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드라마틱 육아 / 학교 적응
문제를 남기지 않는 문제아 길들이기
"문제라는 건 풀리지 않은 숙제와도 같다."
+◇ 교실 문제는 오롯이 교사의 영향 아닌가요?
가끔 이런 의견을 접할 때가 있었기에 썰을 풀어봅니다.
문제라고 부르는 상황이란 아직 해답이 없는 그 상태 그대로의 양상을 놓아 둔 것이므로, 한 교실 안에서 일어난 문제 상황은 그것을 일으킨 장본인을 찾다보면 자연히 원인이 학생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교사들은 허용되지 않는 언행을 미리 수도 없이 학습한 후 실수를 범하지 않을지까지 미루어 예측해 훈련함으로써 통과한 자들에게만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이 교사 양성 과정에서 배우지 않았거나 교육과정에 전혀 들어있지 않은 내용을 다루는 경우는 없다. 혹여 엉뚱해 보이는 주제라도 따지고 들다보면 어떻게든 교육과정과 연계되기 마련이다. 게다가 퇴근 후에도 휴일에도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직업적 의무이기도 하기에 무엇이든 법적인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일은 하지 못하도록 직간접적인 간섭을 받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미리 정해진 교육이나 지도 계획에 없는 내용에 자꾸 관심을 갖는 교사라면 그 자리에서 단 하루도 버텨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우스개로 밤에 다른 일을 하는 이중생활 교사 이야기가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출근하는 그 순간부터, 아니 그 얼마 전부터는 다른 잡념을 싹 잊고 온전히 학교내의 업무만이 머릿 속에 가득해야지 그 날 일과를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인용문처럼 조용해 보이는 그 속에서 그들의 일은 매우 빠르고 복잡하고 세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문제 현상이 교사의 영향이라는 발상이 들 때에는 이미 자신이 제한된 경계 내의 사고를 벗어나 있다는 뜻도 되므로 학생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만히 마음을 다스리는 자세가 좋을 수 있다. 같은 식으로 생각한다면 교사의 입장에서도 상대방의 잘못을 어떻게든 들추어 내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의 잘못을 되받아 지적하는 일은 불필요한 신경전만 키우기 쉬운 것이다. 그래도 자녀에게 들리는 부정적인 피드백을 견디기 힘들때에는 이렇게 글을 쓰거나 즐길 수 있는 다른 취미로 감정을 승화시켜 보자. 상처없는 하루는 즐겁고 평온할 수 있지만 성장은 매우 더디게 될 것이다.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보호하거나 더 나은 길로 이끄는 일이 교육자적 자세임을 알기 때문에 가끔은 학생이 지은 잘못의 대가를 대신 짊어지기도 하고 있다.
+◇ 해결 방법이 교사답지 않다면 자질부족 아닌가요?
학부모나 학생 모두 교사를 평가할 수 있는 시대지만...
작은 일례로 "선생님이 아이를 혼 냈어요." 라고 말하며 학생이 받은 마음의 상처와 정서적인 혼란에 대해 호소하는 학부모가 있다고 치자. 학부모는 아이가 왜 혼났는지보다 하필 교사가 그 많고 많은 지도방법 중 아이를 괴롭게 만든 충격요법을 사용했다는 데 분노할 수 있다. 자연히 학생으로서의 잘못을 고쳐주려하기 보다는 교사의 잘못을 지적하여 자신의 감정을 납득시키는데 몰두하기 쉬우므로 문제행동은 나아지지 않을 뿐더러 점점 심각하게 발전하기도 한다. 교사가 혼을 냈다고 받아들일 때는 평소보다 큰 소리로 말했다거나 차가운 표정 또는 화난 제스쳐를 사용했을 때가 보통일 것이다. 학교 일에서는 으레 잘하려고 살필수록 예상치 못한 새로운 문제가 시시각각 발견될 수 있다. 그에 상응해 움직이다보면 상냥해보이는 일은 뒷전이 되기 마련이다.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절히 따르는 것이다. 교사는 엄마처럼 무한 너그러울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기분좋은 놀이 상대도 아니므로 해야할 일을 마치는 게 관건이다.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점차 평화로운 학교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데, 언론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사건들도 본보기의 양상으로 포장되어 보도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실제 교직관을 반영한 이해는 많은 경우 대중적인 논쟁에서 결여되어 있기에 한 편으로는 오해를 가려내기 위해서라도 교육자들 내부의 목소리를 높여야하지 않나 생각하도 했다. 교사들은 직업적으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자질을 이미 시험에 합격하기 전, 한 인간으로서의 오랜 성장 과정과 다년 간의 전문 커리큘럼을 통해 충분히 배운다. 학생들과 교육에 관한 진정성이 없다면 애당초 스스로 들어가기 께름직한 동굴같은 곳이 학교일 수도 있다. 이런 그들을 두고 외부적인 시각에서 자질을 운운한다는 건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웃픈 현상이 아닐까?
