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전 / 1982년 - 민희
벌써 한 시간 째다. 선생님은 난감해했다. 반 아이들이 밥을 다 먹은 후인데도 나는 점심을 먹지 않고 계속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오후 수업 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은 반장에게 숙직실에 데려가서 밥을 먹게 하라고 한다. 반장은 도시락을 들고 나가고 나는 그를 따라 5학년 6반 팻말이 있는 교실을 나와 숙직실로 갔다.
반장이 밥과 반찬을 놓고 교실로 돌아갔다. 내 앞에는 아이들이 한 스푼씩 모아놓은 밥과 반찬이 놓여있다. 계란말이, 장조림, 햄, 소시지, 멸치 등 진수성찬이다. 숙직실에서 혼자가 되자 나는 눈물을 멈추고 천천히 밥을 먹는다. 이렇게 맛있는 반찬을 처음 먹어본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나는 남기지 않는다.
엄마는 쌀을 아껴야한다며 일주일에 한 두 번은 수제비나 부침개, 국수를 해주었다. 퉁퉁 불은 수제비, 아무것도 넣지 않고 밀가루 반죽으로만 부친 부침개, 국수5인분에 라면 한 개를 넣어 스프가 모자란 싱거운 국수도 나는 맛있다. 반찬은 거의 김치가 유일했는데 볶아먹으면 너무 빨리 떨어진다고 해서 김치가 아무리 시어도 그냥 먹었다. 그런 김치도 없을 때가 많다. 한번은 정말 김치가 하나도 없어서 도시락으로 밥만 싸갔다.
“마가린에 비벼먹으면 맛있어. 고소해.”
우리 집에 마가린이 떨어진지 오래였지만 거짓말을 했다. 그날 나는 반찬 없이 맨밥을 맛있는 척 먹었다.
5학년 담임이었던 30대 초반의 총각 선생님은 도시락을 싸와서 교실에서 점심을 같이 먹었다. 매일 한 분단 한 분단 씩 번갈아가며 선생님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날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것은 잊어버려서가 아니다. 갑자기 쌀이 떨어졌다. 집이었다면 밀가루로 수제비라도 해 먹었을 테지만 엄마는 도시락을 싸주지 못했다. 내가 밥을 싸오지 않은 것을 알고 나서 선생님은 반 전체아이들에게 도시락을 한 숟가락씩 따로 담으라고 했고 나에게 주었다. 나는 창피하고 부끄럽고 자존심이 상해서 먹을 수 없었다.
선생님은 60명이 넘는 학급아이들 하나하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부자이든지, 가난하든지, 예쁘든지, 아니든지, 남자든, 여자든 모든 아이들에게 애정을 쏟았다. 나는 그 전까지는 단 한 번도 누구에게도 개인적으로 칭찬을 받아보거나 관심을 받아본 일이 없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한 명 한 명 모두에게 관심이 있었기에 나에게도 순서가 왔다.
선생님은 반 아이들에게 책 한권씩을 가지고 오라고해서 학급문고를 만들었다. 나는 학급문고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모두 재밌었지만 특히 소년소녀 에스에프 문고를 제일 좋아했다. 우주전쟁, 걷는 식물 트리피트, 세상 끝의 바늘구멍 등 많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과학으로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상상이 너무 흥미로웠다.
개교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초등학교는 학생들의 사기를 돋우려고 장기자랑 경진대회를 열었다.
“민희는 글쓰기 대회에 나가라. 글을 잘 쓰더라.”
선생님은 지나가듯이 말했고 나는 상을 탔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작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매일 일기를 쓰라고 했고 60명 전체의 일기장을 검사했다. 그리고 빨간 볼펜으로 일기를 감상한 한마디 평을 써주었다. 하루하루 일일이 다 읽고 감상해야했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일기장을 읽었다. 나는 선생님이 한마디 써주는 것이 좋아서 일기 쓰는 것이 즐거웠다.
「민희는 참 착하구나! 배려심 많은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나도 민희가 만든 국수 먹고 싶다」
동생들을 위해 음식을 만든 이야기를 쓴 일기에 선생님은 다른 아이들보다도 더 많은 글을 적어주었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고 없으면 나는 동생들과 칼국수, 수제비등을 만들어 먹었다. 동생들과 밀가루를 반죽하고 모양을 내고 함께 먹는 것이 좋았다.
나는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를 전부 기억하려 일기장을 오래도록 버리지 않았다.
엄마가 첫딸을 낳고 3년 만에 낳은 아들이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또 3년이 지나 엄마가 임신을 했을 때 아빠는 아들에 대한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번만큼은 꼭 튼튼한 아들이어야 했다. 동네 뒷산에 올라가 매일 매일 빌었다. 그렇게 기도를 했고 태몽도 아들이었는데 낳아보니 딸이었다.
