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전/ 1987년 - 세빈
영어 선생님은 칠판 가득히 T0부정사의 정의, 쓰임새, 규칙, 예문 등을 적어나갔다. 우리는 공책에 빽빽이 색 색깔의 볼펜과 형광펜으로 메모했다. 영어선생님은 40대 초반 정도 되는 남자 선생님이었고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강남에 있는 큰 학원 강사로 가서 돈을 벌수도 있는 실력이지만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정말 그의 영어수업은 교과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문종합영어 같은 체계가 있다.
“우리에게 100원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빵이 될 수도 있어.”
그는 구걸하는 거지를 지나치지 말고 100원이라도 주라고 했다. 게으른 사람도 있고 사기꾼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배고픈 사람도 있을 테니 적은 돈이라도 준다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한 끼의 식사가 될 수 있다. 그는 실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도 있었다.
자율학습시간에 아이들이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다가가보니 창문아래 테니스장에서 영어선생님과 새로 온 젊은 체육선생님이 테니스를 치고 있다. 친구들은 모두 잘생기고 키 큰 체육선생님 창문 쪽으로 몰렸지만 나는 하얀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은 영어선생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영어선생님의 흰옷과 파란색 라켓이 잘 어울렸다.
“민희, 너는 이렇게 늦되니?”
친구들은 고3이 되어서야 누군가를 좋아하는 나에게 말했다. 여고에 진학하자마자 친구들이 유행처럼 남자 선생님을 좋아했을 때 나는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영어수업시간 전 쉬는 시간에 건물 뒤에 있는 자판기로 뛰어간다. 커피를 뽑아다가 교탁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아침마다 보는 영어단어 쪽지시험에서도 항상 100점을 맞았다. 그래도 선생님은 끝내 내 이름을 알지 못했다. 시간이 감에 따라 영어선생님에 대한 감정은 점차 영어에 대한 감정으로 변해갔다. 공부할수록 영어자체가 좋아졌다. 영어는 수학처럼 공식이 있었지만 수학과 다르게 재밌다.
집에서 반대하는 인문계고등학교로 진학한 후 나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생겼다. 대학이었다. 아빠에 대한 반항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집에서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더욱 가고 싶었던 걸까? 원래 누구든지 하지 말라는 것은 더욱 하고 싶은 법이니까?
나는 생각했다. 대학은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단하나의 방법이라고. 집이 부자라면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돈이 많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얼굴이 예쁘다면 대학을 나오지 않더라도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얼굴이 예뻐서 옆 학교 남학생들에게 쪽지를 매일 받는 서희는 대학에 들어가든지 안 들어가든지 상관없이 계속 인기가 많을 것이다. 부자도 아니고 얼굴이 예쁘지 않더라도 성격이라도 활달하다면 어디를 가더라도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다. 세빈이는 성격 좋고 말을 잘해서 항상 친구들로 둘러싸여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가난하고, 예쁘지도 않고, 말도 잘 못한다. 항상 뒤에 서있고 숨기에 바쁘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나는 꼭 대학에 붙어야한다. 대학만이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돈, 외모, 성격 이 모든 것은 지금까지 가지지 못했지만 대학만은 어쩌면 성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학은 내게 대학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내가 이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모의고사 때마다 지망 대학 란에 교대라고 표시했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내게 아이들을 다스릴 수 있는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다른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구체적인 직업은 아직 생각하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아니었다. 사실 내가 가고 싶은 과는 좋아하는 과목인 영어영문학과나 국어국문학과였다. 내신 1등급이었고 모의 고사성적도 좋았지만 지원할 수 없다. 만약 붙더라도 등록금을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교대는 등록금이 없는 대학이다. 그 단하나의 이유로 교대는 선택되어졌다.
“엄마, 교대는 등록금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에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교대는 붙기만 한다면 등록금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다.
어찌됐건 시간이 가고 있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거리의 나뭇잎에 색이 입혀졌다. 이제 학력고사가 삼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에게도 예상치 못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3 여름방학이 지나서도 흔들리지 않고 공부했었다. 그러나 가을이 오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해졌다. 나는 야간자율학습시간에 공부를 하지 않고 멍하니 세빈이를 바라보았다.
세빈이는 약간 남성적인 매력을 가졌다. 머리를 보이쉬하게 잘랐고 약간 통통한 몸매에 활달했다. 세빈은 말을 재밌게 잘했다. 그래서 친구가 많았다. 쉬는 시간이면 다른 반에서도 친구가 왔다. 몇 명의 친구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큰소리로 떠들고 웃었다. 나는 문제집을 펼쳐 놓은 채 그들의 이야기에 점점 귀를 기울였다.
토요일 밤 몇 명만이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한참 문제집을 풀고 있는데 세빈이가 칠판 앞으로 나갔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할지 궁금했다. 공부하는 척 하며 바라보았다. 세빈은 녹색칠판 가득, 하얀 글씨를 빽빽이 적어 내려갔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중략-≫
칠판 가득히 적혀진 무언가 일기 같기도 하고 편지 같기도 한, 글은 아름다웠다. 나는 물었다.
“이거 뭐야? 어디에 나오는 거야?”
