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틱 육아 / 애정 편
사람을 살리기와 생명을 존중하기
생명을 존중한다는 말에는
이미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행동을 요하는 말 같다.
무기력하게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가거나
숨만 쉬면 됐지라는 식으로 물욕의 관념에 반하여 급기야는 무념무상이나 허무주의 같은 극단의 사고에
빠져있는 경우... 그대로 두면 정말 위험해지기 쉽다.
마지막 잎새이야기 속에서
환자의 생명의지를 북돋워 준
진짜 같은 나뭇잎의 그림이 주는 교훈처럼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밥도 돈도 사랑도 아닌 의지다.
자기 스스로 살아야겠다는 의지.
그것을 북돋우기 위해 사랑도 주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먹을 것을 주고,
그것을 펼쳐보이는데 돈이 필요해진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의지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그런 의지른 갖기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다. 마음이 많이 아픈 일이다.
그래도 의무교육인 학교까지는 다녀야 한다.
안 가면 경찰서에서 조사하러 나오고
부모나 기타 보호자가 잡혀갈 수도 있다.
고의적으로 보내지 않고 방치하면 학대가 되기도 한다.
예고 없이 닥치는 사건 사고들이 만연하고
무서운 자연재앙이 휩쓸기도 하지만,
끔찍한 범죄에 관한 뉴스들이 매일 들려오지만,
우리는 의지를 갖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도 삶의 의지를 북돋워
생기있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을 되새겨 보자.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잘못을 관대히 포용하고 용서하거나
상대가 원하는 걸 조건없이 주거나
희생을 가치로운 정서로 승화한다거나
무작정 보고 싶고 같이 있으면 좋다거나
자손을 낳고 일을 함께 해서 업을 쌓는다거나
. .. 굉장히 다양한 종류로 해석될 수 있는
추상적인 의미가 들어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맥상통하는 지점을 찾자면,
각자의 다른 가치관과 성격들이 한 데 모이게 하는 것!
그 연대를 만들어내고 합당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는 단어인 것 같다.
육아에서 '사랑'은 절대적인 가치이다.
부모는 물론이고 그 어떤 대체 양육자라도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일은,
올바르게 애정을 표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데 필수적이다.
사랑이 발현되는 방향은 제각기 다르지만
그것이 올바르다 그렇지 않다거나
혹은 나쁘다 좋다와 같이
그 양상에 관한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따라서 육아를 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애정을 줄 것인가?
표현은 내 감정대로 솔직하게 한다면 괜찮은 것인가?
지켜야할 선과 절제해야 할 정도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고뇌하고 생각을 키워가기 위해 노력한다.
부모의 헌신적인 자세는 필요충분 조건이지만
현대에서 나의 삶과 주위와의 관계망에 어울려야 좋다.
그래야 아이도 학교에서 사회에서 어엿하게 살아간다.
위험한 일이 잦다고 해서 자녀를 감싸고 부모 슬하에만
적응하도록 길들이려는 경우가 있다. 애틋한 마음은 이해하나 사회적인 인간으로 사는데는 도움되지 않는다. 세계가 바다고 나라가 강이라면 사회생활은 호수인데, 학교는 아이의 사회생활이다.
가정은 작은 우물 밖에 안된다.
가장 생계와 생존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우물이지만 누군가 작정하면 쉽게 막히거나 사라질 수도 있는 게 우물이기도 하다. 망망대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힌 존재라면 우물이 막혀도 호수나 강이 오염되어도 마실 물을 찾아서 항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애정이 누구보다 헌신적이고 소중하다해도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형성을 위한
배려나 이해심, 포용력도 필수인 시대이다.
아직 품고 있느라 서로를 아프게 한다면
동굴에서 벗어나 나가보자.
풀 숲은 생각보다 친근하고 안전하다.
잔듸에서 따뜻하게 놀며 살아갈 수 있게 하자.
생명을 존중하는 자세를 갖췄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 동굴 속이라면
당신을 살리기 위해 고함치는 소리가
산사태보다는 낫다는 것을...
억지로 끌어내는 완력이라해도
갑자기 들이닥친 맹수보다는 감사하다는 것을...
알아주면 좋겠다.
사람을 살리는 데는 힘과 강요도 필요해진다.
거짓과 속임수라도 당신을 살리려고했다면 용서하라.
괴로움도 애정이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알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