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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08. 2022

포기할 결심

- 스쿼시와 프리 솔로에 대하여-


 “그거 무슨 가방이야?”

 “이거, 스쿼시 가방. 집에 가져가려고. 정말 이젠 포기해야 할 것 같아.”

 나는 가방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퇴근길, 나를 데리러 온 남편 차에 스쿼시 백을 실었다. 사무실 내 자리에 가져다 놓은 지 2개월이 다 되었다. 출, 퇴근하는 나 보다도 더 내 자리를 지켜왔던 그 가방에는 스쿼시복과 라켓이 들어있다. 운동하러 가려고 가져다 놓았지만, 막상 가지 못하고 가방은 사무실만 지켰다. 

 6개월 전 K가 연락해 왔다. 코로나로 문을 닫은 우리 동네의 스쿼시센터가 개관하기를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다. K는 나의 사무실 근처에 스쿼시가 오픈했다고 거기서 운동한다고 했다. 나도 등록을 하러 갔다.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 근처 직장인이었지만 K뿐만 아니라 전에 다니던 스포츠센터에서 만났던 얼굴들도 보였다. 그들도 우리 센터가 문을 안 열어서 소식을 듣고 온 것이다. 스쿼시센터는 드물다. 내가 사는 시(市)에도 단 한 개밖에 없다. 그렇기에 가까운 곳에 오픈하면 이렇게 만날 가능성도 크다. 스쿼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올 수밖에 없을 테니까. 


 6년 전 나는 40대, 운동이라고는 스쿼시가 생애 처음이었지만 급속히 빠져들었다. 직장과 육아로 지친 15년 이후 첫 휴직 기간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스쿼시 하는 시간은 나에겐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스쿼시는 가장 격렬한 운동 중의 하나지만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집만큼이나 열심히 스포츠센터를 드나들던 1년 후 K가 왔다. K는 대학원을 갓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서관을 다니는 중에 틈만 나면 스쿼시를 했다. 나 또한 스쿼시를 너무 좋아해서 일주일에 세 번 가는 강습으로는 양이 차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마다 스쿼시를 치러갔다. 그때마다 우연히 K를 만났다. 우연한 만남이 몇 달이 지나자 우리는 이제 약속을 정해서 만나기 시작했다. 거의 토요일 오후 7시 타임이 우리의 게임 시간이었다. 

 한 시간 동안 스트레이트로 5게임 정도 하고 조금 쉬다가 또 5게임을 스트레이트로 쳤다. 이렇게 세 번 치면 한 시간이 갔다. 우린 둘 다 체력이 좋았다. 처음에는 내가 이기는 횟수가 많았다. 내가 1년을 먼저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자 점점 K가 이기는 횟수가 늘어갔다. 남자이고 20대이니 당연했다. 

 나도 그랬지만 K도 스쿼시에 열정이 남달랐다.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까지도 스쿼시 동호회를 찾아다닐 정도였다. 결국 우리는 다른 회원들과 함께 인천 열우물 경기장까지도 같이 다녔다. 그곳은 스쿼시장이 10개나 있어 스쿼시에 대한 우리의 열정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고난이 세계를 덮쳐왔다. 2년 전 코로나로 모든 경기장이 문을 닫았다. 스쿼시를 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직전에 열우물 경기장에서 무리해서 연골 파열이 되어 무릎 수술을 받았다. 어차피 코로나로 문을 닫지 않았어도 쉬어야 할 판이었다. 


 나에게 스쿼시를 못 한다는 것은 곧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했다.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시간은 나의 고민을 해결해주었다. 마음 한편에 공간이 있긴 했어도 직장생활과 영어 공부에 여러가지 활동에 시간이 훌쩍 갔다. 2년 동안 차를 두고 출퇴근하고 공원도 왔다 갔다 하면서 많이 걸었다. 하루 1만 3천 보는 기본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무릎이 많이 회복되었을 거로 생각했다. 스쿼시를 하기에 충분할 거라고. 

