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독서란

상념

by 스무디


책은 유익합니다. 저 또한 책을 가까이 두고 다양한 글을 탐독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글자 하나하나를 기억한다던가 특별히 감명받은 문구를 표시한다던가 표현들을 깊이 헤아리며 감성적으로 빠져드는 독서는 잘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작가의 글은 그의 주관성에 의해 쓰여진 편향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공성이 짙거나 대중성이 뛰어난 작품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문체와 그의 가치관과 감성이 반영된 글을 깊이 탐닉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만약 어떠한 소설이나 수필을 좋아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이야기의 풍부함이나 인물 또는 배경과 같은 문학적 요소보다는 그 속에 깃든 정서에 대한 공감이 바탕이 된 작가적인 표현에 대한 경외심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중학생 때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라는 성인 소설을 처음 읽었지만 남다른 감흥은 없었습니다.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나이 들어 돌아보면 그때 읽은 그 소설이 가장 공들여 자세히 들여다보고 생각한 소설입니다. 저는 그 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며칠 안 되어 끝까지 읽었던 소설이 지금 펼치면 단 한 장도 탐독하기가 어렵습니다. 즐겁지도 않고 특별히 모르는 어휘를 발견할 일도 없고 그 정서에 대한 굶주림도 없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게 대부분의 책 들은 제 손에 쥐어지면 그저 소유되거나 반납되는 귀찮은 물건처럼 대우받기도 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책이 소중하고 글자 하나하나가 의미있게 다가왔던 적은 수험생활을 할 때 였습니다. 문학 문제에서 작가의 의도와 주제 등을 찾고 지엽적인 구절까지도 함의를 파악하도록 하는 질문들이 있었기에 ‘그게 중요한가보다,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나 보다...’ 했을 뿐, 평상시 새로운 문학을 접하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험난했던 하루를 위로받듯이 시나 일기 같은 짧은 글들이 마음에 위안을 주고 일상을 견뎌내는 힘이 되어 주기는 하였습니다. 소설이나 에세이집 같은 긴 글은 제목과 들어가는 말 정도만 봐도 충분할 때가 많습니다.

끝까지 읽고 싶어 미치겠는 그런 글은 단 한 권도 제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즘 나오는 웹소설이니 웹툰, 각종 극본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단 이 정도면 읽을만하다거나 끝까지 읽어봐도 괜찮겠다 싶은 글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제목조차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온전한 동기에 의해 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작가가 되려면 먼저 남이 쓴 글을 두루 읽어봐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이런 내가 작가의 꿈을 갖는다는 건 죄악이 아닌가 싶을 만큼 지켜야 할 이론도 많고 숙지할 개념도 많습니다. 저의 뇌가 가진 메모리는 그다지 훌륭한 용량이 못 되어서 그런지 그러한 ‘공부’를 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개성이나 성찰을 담는 방법을 잊기도 합니다.

무분별한 이론의 탐색은 마치 수학 문제를 풀 때 정석적인 개념을 습득한 뒤 심화 문제를 바로 풀어보라는 것처럼 균형이 안 맞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그래서 갈수록 양질의 정보가 넘쳐나는 온라인 세상이 만인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공정한 환경 같지만 정제성과 체계가 미약한 선무당 같은 컨텐츠들이 활개를 치게 하는 방목의 현장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현재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컨텐츠들 (웹툰, 웹소설, 웹드라마 외 각종 매거진이나 기고글 등 모든 분야) 에 관한 경계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외로 수출하는 것을 염두에 둔 글이라면 더더욱 중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의무교육으로 적용하던 초기에 무엇보다 강조했던 것은 한국적인 심성을 잃지 않고 자긍심을 유지하면서 영어를 실용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과거 교과서 속에 영희와 철수 같은 대표적 한국 이미지를 지닌 캐릭터를 영어책에도 등장시킨 이유가 되었을 것이고, 언어는 영어인데 내용은 한국의 떡이나 한복 같은 전통에 대해 얘기하도록 만들어 둔 이유였을 것이고, 발음보다는 문법과 어휘력에 주안점을 두어 평가하도록 했던 이유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국내 원탑을 누리는 컨텐츠들 속에서 우리의 주체성이 점점 미약해져 보이는 건 저의 오해나 착각일까요? 세계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아둔함일까요? 아니면 내가 외골수라는 반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저도 가끔 정독을 권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단 한 가지 경우입니다. 그 내용을 암기하여 쓸모가 있을 일이나 공부에 필요한 때요. 다른 분들은 어떠신지 궁금해집니다.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이 시나리오같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