+◇ 그럼 어떤 상황이 주로 힘든 문제가 되나요?
문제는 늘상 있지만 줄이고 해결할수록 아이는 자란다.
학생들은 밖에서 허용되던 행동이 교실에서 안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미처 다 염두에 두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어찌보면 가족을 대하듯 학교에 정을 붙이는 학생들이 마음 놓고 즐겁게 생활하다가 갖은 말썽을 일으키는 때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교사의 실수도 대수롭지 않게 넘겨주거나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보탬이 되려는 넉넉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진짜 힘든 건 문제 상황이나 말썽을 일으킨 당사자들 그 자체가 아니다. 그로 인해 불거지는 나비효과가 더 이상 학교의 일과를 정상적으로 할 수 없을 만큼 뒤흔들어 버릴 때, 아무리 물을 뿌려도 꺼지지 않는 불씨처럼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차적인 논란들을 야기시킬 때, 아직까지는 그에 상응할 내부적인 인력이나 부서조차 따로 없는데... 마치 재앙과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진짜 힘든 점이다. 교실이나 학교에서 생기는 문제는 그 당시 해결해두면 보통 괜찮아지고, 다시 언급하지 않는 이상 불거지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쉽게 잊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문제현상을 상업적으로 가공해서 볼거리로 만든다거나 어른들의 이권다툼 등에 빌미로 이용하거나 한다면 사회적인 문제로 번지기도 한다. 진심으로 학생들의 바른 성장을 원한다면 문제를 알게 된 그 당시 협력하여 해결에 동참하고, 다음 문제를 찾아 함께 나아갈 수도 있어야 한다.
+◇ 이상과 실천, 왜 공부하고 배운대로 하지 않아요?
교직생활의 메뉴얼은 현장에서 겪으며 완성된다.
한 번이라도 열과 성을 다해 학교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론과 현실의 괴리감을 느껴봤을 것 이다. 나의 경우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험문제에서 설겆이 순서를 객관식으로 찾아낸 기억도 난다. 물론, 실제 가정에서 그릇을 닦을 때에 그 순서대로 다 실천하지도, 그럴 수도 없다. 교사의 자질이란 것도 마찬가지다. 실전과 비슷한 연습을 했다고 해서 현장 대처능력이 완벽히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는 대부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전에서 보이는 교사의 언행들은 이론적인 잣대로 평가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 말들을 듣고 따라주길 바라는 건 자라나는 아이에게 퇴행을 요구하거나 막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 공자왈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같다. 간혹 학교 내 교사들이 정적으로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며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우를 보았다. 부끄럽지만 나 또한 한 때는 그런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있다. 머리로 하는 일과 신체를 움직여서 하는 일, 반드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일 등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상은 제각각이다. 그런 속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들지 않는 자세는 부지런히 움직이는 활동력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단체 생활에서는 리더의 한 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듯 한꺼번에 많은 학생들을 통솔해야하는 교사에게도 분주한 움직임보다 중요한 건 늘 숙고하는 자세이다. 신중하게 말하며 꼭 필요한 행동만 하려는 태도는 모두가 안전하고 보람되게 지내기 위해서도 필수다. 그 분들의 머릿 속은 겉으로 보기 보다 훨씬 바쁘다.
+◇ 어떻게 해야 모두가 행복할까?
이 글을 보는 당신과 자녀가 무조건 잘 지내면 좋겠다.
남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면 공론화된 이론 외에도 수시로 변하는 정책이나 사회 분위기에 맞춰 새로 익혀야 할 정보, 이를테면 미세먼지나 청탁 금지법 같은 데 대응하는 자세를 그 때마다 바로 익히고 흡수할 수 있어야한다. 따라서 그 자리에 쉬이 빈틈이 나지 않으려면 항상 철저히 준비하고 다 함께 격려하며 밀고 끌고 협심하는 일에도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발령만 받고 나면 함부로 자를 수도 없고 월급은 꼬박 받는 철밥통이라는 과거교직을 바라보던 속된 표현들은 완전히 겉만 보고 폄하하거나 오인한 데서 기인하였다고 생각될 정도다. 점점 학교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훌륭한 분들이 늘고 있다. 그 분들의 일과 전문성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학생으로서의 본분을 지켜가려 애쓴다면 그 걸로 이미 행복한 사제문화를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서로를 조용히 배려하고 생각하는 전통적 사제관계에서의 가치관은 보전되어가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