 3년 만에 첫 강습이 있던 날이었다. 반가운 얼굴이 몇 명 있었다. 모두 2, 30대 남자분들이라 친하지는 않았지만, 코로나 전에 스포츠센터에서 게임을 몇 번 쳐본 사람들이다. 그때 그들은 모두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는 그래도 2년이 넘었다. 처음 몇 개월간은 서로 게임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 만난 여기에서는 얘기가 달랐다. 나는 코로나가 시작되기 1년 전부터 연골 파열로 스쿼시를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들은 그때부터 1년을 열심히 스쿼시를 해왔다. 남자였고 운동에 대한 감각도 있던 그들은 이제 옛날의 그들이 아니었다. 2년이나 쉬었어도 그들은 금방 실력을 되찾았다. 알고 보니 K와 몇몇 사람들은 코로나에도 문을 연 사설 스포츠센터를 찾아다닌 모양이었다. 나처럼 3년 동안 스쿼시를 푹 쉰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그들하고 같은 반에 들어가서 강습을 받았지만 곧 나는 쳐지게 되었다. 결국 초보반으로 들어가서 강습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이나 쉬었으니 동작이나 기술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갓 시작한 직장인들과 한 반이 되어 강습을 받았다. 모든 동작과 기술이 새로웠다.

 한 시간 동안 강습을 받고 또 게임을 하고 샤워를 하고 돌아오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면 다리가 조금씩 아팠다. 걸을 때는 괜찮은 것 같았지만 계단을 걸을 때 똑바로 걷지 못하고 옆으로 걸어야 했다. 동료 직원들과 남편 모두 그만두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사실 연골은 소모될 뿐 재생이 되지 않는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줄기세포를 배양해서 심는 수술이 있다고 하지만 가격도 몇 천만 원이나 하고 아직 효과도 검증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3년이 지났어도, 걷기를 열심히 했어도 역시 스쿼시는 무리인가? 

6개월을 등록했지만, 일주일에 2번가는 강습을 거의 가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간 것 같다. 다리가 아프니 자꾸만 핑계가 생겼다. 세상에, 그렇게 좋아하던 스쿼시에 핑계가 생기다니!

 이제 K는 나와 경기할 땐 거의 가볍게 봐주듯 친다. 나는 좀 허탈하다. 물론 연골 파열이 되지 않았으면 좋았겠지. 만약 그랬다면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같이 연습할 정도는 될 텐데. 정말 스쿼시를 그만둘 때인가? 돌아설 때를 알 때, 돌아서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했지. 어쩌면 나는 스쿼시에 집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방을 가지고 집에 돌아온 다음 날, 토요일이었다, 오래간만에 아침 일정이 없었다. 나는 커피를 타서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요즘 시간 날 때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 다큐멘터리를 본다. 미드나 영드처럼 길지 않아서 시간이 많지 않은 내겐 제격이다. 

 ‘프리 솔로’

제목이 낯설다. 솔로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프리 한 사람들? 화면 위쪽, 분류에 공포라고 되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공포영화?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첫 장면은 인터뷰다. 

 “왜 이렇게 위험한 스포츠를 하는 거죠? 단 한 번의 실수로도 죽을 수 있지 않습니까?”

주인공은 차분하게 말한다.

 “사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프리 솔로는 그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뿐이죠, 1초 후, 다음 순간이 죽음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프리 솔로(free solo)는 로프나 고리 같은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으로 암벽을 등반하는 것으로, 극한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스포츠였다. 깎아지른 듯한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다니. 보기만 해도 아찔한 장면이 내내 이어진다. 

 영화는 미국 출신의 프리 솔로이스트(free soloist), 알렉스 호놀드가 8년간의 준비 끝에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공원에 있는 엘캐피탄(El Capitan)이라는 암벽에 도전하는 과정을 담았다. 엘 캐피탄은 스페인어이고 영어로 한다면 The caption이 된다.

 엘 캐피탄은 수직으로 솟은 900m의 암벽으로 정상의 고도는 해발 2,300m가 넘는다. 거의 1km에 이르는 수직 암벽을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으로 오른다. 한 발이라도 잘못 내딛거나 손잡은 부분이 미끄러진다면 바로 죽음이다. 


 왜 목숨을 거는 것일까? 극한의 경험 끝에 오는 말할 수 없는 감정, 일종의 성취감은 너무 크다고 한다. 그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절대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것이 작아지는 느낌? 어떤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 우주 속에 먼지가 된 느낌이랄까? 사실 우리는 우주 속의 먼지보다도 더 작은 존재이지만 평상시에는 그걸 느끼지 못하니까. 2년 동안이나 쫓아다니면서 촬영을 했던 영화감독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죽음을 항상 머릿속에 넣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프리 솔로는 매 순간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다음 순간이 죽음일 수 있다. 그래서 더 삶이 절실할까? 사실 우리도 그런 상황이지만 못 느끼는 것은 아닐까? 정말 누구도 내일 일을 알 수 없다. 코로나가 올지 누가 알았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나는 던져놓았던 스쿼시 가방을 바라보았다.

포기할 결심을 다시 포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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