세빈은 크게 웃으며 모르냐고 했다. 나는 정말 몰랐다. 세빈은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가사라고 말해주었다. 그제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우리는 전철역까지 같이 걸어갔다. 나는 세빈과 친구가 되고 싶었고 세빈도 날 싫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린 데미안과 생텍쥐페리에 관해 말했다. 세빈과 말할 때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설레 왔다. 마치 남자친구라도 만나는 것처럼 떨려서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다.
야자시간 때마다 세빈은 내게 모르는 문제들을 물어보았고 나는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설레는 마음을 다 잡으며 나는 공부를 했다. 학력고사가 코앞이었다.
그해 학력고사는 유난히 어려웠다. 뉴스에서는 평균 점수가 모두 20∼30점 내려갈 거라고 예상했다. 나도 시험이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합격자명단에 이름이 없습니다.」
발표하는 날, 떨리는 내게 전화에서는 녹음된 건조한 음성이 들려왔다. 믿을 수 없어 두 번, 세 번 확인했다. 나는 너무 울어 눈이 부어 뜨지 못할 지경까지 되었다.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다. 나는 재수를 할 수도 없다. 재수를 하려면 학원 다닐 돈이 필요했다.
이제 나는 어쩌면 내 생에 대학생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생각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세상이 멸망하면 이런 느낌일까? 세상이 무너진 느낌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결국 난 알게 된 것만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언니의 친구의 소개로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다. 그곳은 기계부품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유통 상가라고 이름 붙여진 수많은 사무실중의 하나였다.
조립식 복층으로 지어진 열악한 공장상가건물은 A부터 알파벳순서대로 여러 개가 병렬로 지어져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D블록 전자부품구역이었다. 블록마다 20-30개의 사무실이 줄지어있다. 1층은 직원들이 부품을 만들고 쌓아두는 공간이었고 철재계단으로 복층으로 올라가면 작은 사무실이 있다.
나는 청소하고 전화 받고 장부들을 정리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전철을 타고 출근하고 7시가 되면 퇴근했다. 한 달 내내 일하고 받는 내 월급은 15만원이었고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은 80만원이었다. 나는 10만원은 저금하고 나머지 5만원으로 교통비와 점심을 해결했다.
일하고 집에 오면 8시가 넘었다. 저녁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나면 피곤이 몰려왔다. 일한지 8개월이 넘어가자 겨우 등록금 낼 정도의 돈이 모였다. 그해 가을부터 일 끝나고 세빈이가 다니는 단과학원을 다녔다. 대학입학시험이 3개월 남은 시점이었다.
가을비가 제법 오고 있다. 나는 단과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에 가려고 세빈이를 기다렸다. 어둑해진 학원 마당을 가로질러 세빈이가 뛰어왔다. 비를 흠뻑 맞은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너 우산 안가지고 왔어? 이런.”
세빈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가방에서 우산을 꺼냈다.
“가져왔지. 하지만 맞고 싶어서. 그런데 그냥 맞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그래서 뛰어 온 거야. 안 가져온 것처럼.”
나와 세빈은 웃었다. 세빈은 정말 특이한 아이였다. 어쩌면 나는 세빈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당당하고 감성적이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온몸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 나는 세빈이 좋았다.
“민희야, 모의고사 점수 잘나왔어?”
“아니, 세빈이 너는?”
세빈이가 다니는 단과학원은 노량진에 있다. 세빈이는 재수를 처음부터 했는데도 성적이 안 오른다고 걱정했다. 나야말로 걱정이었다. 오랫동안 제대로 공부를 안 해 모의고사점수가 학교 때만큼 나오지 않았다. 장학금을 받거나 교대를 지원할 성적도 되지 않았다. 어차피 적성도 아니었기에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함께 전화번호부 같은 두꺼운 지원학교 학과 명단을 펼쳐보며 고민한다. 세빈은 지방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이제부터는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야간대학만이 내가 대학생이 될 유일한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야간대학을 개설한 대학조차도 많지 않다. 가고 싶었던 국어국문학과나 영어영문학과는 야간대학 자체가 아예 없다. 문과 쪽에서는 상경대학이나 법과대학만이 야간대학이 있다.
무역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법학과,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다 너무 생소하다.
대학 지원 마감시간 한 시간 전에 전공이 선택되어졌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정치외교학과였다. 정치외교학과는 나의 조용한 성향과 거의 반대되는 과였다. 하지만 어차피 선택할 수 없기에 어떤 과를 가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세빈은 전남에 있는 대학, 사진학과를 선택했다. 역시 그녀다웠다. 세빈은 사진 찍히는 것보다 사진 찍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다. 사진기자 박세빈, 미래의 세빈이 떠올랐다. 나의 미래는 캄캄한 어둠뿐,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조퇴해 원서를 내러 지하철을 탔다. 학교 후문에서 접수처까지 꽤 긴 길을 걸었다. 캠퍼스 길을 따라 호수가 길게 보였다. 바람결 따라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에 하늘의 하얀 구름이 비쳐 흔들린다. 금빛 햇살이 부서지는 호수 표면 위로 노란 은행잎들이 작은 배처럼 떠다닌다. 호숫가 옆 오솔길을 따라 여유로워 보이는 학생들이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지나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나도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나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올까?
나는 노란색 원서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