 일하던 첫 학교를 떠날 때 알게 됩니다.
문제아라는 단어와 관련이 깊었어요.
혼자서 공부만 하다보면 갈등에 둔감해지곤 했습니다. 모두가 날 도와주는 것 같고, 도서관만 다니면 싫은 소리 들을 일도 없었고, 시험 점수가 향상되면 저의 노력은 언제나 옳다고 여겼으니까요.
공립학교에서 문제아를 보는 시각은 사립학교에서 불량학생을 보는 견해와 비슷할 것입니다. 공립에서는 불량이라는 용어를 쓰는 걸 들어본 적이 없거든요. 상대적으로 물질주의 사고가 반영된 말 같아서 좀 더 매정하게 느껴집니다.
결론부터 풀어놓자면... 저는 모두가 문제라고 지적한 아이를 전혀 그렇지 않은 심약한 학생으로 뒤바꾸거나 명백한 가해 행동으로부터 피해의식을 이끌어내는 희한한 기운으로... 더 쉽게 말하면 최강의 빌런을 회유해 놓고 그 대가로 내게 보장된 안락함을 무르는, 잘 사는 것과는 정 반대되는 짓을 하고 다녔습니다.
첫 번째 강적은 예체능에 재능을 보이던 활발한 남학생이었어요.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자연주의 교육관이 유효하다는 믿음의 대안주의적 가치관에 물들어 있었기에 누구나 차별받지 않는 수업, 모든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이상적인 교육관을 종교처럼 따르려 했지요. 나도 한 인간에 불과하므로 모든 걸 이해하기는 불가능이라는 걸 일찍 인정했더라면 제 삶이 조금 달랐을까요?
아이는 중학년이었고 새 학기 첫날에 옆 반 아이의 신발을 숨겨서 하교 시간이 된 걸 알면서도 주지 않는 주도면밀한 장난을 쳤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 학생이 가져갔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다가가 물으니 입을 꾹 다물더라고요.
제발 돌려주라고, 아니면 나라도 찾아올 테니 어디 있는지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달래어보기도 했지만 꿈쩍도 안 하더라고요. 그런 경우는 못 봤었습니다. 저부터가 어떻게 남의 물건을 말없이 숨길 수가 있는지, 울며 찾는데도 돌려주지 않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요.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이를 어떻게 가르치고 그런 행동을 못하게 해야 할지 모르시겠다고, 집안일로 경황이 없으시다는 말씀을 남겨주셨습니다. 다행히 그즈음 신발주머니를 찾았다는 소식이 들렸고 옆 반 아이는 하교했지만 다시 그런 일이 또 생긴다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도 글썽이시는 모습을 뵈니 다시 이런 연락을 드려서도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되새기니 여분의 신발을 두었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그래도 자신의 신발을 잃은 아이에게는 보상이라도 해주어야 했겠지요. 이후, 그 학생과의 일과는 계속 3조심스럽고 위태로운 시간으로 기억됩니다.
처음 그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느낀 혼란처럼...
이후 그동안 3학년까지 모두 문제아라고 낙인찍어 올라온 학생이라는 걸 알자, 저는 그 오명을 지워주고 싶어집니다.
열심히 남들 쫓아만가도 늦은 때에 아무도 안 가지려는 총대를 덥석 메다니~ 그런데 학부형님은 그 이후로 적대적인 시선과 평점깍기 등 서운함을 표하시는 것 같았어요. 교사로서 아이들을 잘 지도하고 보살피려는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걸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이미 수많은 상담과 갈등을 통해 상처와 오해, 불신이 자랐을 그 심정에 제 말이 좋게 다가갈 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말을 할수록 돌아오는 반응은 공격적인 것 같았고, 선생님이 먼저 이렇게 잘못했기에... 더 나은 방법도 있는데 그렇게 안 해주셔서... 와 같이 소통의 부메랑은 갈수록 더 악화되는 것 같았어요.
아이는 이후로 옆 반 아이 물건을 숨기지는 않았지만 운동장 체육시간에 실내화를 신고 뛴다던지 급우들과 돈거래를 하다가 갈등을 빚는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당시에는 특이한 문제들을 고민거리로 던져주었습니다. 즉,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으니 보다 심오한 고뇌가 필요한 학생이라는 의미였던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꼭 나쁜 말은 아닌데, 혼자서 단 기간에 해결하려 했던 저의 성급함도 문제였습니다. 체육시간에 신발을 갈아 신고 나오도록 습관을 교정하는 데만도 통상적인 지도 외에 이십 분 이상 잔소리를 해야 했고, 그러고 나면 제 목도 지쳐서 다음 활동을 이어가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다른 아이들도 기다리는 동안에 같이 꾸중 듣다가 풀이 죽고요.
나아질 수 있을까? 고치지 않으면 아이와 어머니는 문제아라고 또 기록되어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오랜 경험과 시간을 지나보내며 깨달은 건 천천히
해도 괜찮았을 거라는 마음가짐입니다. 조금 더 느리게
※ 참고로 학교마다 문화가 조금씩 다른데, 그때 그곳에서는 실내화와 실외화 구분이 엄격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