언니에 이어 둘째딸로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위로는 6살 연상인 언니와 밑으로는 2명의 여동생과 마지막 남동생이 있다. 언니는 거의 교회에 가서 없고 남동생은 부모님의 관심을 독차지 했다. 아빠는 무슨 이야기를 할 때마다 사서삼경, 논어, 맹자를 말했다. 시대에도 맞지 않았지만 아들만 위하고 엄마와 우리에게는 엄하고 무서운 아빠가 싫었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남자인 아빠는 서당 훈장인 아버지가 옛날 한문 교육만을 시켜서 한글은 혼자 깨쳤다. 엄마는 동네에서 가장 큰 집에서 태어났지만 7살 때 한국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이 망해 남자형제만을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22살에 결혼하기 전까지 집안일과 농사일을 했다. 엄마는 한글을 알지 못했다. 그것이 한이 되어 우리를 교육시키고 싶어서 산골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하지만 5명의 아이들과 가부장적인 남편, 힘든 노동에 생활은 어려웠다. 5남매를 고등학교까지 교육시키는 것조차도 무리였다. 우리들의 옷은 이웃에게 얻어 입어서 어딘가 크거나 작았고 해져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말이 없고 왜소해서 눈에 뜨이지 않았고 자신이 없어 어디론가 숨고만 싶었다. 이런 나를 관심 가져 준 선생님은 5학년 담임인 총각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공부가 재밌어졌다. 언니를 따라 남산도서관에 가고 교과서를 읽으면서 학교공부에 취미를 붙여갔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는 엄마에게 졸라서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했다. 돈이 없어 몰래 독서실에 들어가서 공부한 적도 있다.
중 3때 담임은 180센티가 넘는 키에 곱슬머리, 무섭게 생긴 수학 남자 선생님이었다. 남녀 합반이어서 남녀비율이 반반이었다. 선생님은 문제 아이들에게는 무서웠지만 맨 앞자리에 앉았던 키 작은 얌전한 아이들을 귀여워했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었다.
선희는 하얀 얼굴에 작은 주근깨가 있는 아이였다. 공부도 잘하고 귀엽고 활달해서 인기가 많았다. 경찰복을 입은 선희의 아빠를 본 아이들도 있다.
“안녕하세요! 장인어른!”
남자아이들 중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가는 길에 있던 선희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갔다. 나는 선희를 좋아했고 자연스럽게 선희가 가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고 싶었다. 나도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선희와는 다르게 상고를 가야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학기말이 되어 상고와 인문고 중에 골라야 할 때가 왔다. 학교에서 엄마를 불렀다. 집에서는 상고를 원하고 나는 인문계를 가겠다고 우기자 선생님은 자신이 설득해보겠다고 했다. 선생님과의 대화 끝에 엄마는 인문계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날 상담을 마친 엄마와 함께 나는 교문을 나섰다. 드디어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는 기쁨에 마음이 들떴다.
학교 앞 언덕길에 웬 트럭이 보였다. 트럭의 컨테이너 박스 옆면을 보니 커다랗게 책 사진이 붙어있다. 출판사에서 전집을 파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 학생이 읽어야할 교과서 수록 필수 소설집, 수필집, 고전집이라고 적혀있다.
나는 엄마가 돈이 없어서 안 사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의 팔을 잡고 한번 졸라보았다.
“엄마. 저 책 사주세요. 고등학교에서 필요한 책이래요.”
놀랍게도 엄마는 트럭 앞에 멈춰 섰다.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잠깐 주춤했으나 곧 현금을 꺼냈다. 비싼 전집을 말없이 사주었다. 나와 엄마는 서로 바라보고 웃었다. 전집은 무거웠어도 행복한 기분에 걸음이 가벼웠다. 중3 방학 내내 그 전집을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부록으로 주었던 「세상의 신비한 동물들」을 제일 좋아했다. 남극에서 사는 황제펭귄이야기는 너무 많이 봐서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마이너스 50도가 되는 극한 환경에서 서로 싸우지 않고 협동하면서 사는 펭귄이 너무 신기했다. 이렇게 당당하고 귀엽게 생긴 펭귄은 최근까지 단지 기름으로 쓰려고 엄청나게 사냥 당했다.
100년 전 사람들은 아주 커다란 솥에다가 펭귄들을 몇 천 마리 넣고 끓여 기름을 빼냈다. 펭귄들은 극한지역에서 살아서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도망가지 않았다. 귀여운 턱시도를 입은 신사 같은 펭귄들이 거대한 솥에 들어가 있는 그림은 잔인하고 슬펐다.
한때 50억 마리가 북아메리카에 살았지만 인간의 사냥으로 멸종된 여행비둘기는 신비로운 청록색 날개와 회갈색 긴 꽁지를 가졌었다. 그리고 한번에 5,000킬로미터, 지구 반 바퀴를 난다는 칼 새는 몇 개월 동안이나 땅에 내려오지 않는다. 얼마나 힘들까? 여행비둘기와 칼 새의 아름답고 강한 날개가 슬퍼보였다.
왜 세상은 슬픈 걸까? 엄마가 힘든 것도 싫고 아빠의 폭력도 싫다. 점심시간도 싫고 사서삼경이니 하는 것도 싫다.
도대체 세상은 왜?…. 무언가 잘못됐다. 나는 세상이 슬픈 게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